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도 병이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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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샌프란시스코 너의 집에다가 전화했더니 네 처가 받으면서

그이가 서울 갔는데요. 서울에서 하는 일이 많으니 전화 걸지 마세요하더란다.

그런 말을 듣고도 친구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눈 날리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한 시간이나 노닥였다.

친구는 나를 별로 그리워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다 늙고 나서, 그것도 와이프까지

죽고 나니 등한시하던 나까지도 그리운 모양이다.

한번 전화 걸면 길게 통화하는 거로 봐서 알 것 같다.

 

나는 그리움이 많은 사람이다. 한 번 정이 들면 끊기가 매우 괴롭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게 한 번 빠져들면 헤어지기 어려운 것처럼 동성 간의 우정도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단편소설 진정한 사랑은 정말 사랑에 빠진 친구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쓰고 나서도 이 소설을 세상에 발표해도 될까?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은 허구니까 독자들이 허구라고 생각하겠지 하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언제인가는 진정한 사랑후편을 쓰려고 한다.

어떤 독자는 진정한 사랑을 읽고 혹시 주인공이 바보가 아니냐는 사람도 있었다.

바보일 수도 있겠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숙맥은 소설과 같을 수도 있고 사랑에 깊이 빠지면 그러고도 남는다.

아내가 먼저 죽으면 그립고 괴로워서 참지 못하고 극단 선택을 한 남자를 신문에서

여러 번 읽었다.

진정한 사랑은 엊그제 출판한 소설집 ‘LA 이방인에 실었다.

 

처음 친구가 캐나다에 이민 갔을 때 친구와 나는 편지로 연락하며 지냈다.

그때만 해도 전화비가 비싸서 전화를 건다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편지질도 한참 하다 보면 발달해서 직접 카세트테이프에 음성으로 녹음해서 보내곤 했다.

카세트테이프에 내가 사는 사연을 녹음하고 혹시 듣는데 지루할까 봐 사이사이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삽입해서 테이프를 완성하기도 하면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그리움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워서 편지를 보내는데 친구에게서 회신은 거의 오지 않았다.

내가 화를 내면서 왜 회신을 안 하느냐고 독촉하면 그때야 겨우 몇 자 적어 보내오곤 했다.

나는 친구가 그리워서 못 배길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둘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주위에 형제자매와 친척도 있었지만, 그래도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드디어 여름휴가를 얻어 임신한 아내와 두 살 먹은 아들을 차에 태우고

그리운 친구를 찾아 먼 여행길에 올랐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것은 첫날 캘리포니아주에서 오리건주로 경계선을 넘어서

링컨 마을 바닷가 모텔에서 자던 밤이다.

벽난로에서는 장작 불꽃이 춤을 추고 커다란 유리 벽으로 태평양 바다가 보였다.

밤새도록 벽난로에 불을 피워놓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그리운 고국을 떠올리던 밤이었다.

워싱턴주 올림피아 국립공원을 지나 밴쿠버에 들어섰다.

밴쿠버 시내에 있는 스탠리 공원을 지났다.

로키산맥을 넘어서 북미의 알프스라는 밴프에 들어섰다.

루이스 호텔에서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며 아침을 먹고 제스퍼로 향하던 일.

가면서 만나는 호수들은 짙은 초록빛 물이었다. 초록색이 너무나 짙고 깊어서 많이 놀랐다.

제스퍼에서 콘도라를 타고 스키장에 올라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사진 찍던 기억도 난다.

그날 밤 에드먼턴에 들어갔으나 친구네 집 문을 두드리기에는 밤이 너무 늦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친구 와이프는 애 낳으러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친구는 직장에 가고 와이프는 병원에 입원해 있고 집에는 친구 어머니만 계셨다.

친구 어머니는 내가 심심해할까 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이야기는 6.25때 리어카에 짐을 싣고 경기도 광주로

피난 가던 이야기다.

6.25는 일생일대에 죽느냐 사느냐의 일이었으니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친구가 그리워서 나흘을 달려서 먼 에드먼턴 캐나다까지 갔는데

친구는 직장에 빠질 수 없어서 아침이면 출근했다.

퇴원해서 집에 누워있는 친구 와이프에게 떠난다고 인사만 하고 돌아왔다.

 

오면서 생각했는데 친구도 총각일 때 친구지 결혼하고 나면 친구의 반은 와이프 것이고

남은 반 중에서도 1/4은 직장 것이고 나머지 1/4로 친척, 친구들과 나누는 게

삶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친구의 머릿속에 내 영역은 1/16이 못되었다.

미치도록 그리운 친구를 그렇게라도 만나고 났더니 그리움이 수그러들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한번 친구를 사귀면 친구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사랑할 때 애인이 보고 싶은 것과 유사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 잊고 살았다.

수년 전에 친구 와이프가 죽고 나서 친구는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

1/161/4로 바뀌더니 급기야 1/2을 넘본다.

내게 뻔 찔 전화하는 거로 봐서 말이라도 나눌 친구가 그리운 모양이다.

어제 통화했는데 오늘 또 걸려왔다.

사랑은 일종의 병이지만 그리움도 병이라면 병이다.

그리움 병은 의사 처방도 없다. 의사도 누구도 그리움 병은 고쳐줄 수 없다.

오로지 상대만이 고쳐줄 수 있다.

만나보고 나 혼자서만 그리워한다는 걸 확인해야 고쳐지는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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