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에 있는 정독 도서관(옛 경기고 자리)에서 빌려본 ‘재미있는 지옥 재미없는 천국’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면 한국은 또 다른 외국 같다.
이민 연조가 깊어지면서 한국이 또 하나의 외국처럼 된 사람에게도 한국은 여전히 그립다.
고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막상 가서 보면 각자 세상 살기에 바빠서 누구 하나 내게 신경 써주는 사람 없다.
그러면서도 미국에서 사는 한인들은 끊임없이 한국을 그리워한다.
1995년 ‘재미없는 천국, 재미있는 지옥’이란 에세이집을 낸 여류시인이 있다.
여기서 천국은 미국이고 지옥은 한국이다.
오래전에 미주 한국일보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칼럼을 썼던 작가다.
최근에 남편이 노환으로 죽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살던 집을 다 팔고 한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에서 산 지도 거의 60년이 다 돼가는데 지금이라도 한국에 가겠다면서
미국에서 같이 지내던 친지들과 고별 파티까지 열고 한국으로 갔다.
물론 한국에서 산다고 해도 미국에서 받던 연금 혜택은 고대로 누리기는 하지만
늙은 나무는 옮겨 심으면 죽는다던데 배짱도 좋지, 늘그막에 결단을 내리다니……
혹자는 “가서 얼마나 사나 보자!” 결국 적응 못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가 쓴 책에서 말하던 ‘지옥 같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1995년 지옥 같았던 한국이 2022년 천국으로 변했다.
미국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한국으로 몰려간다.
서울 근교 은퇴 양로원에서 한 달에 2천 달러만 내면 호의호식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어쩌구 하면서 미국에서 은퇴한 노인들을 꾄다.
유튜브에 보면 훌륭한 아파트에 수영장, 헬스장, 테니스 뭐 없는 게 없이 만들어놓고
여가 시간에 노인들이 쭉 둘러앉아서 사교인지 뭔지도 하는 풍경도 보여준다.
그럴 때면 바람잡이 할머니가 끼어 있다가 남자 노인들이 친구 하자고 하지만 어쩌구 한다.
이거 정말로 믿으면 안 되는데……
한국 정부에서 은퇴한 미국 교포들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기 시작한 게 10년 전부터다.
65세 이상이어야 한국 국적을 받을 수 있다.
이중국적이란 미국국적과 한국국적을 동시에 보유하는 거다. 이중국적 보유자는 양국에
의무와 권리를 지니게 된다.
원래 선진국은 연령제한 없이 자동으로 이중국적 제도를 쓰고 있다.
영국인이나 일본인, 독일, 이탈리아인이 미국에서 아이를 나면 아이는 이중국적을 보유한다.
하지만 한국은 하나의 국적만 인정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교포들이 아이를 나면 한국국적은
포기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 사는 여자들이 원정출산을 해서 이중국적을 유지하려
들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아이의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헌데, 한국정부가 10년 전부터 미국 거주 은퇴자에게는 이중국적을 허용했다.
그 까닭은 고국을 그리워하는 한국 노인들을 위해서라는 명분도 있고, 경제적 이유도 있다.
이탈리아나 독일 같은 나라에는 미국에서 은퇴한 노인들이 고국에 돌아와서 거주하는
양로원이 많다.
평생 미국에서 일하고 노인이 되면 고국에 돌아가서 사회보장 연금이며 은퇴연금을 받는다.
전체적으로 보면 꼬박꼬박 국고로 들어오는 연금이 상당한 액수다.
한국 이민자들도 은퇴 연령에 도달한 사람들이 생기면서 연금을 한국에서 받게 하려고
이중국적을 허용했다.
이중국적 제도가 생기고 내가 첫 번째로 신청해서 한국 여권을 받은 지 딱 10년이 됐다.
10년 전 내가 국적회복을 하는 데 걸린 기간은 한 달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국적회복도 까다롭다. 국적회복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심사 기간도 길어졌다.
국적회복을 하려면 한국에서 7개월을 체류해야 국적회복 신청이 가능하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국적회복을 하겠다고 나서는 까닭은 한국이 천국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송도에 새로 짓는 외국인 아파트로 이주하는 은퇴 교포들도 많다.
늙었지만 여류시인도 천국으로 변해버린 한국에 가서 국적회복하고 남은 여생 즐겁게 잘
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