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형제가 많아서 친척도 많았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물론이려니와 돌아가신 후에도 나는 큰 이모를 뵈러 뻔 찔 큰 이모를 찾아다녔다. 찾아다녔다는 것은 이사를 자주 다녀서 새로 이사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나갈 때마다 큰 이모를 뵈러 들르곤 했다.
한 번은 큰 이모네 집에서 몇 달씩 묵었던 일도 있다.
그때만 해도 외사촌들이나 나나 결혼하기 전이어서 만나면 깔깔대고 웃는 게 일이었다.
큰 이모는 딸이 아홉에 아들이 하나다.
그중에 나하고 동년배이거나 나보다 어린 동생들은 함께 어울려 친하게 지냈다.
늙어가면서 큰 이모는 당연히 하나밖에 없는 아들 집에서 사셨다.
자연히 외사촌 남동생도 나와 가깝게 지냈다.
큰 이모가 돌아가시고, 각자 결혼하고 바쁘게 사느라고 왕래도 뜸해지고 차츰 소식도
끊겼다.
그것보다도 큰 이모네 외사촌 형제들은 자기네 형제가 많아서 그러는지 다른 친척과는
연락을 끊고 자기들 끼리만 산다.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소식을 알 수 없다.
한국에서 살았다면 명절이나 대소사에 가고오고 했을 것이다.
자식들 결혼 시키려면 당연히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마련이니까.
한국이 좋은 점은 안 보고 살다가도 제사지내려면 친척들이 장손 집으로 모이게 되어 있어서
싫든 좋든 만나게 된다. 이런저런 일로 일 년에 한두 번은 만나게 된다.
그러나 미국에서 살면 제사도 없고 한국 명절도 쇠지 않기 때문에 모일 기회가 없다.
안 만나면서 점점 멀어지다가 영원히 안 보는 경우도 많다.
외사촌 남동생네는 아이가 몇인지 어떻게 키웠는지 알지 못한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도 있었지만 곧 잊어버리곤 했다.
외사촌 남동생 밑으로 여동생이 셋인데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이 없다.
남은 아니지만 남처럼 지낸지도 수십 년이 흘렀다.
LA에서 사는 내 동생 부부가 가끔씩 우리 집에 다녀가곤 한다.
다행이 내 동생은 큰 이모네 형제들과 친분이 두터워서 자주 들른다.
한 번은 내 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큰 이모 막내딸, 그러니까 외사촌 여동생이
LA로 시집와서 산다고 알려준다.
이야기도 사람과 함께 늙어가면서 외사촌 여동생도 딸을 낳아 그 딸이 내가 사는 근처
학교 선생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LA 내 동생이 지난번에 왔을 때, 외사촌 여동생 남편이 위암으로 고생하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매제는 전화연락도 없었고 얼굴을 본 적도 없이 살다가 죽었다.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인편으로 조의금을 보내준 일이 있다.
지난번 LA에 갔을 때 내 동생이 냉면 잘하는 집을 안다면서 평양냉면 집으로 날 데리고
갔다.
냉면을 맛있게 먹으면서 덴버 코로라도에서 사는 큰 이모 6째 딸 외사촌 여동생 남편이
죽었단다.
6째 딸 외사촌 여동생은 나보다 한 살 아래다. 미국인 변호사와 결혼해서 덴버 코로라도에서
사는 동생이다.
여 동생이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그러니까 내 첫아이가 세 살 때는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했고, 걔네 집에 놀러 가기도 했었다. 그 후로는 연락이 끊겼다.
“남편 네스벳이 죽다니 왜?” 나만 놀란 게 아니라 같이 냉면을 먹던 누님도 놀랐다.
갑자기 죽었단다.
미국인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남편 떠나보내고 동생은 혼자서
어쩌지?
집으로 돌아오면서 먼 길을 운전하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누님이 전화라도 해 봐야겠다고 했다.
며칠 후에 누님에게 전화해 보았느냐고 물었다. 안 했단다.
전화번호를 어디다 두었는지 못 찾겠단다.
모르기는 해도 전화번호보다는 전화 걸기에 무언가 석연치 않아서 그랬지 싶다.
몇 십 년 연락 없이 살다가 갑자기 전화해서 “남편이 주었다며?“ 하고 묻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친척도 연락 끊고 살면 남이나 마찬가지다.
서울 강남에 사는 둘째 이모의 딸 외사촌 누님에게 카톡으로 소식을 알려줬다.
같은 외사촌이지만 둘째 이모네 딸들은 꾸준히 연락하며 산다.
외사촌 누님도 나처럼 큰 이모네 형제들과는 연락을 끊고 산지 오래다.
나보다 십 년은 더 늙은 외사촌 누님은 “그러냐”하기보다는 “정희 언니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아봐 달란다.
외사촌 누님의 또래는 정희 언니여서 그게 궁금한 모양이다.
LA, 내 동생한테 물어서 외사촌 누님에게 건재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건재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희 누님은 94세이시다.
남은 아니지만 친척도 연락 끊고 살면 남이나 마찬가지다.
비풍초
2019년 9월 20일 at 2:32 오후
형제자매지간도 연락끊고 지내면 남이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