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16년 8월월

마음의 일만 근심은 바람이 실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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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일만 근심은 바람이 실어가.

장모님이 시를 쓰고 사위가 곡을 붙인 노래, 우리 가곡 ‘그네’의 끝 소절이 위의 글 제목이다. 노래에 대한 사연도 멋지지만 가사와 멜로디가 이처럼 궁합이 잘 맞는 노래도 드물 것 같다.

서정적인 노래 대부분이 정적(靜的)이라면 이 노래는 동적(動的)인 감흥을 일으킨다. 눈을 감고 이 노래를 듣노라면 내가 그네에 앉아서 swing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롯데 부회장의 자살기사를 보면서 ‘일만 근심을 실어 가는 바람’에 대한 생각을 해 봤다. 자살이 그 해법은 아닌 것 같다. 세상에서 걱정 근심이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생각으로는 zero일 것 같다. 근심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행복한 사람도 그걸 놓칠까 걱정을 하고, 권력자나 부자 역시 마찬가지일 게다.

아기가 엄마와 떨어지면 울어대는 걸 보면 아기에게도 걱정은 있는 셈이다. 풍요로운 노년을 보내는 노인일지라도 혹시 모르는 건강 걱정, 행여 자식들이 잘못될까 자식들 걱정..

그래서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한다. 거기에서 어떤 초월자(超越者)에게 기대어 보는 게 종교의 형태이다. 능력이 없는 부모일지라도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천애고아(天涯孤兒)보다는 낫다. 푸념이라도 할 대상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세상엔 수 많은 종교가 있다. 경전(經典)이 있는 종교도 있고, 토속신앙처럼 구전(口傳)에 의하여 의식을 집행하는 종교도 있다.

종교는 ‘논리(論理)나 이성(理性)’의 영역이 아니기에 각자의 ‘신념(信念)이나 감성(感性)’에 의해서 종교를 택하게 된다. 즉 각자에게 맞는 종교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택한 종교에 대하여 시비할 권한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그게 소위 말하는 종교의 자유이다.

종교가 권력을 잡으면 그 폐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유럽에서 로만 카톨릭이 지배했던 1,280년간을 교회사에서는 종교암흑시대라고 한다. 종교재판에 의하여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야 했고 종교를 빙자하여 침략도 서슴지 않았었다. 또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이민을 온 청교도들도 주일을 범하면 체형을 가했었다.

그러나 의지처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는 것이 인간이다.

세계 교회사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의 천주교가 선교사 없이 자생하였다. 내 자식의 자식들은 물론 그 아래 대대손손을 내려가도 종의 신분을 벗어 날 수 없었던 그들에게 천주(天主)의 아들이 된다니 그만한 복음도 없었다. 믿고 나 후로는 굶어도 견딜 만 했었고 고된 일이나 죽음까지도 피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에게 헛 믿었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

신앙생활이 현실을 초월하면 그건 수도승의 삶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과 타협을 하라는 말은 아니다. 삶 속에서의 신앙이 되어야지 신앙 속의 삶이 되면 그 가족들이 우선 피해자가 된다.

신심(信心)은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더 깊다. 십자가 사건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다락방에 숨었지만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 갔던 사람이 여자들이었다. 옛날 장독대에 정화수를 놓고 빌던 사람도 어머니들이었지 아버지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인이 너무 종교에 열중이면 그의 남편은 안티가 된다. 주일날에 온 종일을 교회에서 보내거나 교회행사로 몇 일씩 집을 비우게 되니 남편은 집에서 인터넷에 종교 비난 글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건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가정문제인 셈이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기복신앙(祈福信仰)이다. 기독교의 축복은 천상(天上) 축복이지 지상(地上) 축복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팔복산에서 하신 여덟 가지의 복에 대한 설교의 내용이 그렇다.

기복신앙은 일이 잘 풀리는 사람에겐 문제가 안 되겠지만 일이 안 풀리는 사람은 그 열성만큼 금방 지쳐서 신앙을 접게 된다. 목사님이 헌금에 대한 설교를 자주 하거나 스님이 시주 이야기를 자주 한다면 그 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를 찾는 게 현명하다. 절 역시 마찬가지이다.

헌금이나 시주는 앞으로의 어떤 보응(報應)에 대한 조건부가 아니라 현재까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야 옳다.

