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19 시대에 유언장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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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유언장이 필요해”라고 코비드19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유언장 정도는 언제 써도 되는 거로 알았다.
하지만 무서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유언장을 손 씻기, 손 소독제처럼 중요한 것으로
취급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유언장을 작성하면 죽을 때 누가 재산을 상속받을지, 어떻게 나눌지를 알려준다.

친구와 전화통화하다가 유언장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는 처가 재작년에 죽었는데 죽기 전에 트러스트(신탁)를 작성해 놓았다면서 내게도
권한다.
만일 트러스트를 작성해 놓지 않는다면 내가 죽은 다음에 재산이 일단 국가로 넘어가게 되고

국가에서 자식에게 되돌려 주는 과정에서 많은 돈이 낭비된다고 알려 준다.
나도 오래 전부터 내용을 들어 알고 있지만 트러스트에 대한 당위성이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허황된 믿음 때문에 질질 끌고 있다.
만일 트러스트가 없이 죽는다면, 가족 내에서 갈등을 일으킬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야 당연히 아내보다 먼저 죽을 것이고, 나 죽고 나면 아내가 알아서 트러스트를
작성하면 될 것 아니냐 하는 생각에서 미루고 있는 거다.
구태여 내가 나서서 많지도 않은 재산을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싫은 것도 사실이다.

트러스트(Trust)와 유언장(Will)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트러스트(신탁)는 재산의 관리와 처분을 남에게 맡기는 것이고, 유언장은 유언 내용을 적은 글이다.

트러스트 안에 유언장을 첨부할 수도 있고 유언장 안에 트러스트를 첨부할 수도 있다.
다만 유언장이건 트러스트이건 법적 규율에 따라 법률인 앞에서 서명날인 해야 법적 효력이 있다.
여기서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내가 유언으로 “형제지간에 사이좋게 지내라”라고 한들

그게 이행되리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들이라는 게 독립된 인간인데 부모가 이러라고 이러고,
저러라고 저런다면 그게 어디 온전한 인간이냐.
차라리 유언 같은 거 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코비드19 시대를 맞으면서 유언장이나 트러스트를 작성하려는 고객이 급격히 늘어난다.
하지만 변호사를 만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하겠다는 것이 양쪽 다에게 부담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고객은 집을 떠나기 싫어하고 뿐만 아니라 변호사가 집에 들어오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새는 변호사 사무실도 발전해서 머리를 써 댄다.
트러스트 작성을 도와주는 많은 변호사들이 대면하기 보다는 화상 서비스를 통해 고객들과
의사소통을 진행한다.
고객들이 사무실에 오지 않아도 유언장과 다른 법률 문서에 서명하도록 주선하고 있다.
스마트폰 채팅이나 소위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서명을 받는데, 여기서 고객들은 사무실
주차장에 와서 유언장에 서명하고 공증인과 목격자들은 안전한 거리에서 바라본다.
코비드19 시대가 가져온 거리두기 현상은 새로운 법률 거래 방식을 만들어 냈다.

60세 이상 사람들은 극히 조심해야 하는 마당에 장례식장에 갈 수도 없고, 변호사라고 해서

함부로 만날 수도 없다.
집에 꼭 들어앉아서 꼼짝 말아야 하는 판국이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일도 아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걸렸다 하면 유언장 쓸 틈도 주지 않고 금세 죽는다.
누군들 코비드19에 걸리고 싶어서 걸리겠는가.
하루에 수 백 명씩 죽어가는 판국에 누구인들 안전하랴.
유언장인지 트러스트인지 써 두는 것이 낫다고 일러주는 친구의 말이 옳은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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