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에서 멀지 않은 왓슨빌에서 사는 친구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카톡 동영상 좀 고만 보내달란다. 지우기도 힘드니 고만, 제발 고만…….
그게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딴에는 볼만한 동영상인 것 같아서 같이 공유하자는 의미로 보냈는데 상대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한 번은 아침에 모르는 여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것도 멀리 동부에서.
대학 동문이라면서 학교에 연락해서 힘들게 내 전화번호를 알아냈다고 기뻐한다.
미주 동문회 카톡방으로 들어오란다. 멋도 모르고 그러마고 했다.
나를 찾아 멀리까지 헤매고 다녔다니 고맙기도 해서다.
카톡방에 들어가 봤더니 남자가 나까지 합쳐서 네 명에 여자는 자그마치 20명이 넘는다.
그것도 남자들은 아무도 카톡방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문학지를 출판하려는데 작품 한 편 보내달라는 거다.
의도가 좋은 것 같아서 그러마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정체가 밝혀지기 마련이다.
해외 문인협회 주최 문학캠프에 유명한 시인 ooo씨를 모시고 2박 3일 열린다면서 참석할
것을 권한다.
체질적으로 문학 캠프니 뭐니 하는 것도 싫지만, 문학하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건 더욱 싫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봤자 밑천이 짧은 나로서는 금세 바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들어가 본 카톡방에 어떤 동문은 월남에 다녀왔다면서 자신이 찍은
사진을 수 십장 올린다. 보나 마나 한 사진 진력나게 보는 것도 고역이다.
처음 전화를 걸어왔던 동문은 새벽 3시에 메시지 한통씩 날아온다.
동부에서 아침에 보내면 샌프란시스코는 새벽 3시다.
장문의 글인데 내용은 보나 마나 한 예수 믿으라는 이야기다.
열심히 보내봤자 나는 읽지도 않고 지워버리니 보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건만,
그러겠다고 하면서도 무슨 미련이 있는지 끈질기게 지금껏 이어진다.
그보다도 더 나를 괴롭혔던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자기들끼리 오고가며 울려대는 “카톡”
소음이었다.
커톡방에 머물러 있다가는 아무 일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하차하고 말았다.
카톡 소음이 다른 이에게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일종의 공해였다.
내가 겪었던 것처럼 왓슨빌 친구도 내게서 보내오는 카톡 동영상이 지겨웠던 모양이다.
참다못해 거절의 메시지를 쓰지 않았겠나 짐작해 본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뭐라고 할 수는 없으나 나는 지인으로부터 카톡 동영상이나
좋은 글을 받는 게 싫지 않다. 볼만한 것이 있으면 잠깐 시간 내서 보고, 읽을 만한 글은
읽어 둬도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보기 싫으면 지워버리고….
카톡이 오고 가고 하다 보면 더러는 소식도 오고 간다.
카톡으로 쓸데없는 동영상은 빼버리고 소식만 전하기로 한다면 무슨 전할 소식이 그리 많아서
카톡이 오고 가고 하겠는가?
일 년 내내 전할 소식 하나 없는 때도 많은데.
나보다 십 년이나 나이 많은 이종사촌 누님은 카톡으로 동영상을 보내줬더니 매우 기뻐한다.
아예 핸드폰을 최신형 아이폰으로 바꿨다니 이제 와서 안 보내면 안 되게 생겼다.
혼자만 보기 아깝다면서 또 다른 친척 누님에게도 보내주란다.
또 다른 친척 누님은 아들이 둘인데, 아들 둘이면 ‘목매’라더니 정말 그렇다.
내일 모래면 구십인데 독거노인이 되고 말았다.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진력나게 TV나 보다가 전화통화로 세월을 보낸다.
내가 매일 카톡을 보내드렸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받았다.
카톡일망정 전화기가 울린다는 게 기쁜 모양이다.
카톡도 잘 활용하면 고마운 존재이고 잘 못 활용하면 공해가 된다.
어디서 전화 오지 않을까 하고 전화통만 들여다보고 있는 노인에게는 카톡도 반갑다.
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에게는 카톡은 소음에 불과하다.
새벽 3시에 “카톡”하고 울리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동부와 시간차가 있어서 생기는 일이다. 쓸데없는 여인의 글줄이리라.
처음에는 잠 깨우는 소리에 짜증이 났다. 주책없는 여자라고 속으로 흉도 봤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3시에 카톡이 울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카톡 울리는 소리가 싫지 않다.
여인은 지난밤 내게 보낼 카톡을 준비해 놓고 날이 밝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먼동이 트자마자 보냈을 것이다. 비록 예수 이야기일망정.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새벽은 아직 멀었는데도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거다.
행복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어느 쪽을 보느냐에 달렸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널려 있는데…
어리석은 나는 먼데만 바라보면서 야속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비풍초
2019년 10월 12일 at 12: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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