기독교나 불교 모두 궁극적으로는 내세(來世)에 대한 약속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라고 했다.

병이 든 자는 아프지 않은 다음 생을 원하겠고, 굶주린 자는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 다음 생을, 외로운 사람은 그렇지 않은 다음의 생을, 압제를 받는 자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다음 생을 원할 것이다. 그게 종교의 순 기능이다.

무신론(無神論)자라면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 하시라. 그것도 인생에서 종교보다 더 현실적으로 위안을 준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마음의 일만 근심을 실어 가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걸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올 가을엔 하얀 뭉게구름에 근심걱정을 다 실어서 날려 보낼 수 있는 여러분과 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8/26/2016.

그네 / 김말봉 시, 금수현 곡.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고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한 번 구르니 나무 끝에 아련하고
두 번을 거듭 차니 사바가 발 아래라
마음의 일만 근심은 바람이 실어가네

노년에 살기 좋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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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살기 좋은 .

글 제목을 써 놓고 보니 좀 애매하다. 주택은 사람마다 형편과 처지와 취향이 다른데 단편적으로 단정을 내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하는 것도 세상을 살아 가는 한가지 요령이다. 일례로 잘 팔리는 물건은 가격대 성능이 소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런 물건은 당연히 하자가 적다.

미국 노인들은 은퇴 후에 대부분 Ranch House를 택한다. 우선은 층계를 오르내리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단층을 선택하는 것이고, 또 행여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는 휠췌어가 용이하게 출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을 최대한으로 줄여서 이사하는 것도 공통적인 현상이다.

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아파트로 들어 간다. 몇 달 동안 집을 비워도 단독 주택보다는 안전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아예 집을 팔거나 세를 주고, 집세간은 창고에 맡기고 모터 홈(Motor home)으로 전국 일주를 하면서 차 안에서 사는 경우도 있다.

역마살이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재미있게 산다. 여행 중에 강이나 바다에서 생선을 잡아서 즉석 요리를 한다든지, 산에서는 덫으로 짐승을 잡아서 바비큐를 하는 장면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가 에너지 하우스를 연구 하면서 제일 많이 참고하는 것이 full time으로 모터 홈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이다. 겨울과 여름을 그들은 어떻게 보내는지, 물과 전기는 어떻게 충당을 하는지, 운행 경비는 어느 정도인지 등등 참고할만한 내용들이 많다.

일례로 어떤 이는 물을 사용하지 않고 설거지를 하는데 씻어야 할 접시에 식초를 스프레이 한 다음 페이퍼 타월로 닦아서 설거지를 끝낸다. 물 1갤론으로 샤워를 끝내는 요령이나 세탁하는 방법 등등 물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과제를 화두로 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한다.

여행 중의 에피소드나 생활요령들이 끊임없이 유투브(YOU TUBE)에 올라 오는 이유는 조회수가 올라가는 만큼 수입이 생기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그 수입이 일반 직장보다 훨씬 많다. 미국은 나라가 크다 보니 여름엔 북쪽에서, 겨울엔 남쪽에서 살면서 나름대로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내세(來世)가 분명할지라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까지는 내 의지로 잘 계획하고 즐겁게 보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령 아련한 꿈일지라도 그걸 마지막 날까지 놓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게 일용할 삶의 ‘만나’이기에 그렇다. 8/24/16

달 밝은 고요한 밤에는 무엇을 생각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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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밝은 고요한 밤에는 무엇을 생각 하시나요?

잠 자리에 들려고 침실에 들어가 불을 끄니 휘영청 밝은 달빛이 나를 밖으로 불러 낸다.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전기 불빛과는 함께하지 않는 그 달빛의 도도함을 멋지게 표현 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아쉽다.

그간 흐린 날씨 탓에 오랜만에 보는 달빛이다. 오늘이 보름인 것 같다. 황진이가 그리던 소세양에게 보냈다는 시‘달 밝은 고요한 밤에는 무엇을 생각 하시나요? (蕭寥月夜 思何事)’가 생각난다.

달빛은 사람의 마음을 멜랑꼬리하게 만드는 묘한 것이 있다. 심월상조(心月相照)라는 말은 그래서 생겨 난 것인지도 모른다.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남녀가 달을 보면서 서로의 마음을 비춘다는 것이니 그 보다 더 멋진 시어(詩語)도 없을 것 같다.

