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아름다운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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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시작 치고는 늦가을 날씨 같지 않다.
일어나자마자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밖에 나갔다. 초가을 날씨보다 따스하다.
뒷마당 감나무에 감이 가득하다.
붉은색 감이 닥지닥지 달렸다.
높이 달린 감은 새가 먹고 낮은데 달린 감은 사람이 먹고.
새는 눈도 밝은데다가 코앞에서 자세히 보고 잘 익은 감만 골라가며 쪼아 먹는다.
새는 연시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잘 익은 연시는 새가 먼저 먹어치운다.
나도 연시를 좋아하는데 연시를 놓고 새와 내가 싸운다.
새는 날이 밝자마자 출근해서 잘 익은 감으로 아침을 먹는데 나야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새들이 한바탕 식사를 끝내고 날아가 놀다가 다시 달려온 다음에야 어슬렁대며 걸어 나오는 나를 보고 새들이 웃는다.
새들은 나 보다 약아서 내가 나무 밑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소리를 내도 새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느슨하게 지가 먹을 것 다 먹고, 볼일 다 보다가 유유히 사라진다.

나는 감을 딸 때 마다 옆집 미세스 휄슨에게 신경이 쓰인다.
감 같은 열매야 새가 먹게 놔두지 왜 사람이 먹느라고 새를 쫒느냐고 할 것 같아서다.
이상하게도 미국인들은 감을 먹지 않는다.
백인이고 흑인이고 간에 감 먹는 걸 못 봤다.
어쩌다가 감 먹는 백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유럽에서 이민 온 백인이다.
하기야 19세기에 감나무를 중국에서 들여와 심었으니까 낯익은 열매가 아닐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과일일 수도 있고, 미국은 원체 먹을 게 풍요로워서 감은 처다
보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한국 시골에 가면 감나무에서 감을 다 따고 높은 가지에 달린 감 한두 개 정도 남겨놓고
까치밥이라고 하는데,
미국인들 집에 있는 감나무는 하나도 따지 않고 그냥 새들 다 먹으라고 내버려둔다.
걷다가 감나무 있는 집을 지나치려면 다닥다닥 매달린 감을 놓고 새들이 파티를 벌리는 걸
볼 수 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눈만 뜨면 날아와서 먹는데 새들도 동지의식이 있어서 자기 동료만 먹게 놔두지 낯선 새는
쫒아버린다.

나는 오늘도 감나무 밑에서 고개를 쳐들고 혹시 잘 익은 연시가 없나 살펴본다.
어쩌다가 연시를 발견하고 보면 이미 새가 반은 먹어 치웠다.
고심 끝에 샌드위치 싸는 투명 비닐백으로 감을 싸놓았다. 마치 봉투로 배를 싸놓듯이.
비닐봉지로 싸놓으면 빨리 익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땡감은 충분한 시간 동안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연시가 된다.
어쩌다가 돌연변이가 있어서 빨리 연시로 바뀌는 녀석이 있기는 한데 한두 개 정도에
불과하다. 연시를 찾아보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새가 감을 쪼다가 놔두면,
감에다가 상처를 내놓으면 그 감은 일찍 연시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일찍이 새들은 그 방법을 알아내고 딱딱한 감에다가 미리 쪼아서 상처를 내놓는다.
며칠 후 연시로 변한 감을 먹는 것이다.
새가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얕잡아보고 말할 때 새대가리라고 하는 데 누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새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인 것 같다.

아직은 감나무 잎이 녹색이어서 붉은 감이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다음 주부터 날씨가
쌀쌀해 지면 감잎이 빨갛게 물들면서 떨어지리라.
자고 나면 감나무 밑에 울긋불긋한 감잎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걸 보게 될 것이다.
나뭇잎 다 떨어진 감나무에 붉은 감만 뎅그러니 달린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답다고.
나는 드문드문 빨갛게 물든 감잎과 만지면 터질 것 같이 익은 빨간 감을 보게 될 그 날을
기다린다. 정녕 아름다운 가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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