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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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성묘 길에
성모 마리아가 너무나 슬픈 표정으로 서 있기에 나도 모르게 다가갔다.
지난 추석 때 무성한 칡넝쿨에 덮여 보이지 않던 성모 마리아가 겨울을 지나면서
잎을 다 떨군 칡넝쿨 줄기에 묵인체로 고개를 내밀고 서 있다.
서 있으되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칡넝쿨이 마리아의 몸 전체를 칭칭 감고도 모자라 이젠 얼굴마저 휘감으려 든다.
일본강점기 때 형장으로 끌려가는 독립투사를 보는 것 같다.
수난과 고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부활절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에 성모 마리아는 고통 속에 슬픈 사순절을 보내는 게
애처로워 보였다.
인자한 미소를 넘어 모나리자의 미소를 연상케 하던 마리아는 간데없고 수난과 고통을
호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어쩌다가 마리아가 여기 서서 기나긴 고난의 나날을 겪어야 하나?

1950년 때에 명동 성당 공동묘지가 평내에 조성되었다.
나의 어머니 산소를 그곳에 썼으니 내가 그곳 사정을 잘 안다.
야산 치고는 험해서 계곡을 따라 평평한 땅이 좀 있을 뿐 나머지는 능선이다.
평평한 땅을 넓게 독차지한 가족묘가 있다. 부모님을 모셔놓고 그 아래로 넓은 터를
잡아 놓았으니 아들과 손자 그리고 증손자까지 누워도 될 만큼 넉넉하다.
심지어 연못까지 만들어 놓았다.
부모님 산소 옆에는 날개 달린 천사의 동상을 세워놓았고
그 밑에 자식들이 묻힐 예비 묘소 옆에는 성모 마리아 동상을 세워놓았다.
아마 30년 전쯤의 일이다.
한 번은 그 산소 주인이 병사 네 명을 데려와서 잔디 깎는 것을 보았다.
그때만 해도 내가 젊은 나이여서 남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울분이 치솟는 것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던 일이 생각난다.
“군인을 데려다가 개인 묘지 잡초를 깎아도 되느냐?”하고 따져 물었다.

그 후에 지나다니면서 보면 널찍하게 자리 잡은 묘지는 그때 그대로이나 풀만 무성하다.
후손이 해외로 나간 건지 아니면 다른 곳에 묻혔는지 빈터에 잡초만 신나게 자란다.
욕심을 부려 넓게 자리를 차지했지만, 세상이 바뀔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면서 공원묘지도 교통 편리하고 밋밋한 동산에 잘 조성되어 있는 곳이
많은데 구태여 누가 이 골짜기에 묻히기를 원하겠는가?
욕심껏 널찍하게 자리 잡았으나 잡초만 무성한 묘역을 볼 때마다
당신의 욕심이 당신 당대에서도 어긋나고 말았는데 하물며
후손에게까지 욕심을 물려주려는 것은 참으로 허황된 허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또 5년이 지난 지금, 드넓은 묘역에 부모님 묘만 덩그러니 남아 찾아오지 않는
후손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처량해 보인다.
불효도 이런 불효가 어디 있겠는가?
애꿎은 성모 마리아는 세워놓아 칡넝쿨에 엉켜 고난을 겪게 하는지….
예전에는 밋밋한 미소를 지어보이던 마리아가 슬픈 표정으로 바뀌었다.
못난 후손은 욕심이 뭔지도 모르고 한 세상 헝클어놓고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돌아오는 성묘 길이 즐겁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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