대 문호(大文豪) 쉐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도 늘 등장했던 게 사랑과 권력과 죽음이었고, 그의 4대 희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슬픔이나 즐거움에도 그 셋은 여전히 개입되었던 셈이다.

권력은 원래 뻔뻔해야 그걸 잡을 수 있으니 나처럼 뱃짱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고, 죽음 역시 재천명(在天命)이라 했으니 각자의 life span이 다하는 날 언젠가는 떠나게 되어 있다.

그 셋 중에서 남은 건 사랑이다. 신문에서 은퇴한 60대 부부가 60일간 차로 전국을 일주한 기사를 읽었다. 도전이 없는 삶은 죽은 삶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고 부부 둘 다 자기 취향에 맞는 새로운 직업을 찾았다고 한다.

그럴 듯한 외국이 아니라 그들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어 간 그곳을 여행하면서 자신을 다시 찾아 보았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었다.

노년에는 여생(餘生)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남은 인생, 사실 그게 지나간 인생보다 더 중요한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그걸 더 멋지게 설계하고 실천하기란 말처럼 단순한 건 아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효도계약이라는 것을 읽으며 개탄을 금할 수 없었다. 물론 평범한 일이 아니니 기사가 되었겠지만 거기엔 변호사들의 선동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를 했었다면 내 자식들 역시 효자가 되겠고, 아니면 그 반대가 되니 그게 내 DNA가 그런 것이다. 때문에 자식들의 효/불효에 대해서는 누구를 탓할 바가 아니다.

부모란 게 뭔가? 우선은 자식들보다 인생의 경륜이 더 많다는 사실적인 게 있다. 다행히 재력이 있다면 자식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밀어 주어서 빨리 일어 날 수만 있다면 밀어 줘야 한다. 거기에 무슨 계약서가 필요한가?

시은(施恩)이어든 물구보(勿求報)하고 여인(與人)이어든 물추회(勿追悔)하라
은혜를 베풀었거든 그 보답을 바라지 말고, 남에게 주었거든 후회하지 말라.
명심보감에 있는 말이다. 남에게도 그럴진대 하물며 자식에게야..

그러나 다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달 빛이 깨우쳐 주니 이래서 철이 드는 게 아닌지 그 섭리를 다시 한번 가슴에 간직한다. 8/17/16


세개의 보름달.

애국가와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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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와 눈물.

올림픽 양궁 금메달 수상자인 장혜진 선수가 시상대에서 애국가가 나오자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장 선수는 애국가를 들으며 연습 때 고생했던 생각이 났었다고 했다.

국가(國歌)에는 뭔가 표현을 할 수 없는 감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나라를 위하여 땀을 흘린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참가한 북한 축구대표팀 정대세 선수가 브라질과 북한의 경기 직전 필드에서 북한 국가가 나오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미국 TV에서 클로즈업하여 여러 번 나왔었다. 왜 울었는지에 대하여는 본인도 설명을 못했고 중계 해설자도 코멘트를 못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운동을 하던 김연아 선수, 이건희 회장 역시 평창으로 결정되자 눈물을 흘렸다.

해외 여행 중에 삼성이나 LG, 현대의 광고판을 보면 가슴 뿌듯하다고 한다.

국가(國家)란 그런 것이다. 거기에 부연하여 설명할 수 있는 마땅한 단어가 없다. 그러나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가 무슬림 전사자의 부모를 모욕한 것이 문제되어 지지율이 폭락했다. 미국은 물론 북한에도 있는 전쟁영웅이 유독 한국에만 없다. 혹독한 전쟁을 치른 나라에서 말이다.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인정을 안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백선엽장군을 민족의 반역자라고 한 국회의원도 있고, 흥남 철수의 주인공인 어느 장군의 동상을 공원에서 철거하겠다고 데모하던 자들도 있었다.

중국은 한국에서 설치하는 레이더 하나에도 방방 뛰는데 한국 대통령이라는 노무현은 미국에 와서 북한의 핵개발은 자위적인 조치라고 했다. 그 말을 뒤집으면 미국은 침략자라는 말이다. 자신이 군 통수권자인지도, 또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어떤 위치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신’을 운운하는 자들이 정치권에서 행세를 하고 있다.

