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거리 알선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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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가 중학교 1학년이다.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인데 이곳에서는 초등학교가 5년제여서 중학교에 입학했다.

하교 시간에는 중학교 앞에 있는 편의점이 꼬마 학생들로 북적인다.

과자나 소다가 불티나게 팔린다.

어느새 손주도 편의점에 들락거리면서 소다를 사서 마신다.

편의점에 드나들려면 돈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할머니한테 한푼 두푼 얻어다가 쓰더니 이젠 방법을 바꿨다.

돈 벌겠다고 일거리를 내놓으라는 거다.

 

자동차 닦으면 10달러 주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에 우리 집으로 와서 할머니 차를 닦고 10달러를 받아 갔다.

다음 주에는 내 차를 닦고 그다음 주에는 세워놓은 제3 자동차를 닦았다.

돈이 필요할 때면 일거리를 내놓으라는 바람에 할머니는 별별 궁리를 다 한다.

안방 진공 청소도 시키고 패밀리룸 청소도 시켰다.

그것도 모자라서 지난 금요일 오후에는 창문을 닦게 했다.

일을 시킬 때마다 손주는 처음 해 보는 일이어서 할머니가 시범을 보여주고

옆에서 감독해야 한다.

 

지금은 어려서 1020분 일하고 가지만 조금 더 커서 고등학생이 되면

그때는 정식으로 일을 부려 먹을 수 있다.

앞마당, 뒷마당 잔디 깎는 일이라든가 정원 가꾸는 일을 하면 용돈을 더 줘야 한다.

 

손주는 용돈 벌어서 좋고 할머니는 일을 시켜 먹어서 좋은 거다.

옛날 어른들은 학생이 돈맛을 알면 공부 안 한다고 공부만 하게 했다.

하지만 돈 버는 것도 쓰는 것도 일종의 공부다.

공부만 하라는 의도는 공부로 직업을 삼고 공부로 인생을 끝마치라는 선비 사상이다.

지금은 직업이 다양해서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본인이 행복하면 되는 거다.

 

행복 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춰져 있어야 하겠으나 그중에 돈이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무시 못 할 조건이다.

돈을 잘 버는 것도 좋지만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

어려서 돈의 가치를 터득하면 사회생활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려서 집이 가난했고 부모를 돕기 위해 어려서부터

돈벌이에 나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그랬다.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서 옛날처럼 밥을 굶을 정도로 가난한 집은 없어서 어린아이가

돈 벌러 나설 이유는 없다.

그래도 일찌감치 어려서 돈의 가치를 알아두는 것이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다음은 어떤 일을 시킬 것인지 고민이 많다.

오늘의 고민은 손주에게 영원한 추억으로 남는다.

 

손주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직접 말로서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같이 일했던

그 시간 동안 사랑과 공감이 뒤섞이면서 기억 속에 녹아든다.

영적 손길은 영원한 메시지로 손주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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