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세 한인 할머니 UCLA 학사모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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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킹(한국명 조미숙)은 화가이자 마라토너, 골퍼, 테니스 선수이면서 8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금년도 UCLA 졸업생이 되었다. 한국어 학사 학위를 받은 것이다.

학업에 굶주린 조미숙 할머니의 학사학위를 얻기까지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조 할머니는 1970년대 중반 로스 앤젤레스 피어스 칼리지에서 학업을 시작했지만 자녀를
돌보기 위해 중퇴했다. 그 후 거의 45년 동안 그녀는 여러 번 학교로 돌아 왔다가
가족이나 사업을 위해 매번 다시 떠나야 했다.

하지만 조미숙 할머니는 한번 시작한 일은 완수하는 여성이다.

“한번 목표를 세우면, 유일한 탈출구는 완성뿐이야.”
“목표가 완성되면 자신감을 쌓는 자동 메커니즘이 발동하고, 자신감은 엄청난 힘과 자존감을 높여주지.”

조 할머니가 하는 말했다. 조미숙 할머니는 1936년 일본 강점기 시절에 태어났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을 목격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가족은 전쟁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남쪽으로 피난했다.
그녀는 전쟁통에 교육의 기회를 놓쳤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녀의 유별난 노력으로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었다. “나는 13세 때 어머니로부터 삶의 의미를 배웠어.

살아남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항상 준비 되어 있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해야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다고 배웠어.”

그녀는 1967년 미국으로 이민 가서 유학생이었던 첫 남편을 만났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이혼했다.

그녀는 1972년 파리로 해외여행을 하던 중 두 번째 남편을 만났다.

그러면서도 조 할머니는 항상 교육열에 불타고 있었다.
1970년대 중반에 그녀는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피어스 대학에 입학했다.
피어스에서 예술, 수학, 통계 및 과학 과정을 수강하여 자신의 관심사를 탐구한 후,
1988년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가까운 UCLA로 옮겼지만 1989년 아이를 낳아 기르느라고 학업을 중단했다.
아이들을 잘 교육시켜 독립시키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두 번째 남편이 부동산업을 개업하면서 남편을 도와 회사를 일으키다 보니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웨스트 로스앤젤레스의 거리인 ‘킹스 코트’는 남편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거리다.

그녀는 2000년 UCLA 대학으로 돌아왔지만 남편의 사망으로 다시 휴학에 들어갔다.

긴 인생의 여정에서 그녀는 결코 교육을 마치려는 목표를 놓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학교를 끝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2017년에 UCLA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조미숙 할머니는 심리학으로 시작했지만 나이에 프로 경력을 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한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더 잘 이해하고 한국과 미국의 관계 개선에 잠재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전공을 한국어로 바꾸었다고 말했다.

조미숙 할머니가 80세의 나이에 UCLA로 돌아오면서 가장 고초를 겪었던 것은 언어의 장벽 즉 영어를 이해하는 어려움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학 정김 교수는 “조미숙 할머니는 사람을 사귀고, 생각을 나누고, 인생 이야기를 듣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점이 정말 훌륭했다. 수업시간에 그녀는 꽃이었다.”조 할머니는 비록 UCLA의 엄격함과 영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녀는 그 과정에서 그녀를 도와주던 훌륭한 교사와 학생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동료 학생들은 공부를 지원하기 위해 방과 후에도 조 할머니를 도와주었다.
4학년 역사학과 학생인 ‘이나 나(Ina Na)’ 씨는 조 할머니가 CCL에 과제를 업로드하는 것을 도왔다.

도와준 사례로 점심을 같이 먹었는데 조 할머니는 자기보다 훨씬 어린 사람과 학과 수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나승진 씨는 말한다.
조미숙 할머니는 친한 친구와 가족에게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하고자 하는 일에 충실하면
못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말했다.
“포기하지 마. 다른 사람들이 네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말하게 하지 마.”
한국학 정김 교수는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 목표가 무엇이든지 간에 목표를
추구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정말 영감을 준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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