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WP_Widget에서 호출한 생성자 함수는 4.3.0 버전부터 폐지예정입니다. 대신
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욤비 이야기 - 조호진의 세상만사
욤비 이야기

아래 글은 이호택 피난처 대표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나는 욤비의 부인이 흘린 눈물을 뒤로 하고 욤비가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확실한’ 자료와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킨샤사에서 만난 욤비의 동료가 욤비를 심문한 정부 조서를 몰래 복사해 내게 넘겨줬다. 현지 신문사에 들러  욤비가 자신이 핍박받고 있다는 증거로 제출했던 신문 전체를 구입했다. 내가 제출한 추가 자료에 드디어 우리 정부는  2008년 욤비를 난민으로 인정했다. 욤비 부인과 세 자녀도 2009년 한국에 들어왔다. 욤비가 다니고 있던 인천의 교회와  자동차기업 GM에서 집을 마련해줬다. 욤비는 자신의 고국이 한국처럼 민주화되길 원한다. 지난달 30일 욤비는 3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서울 종로에 있는 콩고민주공화국 대사관과 이태원의 벨기에 대사관을 찾아가 시위를 벌였다. 작년 11월 28일 시행된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여겨졌던 에티엔 치세케디 야당 후보 대신 조셉 카빌라 현 대통령이 더 많은 표를 얻어 재선(再選)되었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가 조작됐으며, 그 과정에 과거 콩고민주공화국을 식민지로 삼았던 벨기에 의 압력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나는 이날 욤비와 같이 시위에 동참하면서 100여년 전 일제(日帝)의 폭정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을 도와달라며 수 십년을 이역만리 타국에서 정처 없이 떠돈 이승만·김구 선생이 떠올랐다. 욤비는 언젠가 콩고민주공화국에 돌아가 지도자로 국민을 섬길 것이다. 그러면 콩고민주공화국 국민은 한국을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생각할 것이다. 2011년 6월말 현재 파키스탄·미얀마·중국·나이지리아·우간다·방글라데시 등 분쟁 지역이나 독재국가에서 온 3301명이 한국에 난민 신청을 했고, 그중 250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작년 12월 29일 국회에서 황우여 의원의 발의로 ‘난민법’이 통과되면서 우리에게 찾아온 난민에게 조속히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난민 심사기간 중 취업·주거·의료지원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새로 제정된 난민법으로 대한민국이 독재와 가난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을 돕는 희망의 땅이 되길 소망한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