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수술 받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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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내장 수술을 이렇게 거창하게 하는 줄 몰랐다.

경험자들의 말을 여럿 들었는데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서 그냥 누워있으면 콩깍지 떼어내듯

그렇게 심플한 수술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겪은 백내장 수술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의료 침대에 누웠다.

준비 과정이 복잡했다. 나처럼 백내장 수술을 받으려는 환자 수도 서너 명은 되지 싶다.

내게 달라붙은 전담 간호사가 있는가 하면 보조 간호사들이 수시로 다가와 전담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도와주고 있었다.

먼저 오른손 등에다가 닝거 주사를 꼽는가 하면 혈압계에 혈압 측정이 자동으로 되게 해

놓아서 5분 간격으로 왼팔에 차고 있은 압박기가 좁혀들었다.

심장 박동도 가동 중이기 때문에 가슴에는 전깃줄이 3개나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TV에서나 보던 산소호흡기를 작동시켜 놓고 내 코에다가 신선한 산소를

내뿜는 투명 플라스틱 줄을 고정해 놓았다.

이런 장치들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환자가 대수술을 받으러 수술실로 향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했다.

 

나를 담당하는 간호사는 나이 지긋한 동양 여자이지만 이름표에는 영어 이름을 달고 있다.

내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야구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자이언트 랜이에요?”

맞아요. 자이언트 좋아해요.”

어제저녁 게임 봤어요?”

대뜸 내게 어젯밤 게임을 봤느냐고 묻는다.

공교롭게도 어제저녁만 빼놓고 그 이전 게임은 모두 보았다.

자이언트와 오클랜드 에이스의 게임이 연거푸 3일이나 벌어졌는데 자이언트가 3게임 모두

졌다. 그리고 어제저녁부터는 LA 앤절스와 붙었다.

간호사는 신이 나서 어제저녁 게임에서 자이언트가 이겼단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젯밤 자이언트 게임에 자기 아들이 2루수(2nd Base Man)로 선발되었단다.

자이언트 내야수에 있었지만, 2루수로 선발되기는 처음이라면서 자랑스러워했다.

간호사의 말은 듣고 주변에 있던 다른 간호사들이 우와~”하면서 환성을 지른다.

모두 부러워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그러지 않아도 자랑하고 싶어서 죽겠는데 한마디 끝날 때마다 옆에서들 기름을 붓는다.

간호사는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야구만 했다느니, 자이언트에 입단하고

포지션을 얻기까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로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그동안 야구 경기를 즐겨 보기는 했지만, 선수들이 어떤 고민에 빠져 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자이언트를 예로 들면 피쳐가 13명이다. 캐처는 2, 내야수가 6, 외야수가 4명이다.

그리고 핀치 히터가 1명 있다.

야구는 피쳐가 얼마나 잘 던지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 나는데 과연 피쳐 수가 엄청

많다. 13명 중에서 선발되어 나간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간호사의 아들이 내야수인데 내야수 6명 중에서 매번 경기마다 3명이 선발된다.

2:1의 경쟁 뚫어야 경기에 나갈 수 있다. 말이 좋아서 경쟁이지 포지션마다 고정 선수가

자리 잡고 있는데 고정 선수를 물리치고 자리를 빼앗는다는 게 그리 쉽겠는가?

 

그러니까 샌디에이고 퍼드레의 한국 선수 김하성과 최지만이 내야수이다.

그들이 게임에 나온다는 것은 경쟁에서 이겼다는 의미이다. 고정 선수보다 월등했다는

의미이다.

간호사의 아들이 모처럼 2루수로 선발되어 출격했으니, 엄마로서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하겠는가? 거기에다가 자이언트가 3게임 연속으로 지다가 드디어 승리했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간호사의 말을 흥미 있게 들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타이로(Thairo Estrada: 간호사의 아들 이름) 팬이 돼 줄게요.”

한마디 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의료 침대에 누워있는 채로 수술실로 밀려갔다.

머리를 침대 머리맡 부분에 고정시켜 놓았으니 보이는 건 나의 눈과 천장 사이에

알라스카 게의 긴 다리처럼 뻗어 나온 기계들 뿐이다.

정말 수술은 간단했다. 몇 마디 오고 가는가 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단다.

마취도 없었고 아프지도 않았다. 집도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뭐 얼마나 대단한 수술을 했다고 간호사가 달라붙어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아내에게 전화해서 자동차를 수술실 앞에 대기시키라고 하는가 하면.

머리를 숙이면 압력이 올라가서 안 된다면서 내 신발까지 신켜준다.

휠체어에 앉히더니 밀고 밖으로 나와서 차에 태워주기까지 했다.

수술도 수술같지 않은 수술을 받으면서 중환자 대우를 받다니 별난 수술이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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