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장례에는 종류가 많아서 매장, 화장, 수장, 조장, 풍장, 수목장, 녹색 화장 등등 다양하다.
그중에 새로 생긴 퇴비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퇴비장은 시신을 거름용 흙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처리하는 장례 방식이다.
캘리포니아 뉴섬 주지사는 2027년부터 퇴비장(Human Composting Burial)을 허용한다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은 고인의 시신을 잡풀, 나무, 미생물 등을 활용해 30∼45일 동안 자연적으로 분해하고
퇴비용 흙으로 만드는 것을 허용한다.
퇴비장 법안은 매장과 화장 외에 고인과 유족에게 친환경적인 장례 선택권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퇴비장은 워싱턴주가 2019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한 이래 오리건, 콜로라도, 버몬트주가
시행 중이다.
퇴비장 전문 업체 리컴포즈에 따르면 유족은 거름으로 돌아간 고인의 유해를 돌려받거나
공공 토지에 퇴비로 기부할 수 있다. 이 업체의 퇴비장 비용은 7,000달러다.
법안을 발의한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주 하원의원은 매장, 화장은 탄소 배출과 화학물질
유출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며 퇴비장은 고인을 흙으로 돌려보내는 환경친화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어차피 우리가 죽으면 몸뚱어리는 썩어서 흙이 된다.
나는 호수에 나가 새들을 관찰하는 취미가 있다.
새들이 하는 일은 온종일 주워 먹는 일이다. 잠시도 쉬는 일이 없다.
분주히 다니면서 먹고 또 먹는다. 새는 하루에 자기 몸무게만큼 먹는다고 했다.
그 많은 먹이를 먹으면서도 배탈이 나지 않는 이유는 곧은창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먹으면 곧 배설한다.
새들은 젊은 새인지 늙은 새인지 구분이 안 된다.
새들도 연령대가 있어서 젊고 늙음이 존재할 터인데 우리의 육안으로는 구별이 안 된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머리가 하얘지듯이 새들도 털의 색깔이 바뀐다면 언뜻 알아보겠건만,
새들에게는 색의 변화가 없다.
식별이 안 된다는 것은 늙은 새들도 죽기 전까지 젊음을 유지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나는 새 무리를 볼 때마다 의문이 생긴다.
저 많은 새들이 죽을 때는 어디에 가서 어떻게 죽는지 궁금하다.
물론 새들의 세계에서도 생로병사가 반복될 것이다.
새들은 숫자가 많으니까 사체도 많아서 여기저기서 눈에 띄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다.
산속에서 새들이 몰려 죽어 있는 곳을 본 적도 없고, 도대체 자연사한 새의 사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때때로 길바닥에 죽어 있는 새를 보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고사에 불과하다.
집 근처에 죽은 새의 사체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것도 모두 사고사다.
사고로 죽는 새는 새의 숫자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사하는 새들은 어디서 죽는단 말인가.
궁금해서 『Book of North American Birds』란 책을 찾아보았다.
새들은 자신이 병에 걸렸는지 몸에 이상이 생겼는지 스스로 알아차리고 대처한다.
살 때와 죽을 때를 구별해서 미련 없이 선택하는 것이다.
다친 새는 몸을 숨기고 이 부상에서 살아날 수 있는지 아니면 이것이 생의 마지막인지를
스스로 알아서 행동한다.
죽을 때는 숲속으로 숨어든다.
새뿐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은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을 인지하고 숨을 곳을 찾아 숨어버린다.
이것이 본능이다. 동물이 병에 걸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을 상실하면 어느 구멍이나
으슥한 곳으로 숨어 몸을 보호하려 든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자연은 그 많은 동물의 사체를 사람의 눈에 띄게끔 내버려 두지 않는다.
사체를 빨리 부패시키거나 다른 생명체의 먹잇감으로 변환시켜 버린다.
까다로운 몇몇 육식동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포식자인 쥐, 고양이, 라쿤, 여우, 독수리,
까마귀 같은 부류들은 후각이 발달해서 먹잇감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아낸다.
거저 얻은 먹이를 즐겨 먹어 버린다. 그리고 개미나 구더기 또는 세균들은 매우 빠르게
나머지 일을 처리한다. 자연 생태계에서 동물의 사체는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린다.
이것이 자연의 순환과정이다.
새나 동물들은 매우 영리해서 배부르면 그만 먹고 자신이 먹이사슬의 한 고리임을 알고 있다.
인간처럼 좀 더 오래 살아 보려고 온갖 꼼수를 부리지 않는다.
죽어가는 과정이 속도감 있게 빨리 진행되기 때문에 새나 동물의 사체가 우리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사람은 새나 동물과 달라서 죽음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 볼 일이다.
노년은 내일이 없다. 일순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생각도 없이 준비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만큼 인생을 허무하게 보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 보라.
살아 있는 시간이란 아름다운 인생의 마침표를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이다.
조금이나마 인류에게 보탬이 되는 마침표가 된다면 인생이 좀 더 의미 깊어질 게 아니겠는가.
퇴비장이라는 것이 새로운 장례 방법이어서 조금은 생소하게 들리고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연의 순환과정을 이해하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인류에게 직접적으로 보탬이 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가장 자연스러운, 가장 친환경 장례가 퇴비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