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장가 드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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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장가 드는 .

내가 어릴 적엔 햇살이 내리면서 비가 오면 ‘여우 시집가고 호랑이 장가 드는 날’이라 했었다. 왜 여우가 호랑이한테 시집을 간다고 했는지의 사연은 잊었지만 어제 산책 중에 그 비를 만났었다.

양반들은 소나기를 만나도 달음질을 안 했다고 한다. 경박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가 아니라 뛰어 본들 상황이 별로 달라질 것 같지가 않기에 안경 벗어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걸었다.

‘비 맞은 중’ 이야기도 생각하면서 지름 길을 놔 두고 그냥 한 바퀴를 다 돌고 집에 들어 왔다. 더운 날 비를 맞으면 시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젖은 옷은 다리에 감기고 햇볕은 여전하니 습도가 올라 갈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일기예보가 안 맞는다고 차라리 옛날 속담이 더 정확하다는 기사도 있었다. 미국 일기예보는 틀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비나 눈이 올 확률 60%, 40% 식으로 예보를 하니 비가 오거나, 안 오거나 둘 다 맞는다.

요즘은 위성에서 바닷물의 수온까지 측정을 하지만 내가 공군에 있었던 70년대까지만 해도 각 지역의 기상상태를 단파로 송신을 하면 그걸 취합하여 기압등선을 그려서 기상도를 작성하였었다.

국제협약에 의하여 공표된 주파수를 찾아서 북한은 물론 중공, 소련 등등의 자료를 받아 볼 수 있었다. 음성통신이 아니라 모르스 코드에 의한 CW라서 기상통신소에는 늘 삑삑대는 소리뿐이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장비가 좋아서 거의 족집게 수준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으니 불평은 여전하다.

어떤 날은 폭우가 쏟아 지는 곳에서 불과 몇 마일을 지나서는 도로가 전혀 비에 젖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런 걸 틀렸다고 따지다 보면 세상엔 맞는 게 거의 없을 것이다.  ‘좋은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다’는 속담처럼 좋은 일엔 좋은 대로, 궂은 일은 좋게 치환하여 살아 가는 것도 삶의 지혜가 될 수 있다.

바람아 부지 마라 비올 바람 부지 마라
가뜩이 차변된 님 길 질다고 아니올세
저님이 내 집 온후 구년수(九年水)를 지소서.

기녀문학에 나오는 시조이다. 그렇지 않아도 뜸해진 님이 비 핑계를 대고 안 올지도 모르니 (참았다가) 그 님이 온 다음에 중국 고사에 나오는 9년 홍수처럼 비가 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비가 올 바람은 그 옛날에도 알았었으니 국지적인 것은 늘 자신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젠 장가 간 호랑이가 결혼기념으로 이 더위나 가져 갔으면 좋겠다. ㅎㅎ  8/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