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다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책 읽는 사람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늘 읽는 사람은 읽고 안 읽는 사람은 돈을 주면서 읽으라고 해도 읽지 않는다.
적으나마 책을 읽는 사람들도 취향이 있어서 관심 있는 분야의 책만 읽는다.
책 읽는 게 취미인 사람 중에서 다시 취향에 따라서 갈리고 나면
문학 서적을 읽는 사람은 매우 적은 숫자에 불과하다.
얼마 안 되는 문학 서적 읽는 사람들도 다시 나뉜다.
재미로 읽는 사람들과 전문적으로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 그리고 문학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문학을 흠모하는 사람들은 책은 많이 읽으면서 자신도 써보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문학 강의를 듣기도 하고 습작도 해 보고 발표도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토론도 한다. 나도 이 부류에 속한다.
그동안 배워서 아는 것도 많다.
그러나 이분들이 한 가지 모르고 있는 게 있는데 글쓰기는 그냥 밥 먹듯 써지는 게 아니다.
간절하고 절실한 바람이 없으면 이뤄지지 않는다.
마치 사랑과 같아서 서강대 여학생이 교수인 신부님께 너무나 간곡하게 구애함으로써
신부님이 파계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사실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내가 100% 공감하는 고미숙 유튜브의 글쓰기를 소개한다.
나는 쓰고 싶다. 간절하게 쓰고 싶다.
남에게 잘 썼다는 칭찬받기보다는 나 스스로 만족하는 글을 쓰고 싶다.
무엇인가 쓴다는 것은 창조하는 일이니까.
나는 쓰고 싶었다. 20대에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글쓰기 공부하는 건 부정적이었다.
글을 써서 밥 먹고 산다는 것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글쓰기 공부하려고 대학에 간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무슨 일이든지 잘해보려고 하면 간절하고 몰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면서 글을 쓴다?
직업과 글쓰기를 양립한다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인간은 아니 나는 하나에만 몰입했지 두 가지를 동시에 몰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다는 게 별거냐.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면 되는 거다.
재미있게 쓰다 보면 쓰려고 했던 글이 더욱 재미있어진다.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발달하지 않는다.
생각을 글로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
발전하면서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몰고 간다.
이게 곧 창조적 에너지이다. 이게 곧 창조다. 삶의 가치를 창조한다.
글을 쓰다 보면 에너지를 다른 데 쓰지 않고 글쓰기에만 집중하고 싶어진다.
그러면 모든 일거리를 중단하고 글쓰기에만 몰입한다.
먹고 자고 글쓰기에만 몰입한다. 하다못해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피한다.
힘을 낭비해서는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친구가 다 사라진다. 친구 만나는 시간도 아깝다.
왜 친구도 만나고,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글을 쓰면 안 되나?
우주 만물은 사이클이 있어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리드미컬하게 넘어간다.
아동, 청년, 중년, 노년도 마찬가지로 인생의 사이클이다.
사이클은 리듬을 탄다.
글쓰기도 리듬이 있어서 리듬을 끊으면 다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리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결국 리듬은 몰입으로 이어지고 머리에는 글쓰기 이외에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게 없다.
나는 박경리나 박완서 같은 작가도 그렇게 살았다고 확신한다.
소설가 김홍신이 ‘대발해’를 만년필로 쓰다 보니 어깨 수술을 3번이나 받았다고 하지 않더냐.
글쓰기에 푹 빠지기 전에는 작은 성취도 이뤄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