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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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게 금강산 관광이 끊기기 바로 직전이었다.

아내와 나는 금강산 관광길에 나섰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 봤어도 같은 땅 북쪽을 방문할 때처럼 목숨을 담보하는 살벌한

여행은 없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건 순간인데 까딱 잘 못 했다가는 죽을 뻔했던 일이니 어찌 잊겠는가?.

 

<2008711일 오전 5. 네 발의 총성이 고요했던 금강산특구의 새벽을 깨웠다.

금강산 관광을 온 우리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숨진 관광객 박광자(53)씨는 군사 시설 보호 구역에 발을 들였다가 북한 초병에 피격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박씨가 이른 아침 혼자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에 들어간

경위 등이 석연치 않아 많은 의문을 남겼다.

 

아울러 새벽이라 신원 확인이 어렵고, 초병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더라도 북한군이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한 건 상상도 못 할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아침 신문기사

 

박광자 씨가 피살당한 장소는 해변의 모래사장이다. 모래사장에 경계 철조망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엉성한 철조망이 바다까지 있는 게 아니라 바다 가까운 곳에서 멈춰있다.

아직도 날이 밝지 않은 새벽 5시에 산책 삼아 바닷가를 걷는다는 게 얼마나 낭만적이냐.

누구라도 걷고 싶은 충동에 빠질만한 환경이다.

박광자 씨도 아무 생각 없이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가 피살된 사건이다.

 

 

우리 부부의 금강산 관광은 23일 일정이었는데 숙소는 아산이 지은 외금강호텔이었다.

호텔 로비에 걸려 있는 깃발은 한반도 깃발이었고 도어맨은 남한 호텔 도어맨 복장을 한

북한 여자였다.

막상 호텔 방에서 잠자리에 들려고 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여느 지역 같았으면 저녁 먹고 밖에 나가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구경하다가 늦게 호텔로

돌아와 잠자리에 드는 게 통상이었으나 지역이 북한인 관계로 저녁 식사 후에는 갈 곳이

없었다. 전기가 없어서 밖은 깜깜하고 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아내와 나는 온천욕이나 하자면서 온천 목욕탕엘 갔다.

터무니없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목욕탕은 넓었으나 목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텅 빈 목욕탕에서 그것도 남녀 다른 탕이었으니 나 혼자서 넓은 목욕탕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목욕보다는 이것저것 구경이나 하면서 목욕탕 밖은 무엇이 있는지 나가 보곤 했다.

목욕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

나보다 더 심심했다는 아내는 일찌감치 나와 앉아서 내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잘 시간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할 수 없이 잠자리에 들어가 불을 껐다.

새벽에 잠도 안 오겠다. 운동이나 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호텔 로비의 카운터 직원이나 돌맨은 앉아서 자고 있었다.

내가 드나들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넓은 파킹장을 돌면서 살펴보았으나 보이는 건 오로지 어둠이요

고요하기가 동굴속 같았다.

새벽달은 아직 중천에 걸쳐있고 북극성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멀리서 개짓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근처에 마을이 있음을 짐작케 했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는지 먼동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두운 파킹장 남쪽에 전깃불을 환하게 밝혀놓은 곳에 대형 김정숙 그림이 있다.

한 바퀴 돌고 두 바퀴째 돌다가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겠다 기왕이면 가까이 다가가서

그림을 자세히 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림은 도로포장용 벽돌로 잘 포장된 넓은 마당에 10계단 단상을 쌓아놓고 그 위에 그림을 세워놓고

전깃불을 환하게 밝혀두었다.

북한에서는 귀하디 귀한 전깃불을 아낌없이 밤새도록 켜놓은 것이 김가네 선전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 김정숙 그림은 3단 위에 모셔두었는데 인민들이 마당에서 묵념하고 단상에 꽃을

바치는 제단이 있고 제단 위에 김정일 엄마 그러니까 김정은 할머니를 모셨다.

김정숙 그림까지 다가갔으나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단상에 올라가야 할 것이다.

꼭두새벽에 보는 사람도 없는데 단상에 올라가 자세히 볼까 하다가 께름직한 생각이 들어서

그냥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그때 만일 내가 단상에 올라가 경애하는 김정숙 그림 앞에서 아침체조라도 했다면?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도 어딘가에서는 보고 있을 터였다.

경애하는 김정숙 동지에게 엄숙한 자세로 고개 숙여 경배드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동인데, 화환 놓는 단상에 올라가 유별난 제스쳐를 취했다면 이거야말로 용서할 수 없는

정치범수용소 깜이다.

여기서 나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운 좋게도 아무런 반동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나를 살렸다고 본다.

 

김정숙 그림 마당에서 내려왔더니 그림 뒤편 어두운 곳에서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

무슨 사람들인가 해서 가보았다.

거기에는 약수터가 있고 약수물 길러온 사람들이 몇 명 있다. 얼른 약수터를 찍었다.

북한사람들은 사진 찍혀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보고만 있었다.

 

박광자 여인도 새벽에 잠이 오지 않으니까 일찌감치 일어났을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면 운동밖에 할 일이 무엇이 있나?

당연히 해변으로 산책하러 나갔다가 운이 없게도 당하고 만 것이다.

찰나가 운명을 가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북한이라는 지역은 찰나의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또한 몰랐다는 것이 용서받을 수 없는 대역이라는 것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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