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자를 좋아한다. 밥할 때 밥에 넣고 같이 익힌 감자를 제일 좋아한다.
밥알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감자가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맛있다.
식은 다음에도 쫀득쫀득한 맛이 그만이다.
밥과 함께 익은 감자 맛은 마치 밥을 물에 말아 먹는 맛과 비슷하다.
무(無)맛의 맛인 것이다.
내가 애 덜 때 외할머니가 장죽에 담배를 피우셨다.
할머니더러 담배가 무슨 맛이냐고 물어보면 할머니는 구수하다고 했다.
할머니 몰래 장죽을 빨아봤지만 구수하기는커녕 쓰기만 했다.
할머니에게 담배 맛이 구수한 까닭은 맛이 입에 배었기 때문이다.
물에 말은 밥이나 밥과 함께 익혀낸 감자 맛이 좋은 까닭도 입에 배었기 때문이다.
밥과 함께 익혀낸 감자는 아무도 안 먹는다. 나 혼자만 맛을 즐긴다.
아이들에게 먹어보라고 해도 입도 대지 않는다.
가끔 나는 아내에게 밥할 때 감자도 같이 넣고 해 달라고 주문한다.
아내는 감자를 넣으면 밥이 푸석푸석해 진다며 싫어한다.
그러면서 감자는 별도로 쪄서 준다.
찌거나 살은 감자는 맛이 밥에 넣었던 감자 맛을 따라올 수 없다.
밥과 같이 익혀낸 감자가 맛있는 까닭은 감자가 밥물을 먹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감자 맛은 감자조림이라고 해야 하나? 반찬이다.
감자를 반으로 켜고 한입에 넣을 만큼 납작하게 썬 다음 양파를 듬뿍 넣고 간장과 양념을
넣고 볶으면 된다. 감자에 간장이 배면서 찝찔한 맛의 반찬이 되는 거다.
내가 이 반찬을 좋아하는 까닭은 학교 다닐 때 형과 함께 자취했는데 내가 간단하게
할 줄 아는 반찬이 구멍가게에 들러 감자 두어 개하고 양파 하나 사서 만들던 반찬이다.
하도 해 먹어서 질릴 만도 한데 희한하게 지금도 좋아한다.
내가 만든 감자조림은 우리 딸도 맛있어한다.
한국에 나가 있을 때면 감자조림을 해 먹으려 해도 감자 값이 비싸서 몇 번이고 들었다 놨다 하다가 그만둔다.
한국은 감자가 굵지도 않으면서 가격은 매우 비싼 편이다.
나중에 알아낸 사실이지만 한국은 철에 따라 농산물 가격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봄철에는 감자 가격이 금값이지만 한 여름 감자 수확기에는 가격이 내려간다.
미국은 대륙이다 보니 사시사철 농사가 가능하다. 일년내내 그 값이다.
감자 가격이 비싸다하면 멕시코에서 들어온다.
미국에서 커다란 감자만 보다가 한국 감자를 보면 더욱 작게 보인다.
굵은 감자라고 해봤자 미국의 작은 감자와 비슷하다.
미국에서 오하이오 감자는 참외만큼씩 크다. 맥도널드의 프렌치프라이 감자가 커다란
오하이오 감자를 썰어서 튀겼기 때문에 프렌치프라이 감자도 길쭉길쭉하다.
미국에서 감자조림을 하려면 큰 감자 한 알 내지는 두 알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감자조림을 하면 감자 다섯 여섯 알은 깎아야 비슷한 양이 될까 말까다.
감자는 미국인들의 주식이다. 미국인들은 1930년 대공황 때 감자만 먹었다.
먹을 게 없어서 감자만 먹었다는 표현은 한국인이 가난해서 깡보리밥만 먹었다는 표현과
의미가 같다.
지금은 한국에서 보리쌀 가격이 흰쌀보다 비싸서 감히 집었다가 도루 놓았던 일이 있다.
그만큼 보리가 대접받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현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감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나 보다.
옛날에는 감자를 포대로 사다 부엌에 싸놓고 식량 대용으로 먹었다.
보리쌀도 헐값이어서 감자나 보리가 흔했다.
세월 따라 지금은 둘 다 귀하신 몸으로 변신했다.
기후만 온난화로 변하는 게 아니라 농산물도 입맛 따라 변해간다.
남들은 모두 현대 입맛으로 바뀌었는데 내 입맛은 왜 그냥 그대로인지……
비풍초
2018년 9월 4일 at 1:05 오후
저는 자주 먹고 싶으나, 살찔까봐 멀리하는 편입니다. 우리집은 그래서 대신 고구마를 간식으로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