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옛길 밑 문학 동네 / 김수영문학관에서

북한산둘레길20구간을걸어내려오다이정표에서본

김수영문학관이궁금해서찾아봤다.

주택가한가운데자리하고있는김수영문학관.

김수영문학관은동네꼬마들의공부방같기도하고

주민의사랑방역할을하는듯해보여"괜찮네~~~"하는생각과

둘레길걷고차한잔마시며

시대의문학감상을해보는것도좋을듯했다.

등산복차림으로문학관입구에들어서기조차뻘~쯤했지만

독서하기딱좋은조금은어두운문학관의분위기에

금방차분해질수있었다.

1921년생…탄생에서1968년사망까지

연도별로김수영의활동이나열되어있었다.

(펌)김수영은일제강점기인1921년에서울특별시종로구관철동에서태어났다.

여러대에걸쳐벼슬을한것으로확인되는김수영의집안은부유한편이었으나

일제지배에적응하지못하고몰락해가는중이어서

종로6가로용두동으로자주거처를옮겨야하는형편이었다.

김수영은1928년에어의동공립보통학교[현서울효제초등학교]에입학하여

6년간뛰어난성적을보였다.

그런데졸업을앞둔9월부터그만장질부사에폐렴과뇌막염까지호되게겹쳐앓으면서

일년여공부를놓는바람에원하는학교로진학하지못하였다.

이때의투병체험이이후김수영의용모의큰틀을결정한것은아닐까?

우리의시선을강렬히사로잡는김수영의장년이후의정면초상사진들은,

대부분기묘하리만치선명한고통의느낌으로우리에게육박해온다.

1935년어렵게선린상업학교전수부[야간]로진학한김수영

본과를거쳐1942년에야학업을마치게되었다.

공식적졸업으로따지면이것이김수영의최종학력이다.

6.25전쟁이후김수영이한가족의가장으로서생계를책임져야하였을때

선택한영어번역(飜譯)과양계(養鷄)라는것였던것이다.

그런데집안의기대를어깨에얹고대학진학을위해건너간일본에서

김수영의내면에당겨진것은예술혼이라는불꽃이었다.

왜그랬는지전혀알려져있지는않지만,

김수영이문득대학진학이라는실리를버리고

연극을배우는쪽으로삶의행로를틀어버렸던것이다.

학병징집을피해귀국한서울에서도,가족과합가하여나아간일제말의만주에서도

김수영의관심은오로지연극이었다.

사진으로보이는외모는병약하고날카로운모습으로

시대의고민을한껏품어어렵고힘든생활이묻어나게보이는김수영시인!!!

1950년대한국의전쟁의상처를되돌아볼여유도없이심각한후유증

휩싸인데비해196,70년대는점차적으로반성과비판의시선을갖추기시작한때

그중심에문학인으로김수영시인이있었다.

일제의해방으로부터극심한혼란과

친일과일제잔재의처벌과청산이크게문제가되고

좌우익의극단적인대립으로정국이혼란스러운가운데

전쟁을치른전후문학으로나아가는지점에서

눈에띄는성과를보여주는시인들은

대부분이모더니즘계열의시인들이었단다

이런모더니즘의흐름속에서성장한김수영은

4.19를계기로강한현실인식에기반을두어참여시를전개하였단다.

일상적현실의자잘한사건을지적인통찰로

사회적실천성을중시하며문학활동을한김수영시인의자취가

문학관벽면에가득채워져있다.

"아아,행동에의계시.

문갑을닫을때뚜껑이들어맞는딸각소리가그대가만드는시속에서울렸다면

그작품은급제한것이라는의미의말을나는어느해의시화집에서읽은일이있는데,

나의딸각소리는역시행동에의계시다.

들어맞지않던행동의열쇠가열릴때나의시는완료되고

나의시가끝나는순간은행동의계시를완료한순간이다.

이와같은나의전진은세계사의전진과보조를같이한다.

내가움직일때세계는같이움직인다

이얼마나큰영광이며희열이상의광희狂喜이냐"

산문[시와노트]에서

"낙숫물로바위를뚫을수있듯이,이런시인의헛소리가헛소리가아닐때가온다.

헛소리다!헛소리다!헛소리다!하고외우다보니헛소리가참말이될때의경이.

그것이나무아미타블의기적이고시의기적이다.

이런기적이한편의시를이루고,그러한시의축척이진정한민족의역사의기점이된다."

산문[시여,침을뱉어라]에서

"시작詩作은"머리’로하는것이아니고,’심장’으로하는것도아니고

‘몸’으로하는것이다.’온몸’으로밀고나가는것이다.

정확하게말하자면온몸으러동시에밀고나가는것이다.

