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아시안 인종차별과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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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주류를 이루는 백인이나 흑인들 사이에서 아시안(중국, 한국, 일본)을 얕잡아보는

경향이 없지 않다.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아시안에 대한

인종 차별이나 혐오로 보인다.

아시안 중에서 중국은 인구도 많아서 아시안 하면 중국인이 대표주자다.

 

지난주 수요일(9월 4번째 주) 샘 리카드로 산호세 시장은 과거 중국인들에게 자행한

인종 차별과 폭력의 역사에 관해서 사과했다.

이에 앞서 시의회는 1887년 산호세 차이나타운 방화에 대한 사과문을 승인했다.

산호세시의 중국 이민자들 후손에게 사과는 코비드-19 대유행 기간 동안 미국에서

반아시아적 증오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 차별의

유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세기 후반, 십대였던 중국인 영숭쿵은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자리를 잡았다.

산호세 차이나타운에는 그의 삼촌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그는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던 중국인들이

번 돈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일을 도왔다.

나중에 젊은 영은 임금이 후한 백인 가정 노동자로 일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백인 아이들이 그에게 돌을 던지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해 뛰어야만 했다.

 

1887년, 산호세 시의회에서 차이나타운은 이웃의 성가신 존재라고 선언하자 사람들은

차이나타운에 몰려와 불을 질렀다.

1887년 5월의 사태였다. 한때 수십 개의 상점과 식당이 몰려 있던 차이나타운은 불길에

휩싸였다. 중국인 이민자들이 예배보던 교회도 타버렸다. 이재민 1,400명이 발생했다.

1870년대와 1880년대에 미국 서부 지역에서만도 150여 건 이상의 반중국 폭동이 발생했다.

최악의 예 중 하나는 1871년 로스앤젤레스 차이나타운에 불을 질렀고 반중국 정서는

나중에 폭행, 방화, 살인으로 확대되었다.

당시 19명의 중국인이 폭도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중국 이민자들은 180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기간에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골드 러시가 끝난 다음 대륙횡단 철도를 건설하는 데 노동력으로 기여했다.

중국 공포증은 1882년 중국인 배제법을 공포하면서 절정에 달했는데,

이는 사실상 중국 노동자의 이민을 금지하는 법이었다.

2011년 10월 미국 상원 의회는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이민을 제한하는 유일한 법안으로

남아 있는(1882년 제정된 중국인 배제법) 이 법에 대해 사과했다.

 

지난주에 산호세시는 중국 이민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 과거 차이나타운 방화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한 첫번째 대도시다.

산호세시 결의안은 “심각한 부당함에 대한 사과는 과거를 지울 수 없지만,

역사적 잘못을 인정하면 오늘날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인종 차별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산호세는 현재 1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약 30%가 아시아인이다.

 

아시안을 얕잡아보는 데에서만 인종 차별이 시작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아시안의 교육열이 어느 인종보다도 높아서 결과적으로 좋은 직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인종 차별 이유가 되겠다.

예를 들어 아마존 직원 중의 저임금 시간제 근무자 40만 명 가운데 60% 이상이 흑인이나

히스패닉인 것으로 나타났다.

저임금 직원 풀타임의 경우 연봉은 평균 3만 8천 달러인 것에 비해서 회사 운영이나

테크닉 직의 경우 연봉이 평균 12만 5천 달러 이상이다.

고임금 직종의 82%가 백인과 아시안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장 만만한 아시안에게

질투와 혐오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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