아래는 한겨레 신문이 아니라 조선일보 변희원 기자의 영화‘인천상륙작전’에 대한 평이다.

이념과 임무에만 충실한 캐릭터로 그려지다 보니 인물은 평면적이고, ‘국군은 선, 북한군은 악’이란 흑백논리가 적용된다. 특히 북한군은 90년대 이전까지 국민학생들이 배운 대로 ‘뿔 달린 괴물’처럼 극단적으로 묘사된다. ‘JSA 공동경비구역’ ‘웰컴투 동막골’ ‘고지전’처럼 국군과 북한군의 관계를 선악(善惡)으로만 그려내지 않은 영화들이 이미 수년 전 나온 것을 감안하면, 이는 퇴보에 가깝다.

변 기자는 전쟁을 피크닉 정도로 아는 것 같다. 위에 언급한 영화들은 한국 좌파들의 작품이다. 아니면 군대를 가보지 않은 자들의 이상론일 뿐이다. 군인은 Born to kill enemy가 그 속성이기 때문에 그렇다.

미국에 수 많은 전쟁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서 미군은 항상 선이었고 독일군은 항상 악이었다. 거기에 변기자나 어느 영화 평론가처럼 흑백논리 운운하는 영화평은 없었다.

적국에 대하여 흑백논리(黑白論理) 혹은 이분법(二分法)이라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그대들의 조국은 어디이며 그 조국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나 있는지?’ 8/13/16.

호랑이 장가 드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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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장가 드는 .

내가 어릴 적엔 햇살이 내리면서 비가 오면 ‘여우 시집가고 호랑이 장가 드는 날’이라 했었다. 왜 여우가 호랑이한테 시집을 간다고 했는지의 사연은 잊었지만 어제 산책 중에 그 비를 만났었다.

양반들은 소나기를 만나도 달음질을 안 했다고 한다. 경박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가 아니라 뛰어 본들 상황이 별로 달라질 것 같지가 않기에 안경 벗어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걸었다.

‘비 맞은 중’ 이야기도 생각하면서 지름 길을 놔 두고 그냥 한 바퀴를 다 돌고 집에 들어 왔다. 더운 날 비를 맞으면 시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젖은 옷은 다리에 감기고 햇볕은 여전하니 습도가 올라 갈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일기예보가 안 맞는다고 차라리 옛날 속담이 더 정확하다는 기사도 있었다. 미국 일기예보는 틀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비나 눈이 올 확률 60%, 40% 식으로 예보를 하니 비가 오거나, 안 오거나 둘 다 맞는다.

요즘은 위성에서 바닷물의 수온까지 측정을 하지만 내가 공군에 있었던 70년대까지만 해도 각 지역의 기상상태를 단파로 송신을 하면 그걸 취합하여 기압등선을 그려서 기상도를 작성하였었다.

국제협약에 의하여 공표된 주파수를 찾아서 북한은 물론 중공, 소련 등등의 자료를 받아 볼 수 있었다. 음성통신이 아니라 모르스 코드에 의한 CW라서 기상통신소에는 늘 삑삑대는 소리뿐이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장비가 좋아서 거의 족집게 수준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으니 불평은 여전하다.

어떤 날은 폭우가 쏟아 지는 곳에서 불과 몇 마일을 지나서는 도로가 전혀 비에 젖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런 걸 틀렸다고 따지다 보면 세상엔 맞는 게 거의 없을 것이다.  ‘좋은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다’는 속담처럼 좋은 일엔 좋은 대로, 궂은 일은 좋게 치환하여 살아 가는 것도 삶의 지혜가 될 수 있다.

바람아 부지 마라 비올 바람 부지 마라
가뜩이 차변된 님 길 질다고 아니올세
저님이 내 집 온후 구년수(九年水)를 지소서.

기녀문학에 나오는 시조이다. 그렇지 않아도 뜸해진 님이 비 핑계를 대고 안 올지도 모르니 (참았다가) 그 님이 온 다음에 중국 고사에 나오는 9년 홍수처럼 비가 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비가 올 바람은 그 옛날에도 알았었으니 국지적인 것은 늘 자신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젠 장가 간 호랑이가 결혼기념으로 이 더위나 가져 갔으면 좋겠다. ㅎㅎ  8/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