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ID‘ 신청하러 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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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랑국(DMV)에서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보는 사람들

 

미국은 새로운 증명서 발급으로 야단법석이다.
‘리얼 ID’라고 해서 자신이 합법적으로 미국에 거주한다는 증명서이다.
2020년 10월 1일까지 미국에 거주하는 자는 새 ID를 발급받아야 한다.
운전면허증 갱신할 때 운전면허증에 첨부하든가 새로이 리얼 ID를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목적은 미국 영토를 좀 더 안전한 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조처이다.
앞으로 ‘리얼 ID’가 없으면 공공건물에 드나들 수 없으며 비행기 탑승도 할 수 없다.

‘리얼 ID’도 받을 겸 운전면허를 갱신하러 차량국에 갔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려니 리얼 ID 신청하는 사람이 많아서 수개월을 기다려야 한단다.
아침에 직접 차량국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게 낳을 것 같다.
보나 마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댈 것을 예상하고 새벽에 갔다.
차량국이 8시에 문을 여니까 7시 30분에 가면 최소한도 열 명 안에는 들겠지 생각했다.
7시 30분 정각에 차량국에 도착했다.
아직도 문을 열려면 30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내 앞에 20명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나의 예상이라는 건 한갓 어린 아이 꿈같아서 나 좋을 대로 넘겨잡는데 불과하다.
8시가 다 되자 내 뒤로 어림잡아 40여 명은 더 길게 늘어섰다.

‘리얼 ID’를 받으러 온 사람은 빨간 서류를 나눠주고 운전면허 갱신과 리얼 ID를 동시에
발급받으려는 사람은 파란색 서류를 주고 적어내란다.
줄 선 사람들의 2/3는 빨간 종이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리얼 ID’를 발급받으려는
사람들이다. ‘리얼 ID’를 발급받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차량국이 북적대는 거다.

나의 이번 운전면허 갱신은 좀 특별났다.
캘리포니아에서 운전을 하려면 5년마다 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젊어서는 갱신할 때가 되면 곧잘 5년을 거저 연장해 주면서 차량국에 올 필요 없다고
친절을 베풀더니 마지막으로 갱신하던 5년 전에는 그런 소리가 없었다.
노인이 되면 면허 기간도 4년, 3년으로 줄여 준다더니 나도 거기에 걸려든 모양이다.
하여튼 면허시험을 치러 가야 하겠기에 공부를 했다.
예상문제집 108 문제를 체크했는데 첫날은 8문제나 틀렸다.
이틀 후에 다시 체크했더니 이번에는 4문제가 틀렸다.
시험 보러 가기 전 날 또 체크했다. 2문제 틀렸다.
새벽에 일어나 차량국에 가기 직전에 다시 훑어봤다. 이번에는 만점이다.
자신감을 얻고 달려갔다.

운전면허 시험이라고 해서 별도로 시험문제집을 공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에는 운전면허 시험이라는 게 그냥 다 아는 거 물어보는 게 돼서 문제집 같은 거
드려다 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한두 개 정도 틀리고 통과됐었다.
그것도 자동으로 5년 연장도 해 주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불안해서 못 견디겠다.
공부를 해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떨어질 것 같아서 철저히 준비했다.
무엇이 달라져서 안 하던 짓을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감을 잃어서다.
늙으면 나도 모르게 자신감을 잃는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된다.
철저히 공부한 덕에 시험은 무난히 만점으로 합격했다.
다 아는 건데 공부 안 했어도 될 걸 괜히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지난 5년 사이에 확실히 자신감을
잃었구나 하는 것이다.

자신감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졌을까?
장 레츠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믿지 못 한다”
깜빡 깜빡하더니 결국 나 스스로도 자신을 믿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늙은이가 젊은 사람들처럼 매사 자신감이 넘쳐나 악을 쓰며 덤벼든다면
채신머리없게 젊은이들과 쌈 밖 질이나 했지 별것 있겠는가?
하나님은 내게서 자신감부터 걷어드려 우주 질서에 동참하게 하는 구나하는
작은 깨달음의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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