그러면온몸으로동시에무엇을밀고나가는가.

그러나-나의모호성을용서해준다면-‘무엇을’의다답은’동시에’의

안에이미포함되어있다고생각된다.즉,

온몸으로동시에온몸을밀고나가는것이되고,

이말은곧온몸으로바로온몸을밀고나가는것이된다.

그런데시의사변에서볼때,이러한온몸에의한온몸의이행이

사랑이라는것을알게되고,그것이바로시의형식이라는것을알게된다.

시를논한다는것은무엇인가.그것은산문의의미이고

모험의의미이다,시는온몸으로,바로온몸을밀고나가는것이다

그것은그림자를의식하지않는다.

그림자에서조차도의지하지않는다.

시의형식은내용에의지하지않고그내용은형식에의지하지않는다.

시는그림자에조차도의지하지않는다.

시는문화를염두에두지않고민족을염두에두지않고,

인류를염두에두지않는다.

그러면서도그것은문화와민족과인류에공헌하고평화에공헌한다.

바로그처럼형식은내용이되고내용은형식이된다.

시는온몸으로,바로온몸을밀고나가는것이다.

산문<시여침을뱉어라>에서

문학과예술을위한일본유학에서

해방과함께귀국하여내놓은것은시"묘정의노래".

그로부터23년간김수영은한국의문학판을뒤흔든문제적시인이었고

김수영이생전에마지막으로내놓은작품이

바람소리로가득찬「풀」이었단다.

묘정廟庭의노래

[1]

남묘南廟문고리굳은쇠문고리

기어코바람이열고

열사흘달빛은

이미과부의청상靑裳이어라

날아가던주작성朱雀星

깃들인시전矢箭

붉은주초柱礎에꽂혀있는

반절이과하도다

아아어인일이냐

너주작의성화星火

서리앉은호궁胡弓에

피어사위도스럽구나

한아寒鴉가와서

그날을울더라

밤을반이나울더라

사람은영영잠귀를잃었더라

[2]

백화白花의의장

만화萬華의거동의

지금고요히잠드는얼을흔드며

관공關公의색대色帶로감도는

향로의여연餘烟이신비한데

어드메에담기려고

칠흑의벽판壁板위로

향연香烟을찍어

백련白蓮을무늬놓는

이밤화공의소맷자락무거이적셔

오늘도우는

아아짐승이냐사람이냐.

풀이눕는다

비를몰아오는동풍에나부껴

풀은눕고

드디어울었다

날이흐려서더울다가

다시누웠다

풀이눕는

바람보다도더빨리눕는다

바람보다도더빨리울고

바람보다먼저일어난다

날이흐리고풀이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눕는다

바람보다늦게누워도

바람보다먼저일어나고

바람보다늦게울어도

바람보다먼저웃는다

날이흐리고풀뿌리가눕는다

1968년6월15일운명의그날밤,

김수영은『한국일보』기자정달영,「소설알렉산드리아」와「마술사」를발표하여

이제막문단의각광을받고있던동갑내기작가이병주와함께,

청진동과을지로입구등을돌며늦게까지술자리를가졌다.

이병주가자신의볼보승용차[1969년이다!]로데려다주겠다는것을뿌리치고

김수영이병주에게‘딜레탕트’라욕설을퍼부었다.

dilettante(딜레탕트)???

예술이나학문따위를직업으로하는것이아니고

취미삼아하는사람이르는이면

계급적인한량이라는욕설을한듯…

그리고김수영은혼자일어서집으로갔고,

자정무렵집근처에서좌석버스에치이고말았다.

서울적십자병원으로급히후송되었지만,

이튿날인16일에영영눈을감은나이48세로
"날이흐리고풀뿌리가눕는다"라는

자신의시귀詩句에맞는마지막을장식했다고해야할지…

***

김수영의일대기가마련된한쪽벽면의영사실.

거의사람들의발걸음이없는곳이라서인지

사진은마음대로찍어도되니선전좀해달라는문학관지기의말씀에

돌아가는영사실에서마음놓고찰칵찰칵…ㅋ

***

진열된책상의서랍을빼고직접볼수있었던친필의원고

얼마만에보는원고에..교정부호가친밀하게다가온다.

문학관을찾는묘미가이런것인가했다.

시인의시도직접낭독해볼수있는공간도마련되어있고…

이곳을방문하여시를읽고난뒤의느낌도

짤막한감상도적어볼수있는공간도마련되어있었다.

문학힐링마을학교,김수영시인마을학교,

마을학교라는글에서동네문학활동에는많은기여를하겠다는생각으로

좋은곳을보고온느낌은???

흐뭇흐뭇~~~~ㅋ

(ChopinNocturneOp.48No.2/ArthurRubinst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