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 집 뒷마당에도 가을이 왔다.
벌써 가을 가을하고 읊어댔지만, 정녕 가을을 실감하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캘리포니아의 기후가 4계절이 아닌 것이 가을을 느끼지 못한 첫 번째 이유이겠으나
어느 나뭇잎 하나 곱게 물들어 내게 소식을 알려주지 않은 것도 이유이겠다.
어제까지 녹색 젊음을 뽐내던 감나무가 지난밤 비를 맞더니 하룻밤 사이에 탈바꿈했다.
그것도 한 잎 두 잎이 아니라 한꺼번에 몽땅 물들다니.
샴페인 병을 흔들다가 터트린 것처럼 폭발하듯 황금빛을 분출했다.
감나무가 주인을 놀래주는 방법도 여러 가지구나.
나는 아침에 뒷마당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감나무가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올해는 예년 같지 않아서 감이 몇 알 달리지 않았다.
지난해에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얼마 달리지도 않은 감이 자라지도 못하고 비실비실
떨어져 나갔다. 가을까지 견디면서 익은 감이 평년에 비해서 1/10 수준이다.
감이 많이 달리는 해가 있고 덜 달리는 해가 있기는 하지만 올해는 그 도가 넘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포스터 시에 사는 친구네 집도 감이 몇 알 달리지 않았단다.
이발사네 집 감나무도 몇 개 달리지도 않은 감을 청설모가 따먹기에 아예 끝장을 냈단다.
우리도 몇 알 안 되는 감을 놓고 청설모와 전쟁이 벌어졌다.
우리 집 감은 아침이면 새들이 날아와 잘 익은 감만 골라가면서 먹느라고 신이 나서
조잘댄다.
한바탕 새가 설치고 가면 다음엔 청설모가 와서 실컷 먹다가 큼지막한 감으로 한 알 물고
간다.
아내는 새 쫓으랴, 청설모 쫓으랴 들락거리지만, 그들도 약아서 “나 잡아 봐라” 하는 식으로
느슨하게 거드름을 피운다.
내가 이 집에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은 뒷마당에 감나무를 심은 거다.
35년 전에 이 집으로 이사 오자마자 감나무 먼저 심었다.
버클리 묘목장을 운영하던 일본 노인 부부가 있었다. 나는 가끔 묘목장에 들러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본인들은 감을 좋아해서 일본인 집치고 감나무 없는 집이 없다.
당연히 묘목장에서 감나무 묘목을 팔고 있었다.
나무를 심고 매일 잊지 않고 물을 주는가 하면 비료를 사다 주기도 하고 생선 찌꺼기를
뿌리 가깝게 묻어주기도 했다.
감나무는 무성하게 잘 자라는데, 감은 달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도 답답해서 묘목장 노인을 찾아가 물어보았다.
노인이 가르쳐 주기를 일년내내 물은 주지 말란다.
내가 감나무를 돌보는 방법과는 정반대로 하라니?
의아했지만 전문가가 그러라고 했으니 나는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물과 비료를 주지 않고 내버려 뒀더니 이게 웬일인가?
감이 다닥다닥 달리는 게 아닌가.
자그마치 수백 개는 달렸다. 그 후로 매년 2~300개나 되는 감을 땄다.
이 집 저 집 아는 집은 다 논아주고도 남아돌았다.
캘리포니아 감은 무척 달다. 꿀맛이다. 농부의 말로는 일조량이 많아서 그렇단다.
한국에도 감이 시장에 많이 나온 것을 보지만 사서 먹어보면 싱겁기만 하다.
캘리포니아 감을 먹던 사람은 한국 감은 싱거워서 못 먹겠다.
그렇게 많이 달리던 감이 올해는 1/10로 줄었다.
아내가 새며 청설모를 쫓는 이유도 다 그래서다.
감잎이 황금빛으로 변하고 2주쯤 지나면 잎이 다 떨어진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야 하는 건데 올해는 감잎이 떨어지기도
전에 감은 다 따고 없다.
감나무잎이 하룻밤 사이에 홀딱 황금빛으로 탈바꿈한 것을 보고 놀라워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