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이 주는 행복, 고민, 낭만, 갈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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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참으로 오묘해서 지내놓고 보면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가하면 아쉬움이 남는
경우도 있다. 쉴 틈도 없이 열심히 일했던 그 많은 날, 고생고생하며 일어서던 일들은
추억으로 남지 않는다. 짧지만 즐겁게 놀러 갔던 순간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특별난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영원히 기억된다.
크루즈 여행이 그런 추억거리 중의 하나다.

여기서 크루즈 여행이란 어떤 여행인지 정확히 알고 떠나야 하겠다.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매우 훌륭하고 유익한 여행이었다고 말하며
다시 가기를 열망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할 것 아무것도 없는 지루하고 따분한 여행이었다면서                                                                           다시는 안 가겠다고 고개를 흔드는 사람도 있다.
크루즈 여행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한 가지 팁을 준다면 우리는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교육을 받아와서 설명 듣는 데 익숙하다.
미국인들은 설명은 없고 책을 통해서 스스로 터득해 가는 교육을 받아와서 읽는데 익숙하다.
흔히 미국인들이 말하는 “enjoy yourself(알아서 즐기라)”가 은연중애 작동하게 된다.
크루즈에서 배달되는 소식지를 꼼꼼히 읽으면 즐길만한 건수가 많다.
크루즈 여행에서 많은 승객을 심심하도록 내버려 두었겠는가?
여러 프로그램을 짜놔서 찾아다니면 시간 가는 즐도 모르게 재미가 쏠쏠하다.
호화롭지 않은 크루즈가 없듯이 호강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눈이 즐겁고, 귀가 즐겁고, 입이 즐겁다.
객실로 들어가는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문에 사인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Happy Birth Day” 사인이 가장 많고 ”Anniversary” “Celebration” “Congratulation”의
순으로 사인이 붙어 있다. 모두 즐기러 온 사람들이니 즐겁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15층은 선데크라고 해서 하늘이 열려있는 공간이다.
보이는 것은 망망대해 360도 지평선이다. 바다가 검다. 시커먼 바다가 무섭다.
발트해를 항해할 때 바다는 청색이었다. 잉크 빛 같은 청색이었다.
그러나 북태평양에서 적도를 향해 가는 길은 검은색 바다다.
아침에 해가 선미 지평선에서 뜨는가 하면, 지는 해는 후미 지평선으로 넘어간다.

아침부터 액티비티가 벌어진다. 성경공부반이 있는가 하면 줌바 클래스가 있고,
라임 댄스며 보물찾기가 벌어지는가 하면 센터 콜트에서 픽켓볼을 하기도 한다.
부릿지 프레이가 벌어지고 스트레치 릴리즈 클래스도 열린다.
2시간짜리 영화를 상영하는가 하면 카지노에서 불랙잭 하라고 5달러 쿠폰을 준다.
수술 없는 성형수술을 선보이는가 하면 침술에 관한 세미나도 연다.
빙고 게임이 열리고 보물찾기 당첨자도 뽑는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싱글이나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는 데이트 파트너
찾기다.
오전 액티비티가 끝나고 식사를 즐기면 오후 액티비티로 들어간다.
사진 세미나, 3D 영화에 대한 설명회, 합창단 모집, 화랑 전시회, 볼룸 댄스,
임페리얼 트리오의 연주, 책모임, 콜프 모임, 척추 통증과 관절을 이겨내는 세미나,
영화 감상, 걷기 세미나, 부릿지 게임, 스노볼 잭팟 빙고, 기타 보컬 연주,
승선자 환영 샴페인 파티, 저녁 야외 수영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영화,
볼룸 댄싱, 댄싱 나잇은 계속 이어지고 밤 문화가 요란하다.

점심으로 샐러드만 세 접시 먹었다. 저녁에는 간단하게 마카로니와 스페인 음식
돼지 뒷다리 스모크해서 슬라시 한 얇은 고기(Prosciutto Crudo)로 간단하게 채웠다.
늦게 15층 농구장에서 공을 던졌다. 공이 연거푸 들어가면 재미가 쏠쏠하다는 걸 알았다.
아내는 야외 대형스크린으로 보여주는 영화 구경에 빠져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지만 배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가난한 외국인이다.
객실 청소 담당 스튜어트는 필리핀 여자 ‘매리’다. 영어는 잘한다.
자그마한 체구에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동그란 두 눈을 깜박인다. 아이가 셋 있다고 했다.
객실 18개를 담당한다고 한다. 오전에 9실 오후에 9실을 청소해야 한다.
일 년에 9-10달 일하고 2-3달 휴가란다. 휴일도 없다고 했다. 입항해도 하선할 수 없다.
열 달 동안 흙을 밟지 못하는 인생으로 자그마치 10년째 일한다고 했다.
호화선은 즐기는 곳인 줄만 알았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 고달픈 삶이 숨어 있다.
뷔페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사람들도 필리핀 출신이다.
저렴한 임금 때문에 외국 노동자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80년대에는 한국인들이 많았는데, 그러다가 인도네시아 출신이 들끓더니
이번에는 필리핀 사람들이다.
1986년 처음 마이애미에서 카리빈 크루즈를 탔을 때 내 방 청소 담당자는
‘김계원’ 입니다라는 명암을 보고 깜짝 놀랐던 일이 기억난다.
대구 출신인 젊은 김 씨는 가족과 헤어져 10달을 바다에서 보내야 하는 직업이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시중을 받다 보면 까다롭게 굴지 않아 좋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영어로 소통하려면 노동자들은 모르는 게 많은 만큼 대신 말을 잘 듣는다. 하라는 대로 한다.

그러나 영어 잘하는 미국 노동자들은 자신이 비록 노동자일지언정
동양인을 대우해 줘야 한다는 입장에 서면 열등감인지 우월감 때문에 그러는지 빤히 아는
것도 다시 묻고 의미이든, 발음이든 좌우지간 어떤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듯 한 번 되짚고
넘어간다.
이럴 경우 말려들지 말고 두 번 세 번 되풀이해서 말해줄 필요 없다.
너는 알아들어야 하는 처지라고 무시해 버리는 게 좋다는 것도 일찌감치 깨달아 알고 있다.
나는 즐겨야 하는 입장이고, 승객은 모두 호강하고 즐거워야 한다.
호화선 크루즈에는 즐기는 사람만 있는 줄 알았는데
2,200명 승객을 호강시키기 위하여 900명 종업원이 꾸겨진 삶을 이어가야하는
모순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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