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타 손 짜장면, 헷갈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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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할 때 입을 가벼운 바람 잠바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옷장을 들여다봐도 입을 만한 게

없다.

아무거나 입어도 상관없는 나이이기는 해도 그래도 어울리지 않게 입고 다닐 수는 없다.

값싸고 그럴듯한 잠바를 어디서 구하나 하다가 시골 장터에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가까운 일산장이나 금촌장이면 될 것 같아 장날을 챙겨보았다.

어딘가 메모지에 적어 벽에 붙여놓은 게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오래전에 적어놓은 핑크색 메모지에 일산장-2, 7, 문산장-5, 10, 금촌장-1, 6, 이라고

적혀 있다.

오늘이 5일이어서 어린이날이라고 쉬는 데가 많기는 해도 설마 장날까지 쉬겠나 하는

생각에 문산장을 찾아갔다.

전철만 타면 문산도 금방이다.

시장을 향해 걷다 보면 참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는 참기름집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기름

냄새가 나지 않았다. 별일이네! 생각했다.

참기름집을 들여다보았더니 최신식 기계는 물론이고 새롭게 리모델링해 놓았다.

드럼통처럼 둥그런 스테인리스 함축기를 세 개나 설치해 놓은 게 최신형 맥주 공장 같아

보였다.

참기름집은 참기름집인데 냄새가 사라진 집은 참기름집인지 맥주 공장인지 구분이 안 된다.

 

오늘은 장이 서지 않았다. 장날이 아닌 시장은 볼 게 없었다.

채소 파는 할머니더러 문산장이 언제냐고 물어보았다.

어제가 장날이었단다. 그러면서 문산장은 49일이란다.

핑크색 메모지에 적어놓은 장날이라는 게 엊그제 적어놓은 거로 알았는데

어느새 새로 바뀌었나 했다.

늙으면 인지능력이 둔해서 세월 감각도 더디다.

내가 엊그제 적어놓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어도 10년 전을 말한다.

세월은 빨리 흐르고 나도 세월 따라 늙어간다.

뒤돌아볼 틈도 주지 않고 금세 지나간다.

 

터덜터덜 돌아 나오는데 전에 없던 상원사라는 중국집이 새로 문을 열었다.

처음이어서 손님을 끄느라고 그렇겠지만 짜장면이 4,000원이라고 큰 글씨고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면서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기웃거리다가

들어갔다.

앞에는 팔뚝에 1사단 마크를 붙인 젊은 군인이 여자 친구와 함께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나는 젊은 군인을 보면 멋져 보이고 부럽다. 스물한 살, 두 살이면 인생의 초봄이 아니더냐.

인생의 꽃인 시절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나.

짜장면은 시키기가 무섭게 나왔다.

노란색 국수는 별로 맛있는 면발이 아니었지만, 짜장을 섞으니 맛이 난다.

가격을 싸게 하려니 짜장면 분량이 쪼끔이다. 양이 적으니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두어 젓갈로 다 먹고 남은 짜장을 들춰봤으나 돼지기름 한 점도 없다.

양파만 넣고도 맛을 내다니…….

 

닷새 후에 장날이 다시 왔다. 전철에 승객이 없다.

상원사 짜장면집 앞을 지나가면서 손님이 얼마나 있다 들여다보았다.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다.

가격이 싸니까 손님이 몰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장마당으로 들어섰다.

바지며 잠바를 널어놓은 좌판 뒤켠에서 아저씨가 플라스틱 걸상에 걸터앉아 손님을 기다린다.

아무리 들춰봐도 마음에 드는 색깔도 없고 모양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기왕에 왔으니 아무거나 하나 살 요량으로 값을 물어보았다.

15천 원이란다.

1만 원이었는데 왜 이리 비싸냐고 했더니 그게 언제쩍 이야기냐는 거다.

그게 그런가 하고 그 옆에 있는 잠바를 들었다. 그건 2만 원이란다.

원단이 달라서 비싸다는 거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마음에 드는 게 아니어서 돌아섰다.

시장 안으로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젊은 아주머니가 남자 옷을 팔고 있었다.

색깔도 그렇고 모양도 그럴싸한 잠바를 옷걸이에 걸어놓고 13천 원이라고 붙여놓았다.

꺼내서 입어보았더니 마음에 든다. 사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는데 아주머니는 1만 원에 줄 테니

가져가란다. 속으로 이건 또 무슨 횡재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색깔이 다른 거로 더 있느냐니까 봉다리에서 새것을 꺼내놓는다.

2개를 사 들고 덜레덜레 걸어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돈도 절약했겠다 짜장면이나 먹고 가자 하는 생각에 짜장면 맛있게 하는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코너만 돌아가면 50년 전통의 수타손짜장집이 있단다.

오래간만에 수타손짜장 한번 먹어보자 하는 생각에 찾아가 보았다.

과연 앉을 자리 없이 손님으로 꽉 찼다. 가격이 비싸지도 않은 5천 원이다.

한참을 기다려서 드디어 짜장면을 받아놓았다. 지난번 상원각이나 이 집이나 그릇이며

양은 그게 그거다. 상원사는 노란 면발이었는데 이 집은 흰 면발이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수타 국수가 아니었다.

분명히 간판에는 수타 손 짜장이라고 써 놓았는데 수타가 아니다.

면이 고르게 가늘고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없다. 면이 너무 부드럽다.

기계로 뽑은 면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따지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만족해 하는 얼굴이다.

 

내가 옛날에 먹었던 수타 짜장면은 이렇지 않았다.

지금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가면 수타 국수를 뽑는데 옛날 내가 먹었던

그 맛 그대로이다.

내가 알고 있는 수타는 면발이 고르지 않고 약간 굵고 쫄깃쫄깃한 건데

지금 수타 짜장이라는 건 면발이 기계로 뽑은 것처럼 가지런하고 부드러워서

씹을 게 없다.

한국에서 수타라고 하는 건 이런 건가?

바람 잠바 가격도, 수타 짜장면도 헷갈리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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