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연속 소설 ‘탁란’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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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현아는 예전처럼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거실엔 골동품이 더 많아진 것 같았고 벽에 걸려 있는 뻐꾸기시계에서 뻐꾹! 뻐꾹!”

하며 시간을 알리는 소리도 여전히 들렸다.

뻐꾸기는 늦봄까지 짝을 찾지 못한 수컷이 처절하게 운다던데, 오늘따라 아주 슬프게 들렸다.

우려했던 것처럼 현아 엄마가 싫어하는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서울은 온종일 안개가 끼었다. TV 뉴스에서는 미세먼지가 위험수위라며 외출 시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한다.

그다음 뉴스로 25년 전에 스웨덴으로 입양 간 에바 에릭슨이란 숙녀가 친어머니를

찾았다는 뉴스를 보여 준다. 나와 비슷한 사례여서 관심이 쏠렸다.

그동안 친어머니는 딸을 애타게 찾아다녔다면서 모녀 상봉 장면을 보여 주었다.

뉴스를 보면서 어쩌면 나의 친엄마도 미치도록 나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잘 자란 내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살면서 아기를 버리고 가버린 무책임하고 매정한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고통이자

악몽이었다.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미움과 원망이 용광로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

같았다.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문득문득

솟구쳐 올라오곤 했다.

에바 에릭슨 모녀의 상봉은 어쩌면 내가 엄마에 대해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내친김에 친엄마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아기를 버려야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 나라는 인간의 시작은 어디였는지, 나는 누구를

닮았는지도 알고 싶다.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이번 기회에 떨쳐버리고 싶다.

현아와 함께 홀트 아동복지회를 방문했다. 두 번째 방문 때 종이쪽지에 이름도 없이

달랑 생년월일만 적혀 있는 메모지를 찾아냈다.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목사님이

거두어 주었다는 기록을 읽었다. 반가우면서도 황당했고 아쉬웠다.

네모난 상자 속에 눈도 뜨지 못한 아기가 누워있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엄마는 남의 둥지에 알만 낳아놓고 사라진 뻐꾸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에서 깨어 난 나는 뻐꾸기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뻐꾸기는 짝사랑의 상징이라던데……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섰지만, 나름대로 심리적 치유를 경험했다.

엄마가 남겨놓은 종이쪽지에 굵은 볼펜으로 또박또박 써놓은 생년월일에서 사려 깊은

사랑을 읽었기 때문이다. 생일 없는 입양아가 얼마나 많은데, 나는 확실한 생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낳아 주셔서 고맙고,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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