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2) 소수서원에서 선비촌으로…

소수서원주차장에내려서

죽계교를건너

솔밭이펼쳐져있는곳으로잠시걷다보면

소수서원이나온다.

예전에소수서원을보지못하고그냥지나쳐

이번은작정하고

소수박물관을빼고는소수서원을먼저찾았다.

죽계교위에서우리막내동서는한참서있다.

"뭐볼게있어"하니까.

자기는돌다리를좋아한다나…

스마트폰에넣어

미국에교환교수로가있는동생에게보낸다하며서있다.

그래서한컷!!!.했더니

형니임~~~인물사진은말구우….ㅋ

취한대로이어지는죽계천의돌다리

솔향기에취해솔밭길을따라걷다보면커다란돌비석이세워져있다.

우린공기의맑음에기가막혀

있는병다달아나가겠다면연신감탄또감탄이었다…ㅋ

호젓한맛을느낄수있는것은이계절뿐이겠지.

우선사람이없어둘만이느낄수있었던정적!!!

아~~~그리워라또오~~~ㅋ

죽계별곡은

고려시대충숙왕때에지은안축(安軸)의경기체가.전체5장,

《근재집(謹齋集)》권2와《죽계지(竹溪志)》에실려있다.

죽계는지금의경상북도풍기에있는시내이름이며,

풍기의옛지명인순흥(順興)은안축의관향(貫鄕)인동시에고향이다.

전체5장으로,

제1장은죽계의지역적위치와경관을,

제2장은누·대·정자위에서유흥하는모습을,

제3장은향교에서공자(孔子)를따르는무리들이봄에는경서를외고여름에는현(絃)을뜯는모습을,

제4장은천리밖에서그리워하는모습을,

제5장은성대(聖代)를중흥하여태평을길이즐기는모습을각각노래함으로써,

고려신흥사대부의의욕에넘치는생활감정을잘나타내고있다.

[竹溪別曲](국어국문학자료사전,1998,한국사전연구사)

단아한담장위의소나무에우린홀딱반했다….ㅋ

피톤치드팍팍온몸을감싸고

우린입과코까지힘껏벌려단공기를흠뻑들이마시며

입에서나오는소리는그저와아,..와아~~~뿐이었다…

소수서원[紹修書院]

경상북도영주시순흥면내죽리에있는우리나라최초의서원으로

사적제55호.

소수서원의내력

1541년(중종36)에풍기군수로부임한주세붕(周世鵬)이

이듬해에이곳출신유학자인안향(安珦)을배향하기위해사묘(祠廟)를설립하였다가

1543년에유생교육을겸비한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설립한것이이서원의시초이다.

1544년에는안축(安軸)과안보(安輔)를추가배향하였다.

1546년(명종1)에경상도관찰사로부임한안현(安玹)은서원의경제적기반을확충하고

운영방책을보완하는데주력하였다.

그는사문입의(斯文立議)를마련하여서원의향사(享祀:제사)에서부터

학전(學田)과서적의운용및관리,노비와원속(院屬)의관리등

서원운영·유지에필요한제반방책을마련하였다.

1548년풍기군수로부임한이황(李滉)은서원을공인하고

나라에널리알리기위해백운동서원에대한사액(賜額)과국가의지원을요청하였다.

이에따라1550년에‘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사액되고

아울러국가의지원도받게되었다[네이버]

신비한물맛을보고가라고써있긴한데…

캡처

소수서원[紹修書院]

경상북도영주시순흥면내죽리에있는우리나라최초의서원으로

사적제55호.

서원의배치는강학(講學)의중심인명륜당은동향이고

그뒤에는직방재(直方齋)와일신재(日新齋),동북쪽에는학구재(學求齋),

동쪽에는지락재(至樂齋)가있다.

또한서쪽에는서고(書庫)인장서각(藏書閣)과

고려말에그려진안향의영정(影幀:국보111)과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坐圖:보물485)가안치된

문성공묘(文成公廟)인사당(祠堂)은남향이다.

기타전각들은

어떤중심축을설정하지않고자유롭게배치된특이한형태를취하고있어.

서원의건물은비교적자유롭게배치되어있는것이란다.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