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2019

IMG_1-1-4-1

4

LA에서 사는 막내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막내는 UCLA 간호학과 교수다. 다짜고짜 남편 이야기부터 털어놓았다.

 

― 어? 그거 큰일 났네. 코로나바이러스가 고령에는 치명적인데……. 우선 방을 따로 쓰고

언니는 마스크를 써야 해.

 

동생은 나를 걱정해서 감염되면 안 된다는 주의부터 주었다.

남편의 증세를 설명해 주고 증상이 이런데도 병원에서 입원시켜 주지 않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물어보았다.

 

― 병원마다 입원 병동이 부족해서 그래. 산소 호흡기며 장비도 없고, 의료진도 달리고,

지금은 병원마다 다 그래. 그래서 코로나19 환자를 가능하면 집에 머물게 하는 거야.

집에서 버티다가 나면 다행이고, 죽기 전에 입원시키기도 바쁘다니까?

 

나는 동생의 말을 듣고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치 홀대받는 기분이

들었다.

 

― 얘. 그러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 그럴 경우, 구급차를 불러. 환자를 응급실로 밀고 들어가는 거야.

죽는다고 엄살을 떨어야지, 그냥 있으면 봐주지도 않아.

 

― 그래? 알았다.

 

나는 부아가 났다. 불현듯 각오 같은 게 생기면서 이를 꽉 물었다.

전화를 그냥 끊기가 뭐해서 동생네는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 요새 넌 어떻게 지내니?

 

― LA도 자가 격리잖아. 학교에도 못 나가고 온라인으로 강의를 해야 해.

처음 해 보는 온라인 강의라서 실수투성이야. 직접 대면하지 못하니까 학생이 정말

알아들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 그래, 다니엘은 잘 지내고?

 

다니엘은 막내 여동생의 아들이다.

 

― 걔는 요새 바빠. 아마 세상에서 제일 바쁠걸? 걔가 지난번에 RN 땄잖아.

LA 메모리얼 병원에 환자가 몰려들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집에 오면 차고에서

그날 입었던 옷을 몽땅 벗어서 세탁기에 넣고 돌린대. 알몸으로 샤워하고 나서야 집 안으로 들어선다네.

그렇게 한 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어.

 

― 다니엘이 고생이 많구나. 먹을 거라도 잘 챙겨줘라, 얘.

 

― 지 와이프가 있는데 내가 챙겨줄 거나 있나, 뭐?

 

― 그래도 그렇지. 젊은 여자애가 뭘 만들 줄 알겠니. 네가 나

서야지.

 

나는 다니엘이 걱정돼서 한마디 해 줬다.

 

― 며느리도 바빠. 주말이면 다니엘이 지 와이프를 데리고 봉사하러 간다나 봐.

 

LA 출신 빈곤 구제 전문가인 한인 2세 앤 이 씨가 유명한 영화배우 숀 펜과 함께 LA시에

무료 코로나19 진단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다니엘이 거기에서 봉사 활동을 한다고 했다.

LA시에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코로나19 선별진료소를 차려놓고 무료로 증상이 있는

주민들에게 진단검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한 다니엘은

와이프와 함께 자원봉사에 나섰다.

LA 메모리얼 병원 중환자실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들을 돌보며 오후 9시까지

일했다. 방호복을 벗을 수 없어서 점심을 거르고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로 꼬박 6시간 넘게 일했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토요일이라고 해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동포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아 보였다. 와이프는 다니엘보다 더 열심이었다.

휴식도 마다하고 동포들을 돕는 와이프의 열정이 다니엘에게는 영양제처럼 느껴졌다.

다니엘이 진국스러운 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희생정신까지 투철하다는 건 몰랐다.

 

― 다니엘이야말로 죽어서 천당 가겠구나.

 

― 걔가 어려서부터 가슴이 뜨거웠잖아. 불쌍한 걸 보면 도와주지 못해서 잠을 못 잤다니까?

그것보다도, 빨리 앰뷸런스 불러. 병원에 가서 나 죽겠다고 아우성치란 말이야.

 

― 그래, 알았다. 전화 끊자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