폭풍 속에서도 봄은 찾아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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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삼아 걷는 길이 호수공원이다.
일주일 동안 비가 퍼붓더니 그 다음 3일간 해가 났다.
어제 없던 꽃이 오늘은 활짝 피었다. 피었나 하면 곧 떨어진다.
꽃잎이 눈 나리 듯 날린다.
피는 것도 금세요, 지는 것도 금세다. 급히 피고 지는 게 한국인 성격 같다.
나는 입춘도 모르고 지나쳤는데 꽃은 기다렸다는 듯 비집고 나온다.
폭우 속에 잠시 해가 나는 틈을 타서 꽃이 봄의 전령처럼 환하게 웃어 마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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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얼마나 많이 왔으면 자전거 주차하는 공간이 물에 잠기고 둥근 모가지만
달랑 내놓고 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비가 많이 왔다.
여름 장마 비처럼 줄기차게 왔다. 어떤 때는 폭우가 내렸다.
캘리포니아는 물난리가 났다고 야단이다.
호수가 흙탕물로 넘쳐난다. 새들은 어디로 다 사라지고 없다.
흙탕물에서는 먹이 감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없어서 가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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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부터 3일간 멎었고 내일부터 또 다시 폭우가 내릴 것이라고 했다.
비가 멎은 지난 3일간 사람들은 공원으로 몰려 나왔다.
오후의 공원에는 파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일 파티부터 카누 동호회까지 각종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바비큐 해 먹느라고 연기를 피워댄다.
그동안 해가 그리워서 어떻게들 참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일 년 내내 비가 안 와도 참고 산다.
특히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은 거의 일 년 내내 비가오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불평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태양이 일 년 내내 없었다가는 모두들 죽고 말 것이다.
일주일만 해가 안 떠도 이 난리들인데 아예 해가 뜨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옛날 내가 일하던 직장의 보스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Mr. Eaton은 영국에서 이민 온 사람이다.
이튼 씨 삼촌은 사람들이 알라스카에서 사금으로 큰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알라스카로 갔다. 알라스카가 어떤 곳인 줄도 모르고 무작정 갔다.
알라스카는 6개월 동안 해도 안 뜨는 겨울이다.
눈이 지붕보다 높이 덮여 있고 어둠이 영원히 계속되는 겨울을 이겨낼 사람이 있겠는가?
결국 정신이 회까닥 해 가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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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가 나서 흙이 운동 길을 덮쳤고, 아람 들이 나무가 뿌리째 넘어져있다.
물 잔뜩 먹은 땅은 믿을 게 못된다. 언제 무너져 내릴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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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에 모래알이 하나 들어간 모양이다. 디딜 적마다 따끔거려서 걸을 수가 없다.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었다. 쌀알만 한 모래알을 꺼냈다. 요 작은 모래알 하나가
나를 꼼작 못하게 하고도 남는다.
내가 앉아 있는 통나무 벤치에는 벤치 기증자 이름이 새겨진 작은 동판이 붙어 있다.
‘Helen Mayer 헤렌 메이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의 작은 소녀’라고 쓰여 있고,
1924년에 태어나서 1995년에 사망했단다.
계산해 보니 71세 할머니란 이야기가 된다. 할머니를 ‘작은 소녀‘라고 부를 정도라면?

나는 이 벤치에 잊을 수 없는 사연이 하나 있다.
20년 쯤 전이었을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차만 타고 다녔지 걷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때였다.
하루에 겨우 서너 발자국 걷는 게 고작이었다.
수원 친구네 집을 방문했다.
새벽에 친구가 운동을 나간다기에 멋도 모르고 따라 나섰다.
친구는 광교저수지를 지나 백운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숨이 차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열 발짝 가다가 쉬고, 다섯 발짝 가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얼굴색이 하얘지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하도 힘들어 하니까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보고 낄낄 웃는다.
중도 포기하고 내려오고 말았다.
미국 집으로 돌아와서 운동 삼아 걷기 시작했다.
첫날, 오늘 내가 앉아 있는 이 벤치까지 억지로 걸어왔다.
벤치가 눈에 띄는 게 어찌나 반가운지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나를 편안히 쉬게 하던 벤치다.
한 6개월쯤 걸었더니 폐활량도 늘어나고 다리에 근육도 생기면서
친구 따라 등산도 하게 되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걸을 때 뒤뚱거리면서 겨우 걸어가는 것을 보면
옛날 내 생각이 나곤 한다.
습관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자극이나 계기가 있기 전에는 고치기도 어렵다.
자신이 습관성에 빠져 있는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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