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을 느낀다.
1969년 10월 어느 날, 을지로 입구 롯데호텔 맛은 편에 있는 미 대사관에 인터뷰하러
들어갔다. 미국인 영사가 자기 방으로 불러드려 악수를 청하면서 미국에 이민 가는 사람
인터뷰는 처음이라면서 매우 반가워했다.
친지들이 설이나 쇠고 가라고 해서 양력설일망정 만둣국을 먹었다.
그때는 미국에 가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5살, 6살 먹은 여자아이 자매를 보호자 없이 보내면서 우리에게 부탁도 했다.
1970년 1월 4일 내가 한국을 떠난 날이다. 무척 추워서 모두 오버코트를 입었다.
얼음이 얼고 눈이 쌓여 있는 김포공항 입구에는 택시 승차장이 있었고
우리를 배웅나온 친지들과 친구들로 가득했다.
내가 아는 친구들은 모두 나왔다.
심지어 군에 나가 있던 친구가 무단 외출을 하면서까지 마지막 떠나는 나를 배웅하러
김포공항에 나왔으니까.
그때는 한번 미국에 가면 내 생애에 다시 볼 날이 있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한국 국적기도 없어서 노스웨스트나 자팬 에어라인을 타야만 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와서도 그랬다.
샌프란시스코 한국 영사관 영사가 공항에 마중 나왔다.
우리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아니었고 우리와 함께 온 자기 딸들을 인계받으러 나오기는
했지만, 아무튼 마중 나왔었다. 미국에 오자마자 영사관에 들러서 신고했다.
영사관이라고 해 봐야 어쩌다가 한국인 유학생이 들르는 한산한 곳이어서
우리를 반겨주고 대우해 준다는 게 역력해 보였다.
세월이 흘러 2022년 7월이다.
무심코 열어본 한국 여권에서 유효기간이 지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권을 갱신해야겠기에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에 전화로 문의했다.
지금처럼 디지털로 모든 업무가 처리되는 세상에 육성으로 전화를 받아주는 것만도 고맙다.
하지만 안내는 매우 까다로웠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은 자동차 파킹에 문제가 있어서 산호세 순회 영사 일에 맞춰
여권 재발급 신청을 하겠다고 했다.
일단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예약한 날짜 시간에 와야 한단다.
한 달에 한 번 예약하는 날이 있는데 8월 달에는 8월 2일 오전 10시부터 인터넷 예약을
받는단다. 전화 예약은 안 된단다.
하면서 주의 사항이 따랐다. 인터넷 접속이 많아서 연결이 안 될 수도 있으니
연결이 안 되더라고 그냥 끊지 말고 10분 정도 기다리면 연결될 것이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밖에 없는 귀한 날짜를 행여나 놓칠세라 크게 적어 벽에 붙여놓았다.
8월 2일 9시 반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기다렸다. 10분 전부터 접속해 들어가
들쑤시고 돌아다녔다. 내가 첫 번째 민원이어서 그런지 술술 잘 나간다.
예약 날짜 역시 한 달에 한 번뿐인 8월 16일이란다.
오후 1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기에 이것도 첫 번째 민원으로 잡아놓았다.
늘 겪는 거지만 얼굴 대 얼굴로 만나서 물어보면 쉽게 납득하고 간단한 일을
인터넷으로 하다 보면 읽어야 할 사항이 많다.
인터넷이 편하다고들 하지만 편한 사람 뒤에는 그 일을 대신 해야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내일을 네게 떠넘기는 게 인터넷이다.
과연 인터넷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