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보단 글을 그리면서…

그윽한묵향맡으며적당한농도로의만족한끈기가됨을눈으로확인한후

깨끗이빤붓에물기를쏙빼고나서

먹물적당히매긴것을붓의무게로확인한다음

하얀화선지위에먹물매기며한자한자정성스럽게

써내려가는글씨를늘써왔지만

내가쓰고있는여러가지글씨체인

정자,반흘림,진흘림,판본체.송강가사체와격몽요결체등의

글씨의시작이뭔가하는깊은생각은한적이없는내게

이를통틀어궁체로설명하는책을만났다

도서출판사다운샘에서펴낸"궁체이야기"이다.

한글이모양세로탄생한것이세종께서28년1446년에

백성을어여삐여기시어한글을창제하시고반포하신훈민정음.

한글을말하기를세계의언어학자나역사학자들이

한글이세계최고의문자라고도하고

인류가이뤄낸최고의업적이라고하며

과학적,실용적,등으로극찬을아끼지않지만

글자의글보다는그림으로도봤다면

이들의호응은또어떠했을까하는생각을이책을읽으면서느꼈다.

글을써본사람만이느낄수있는이기분을….ㅋ



훈민정음에나타난글의의미보다글씨체의형태에서

글씨의흐름이어떻게변하여갔는지알아보기위해

우선훈민정음언해본에쓰인글부터찾아봤다,

1.훈민정음

세종28년1446년

흔히『언해본()훈민정음』이라고도한다.

번역한사람이나번역된연대를확실히알수는없으나,

세종말년부터세조초기사이에이루어진것으로보고있는

훈민정음에나타난글은

중국에서온한문만을오랜동안훈련된글씨체가기본이되어있는글씨체로

지금에완성된글씨와비교하기엔

자음,모음의구성이무척어설픈나의느낌….ㅋ

궁체라는말은궁에서쓰는로알고있는데

조선어사전이나국어대사전….그밖의새우리말큰사전에

공통으로풀이되는말은

궁녀가쓰는글씨체로되어있다.

궁과궁녀…는엄격히구분돼야한단다.

궁에는임금을비롯해왕비…왕의자녀들그리고내관들이쓰는글씨체까지

이들이쓰는글씨를궁체라할수없단다.

한문은진서로대우하였지만

세종이후에도한글은언문,언서,반절이라하여천대를받았다.

같은한글을써도왕족들이쓰는글과

궁녀가쓰는글씨와는엄연히구별하고있단다.

그러므로궁체란

정확히궁녀가쓰는글씨체인것이다.


그럼궁체는어떻게발달되어갔을까

발달된과정엔그글속에포함되어있는

사상과정서가어떤것인지도중요할것같아시대의흐림도찾아봤다.


고려때까지호국신앙불교가사상을지배하였지만

사원과승려의타락으로

불교에회의를느낀주자학의신봉자인신흥사대부들에의해

새왕조조선에선유교적인윤리관으로새국가의통치질서로삼았다.

소혜왕후때쓴"내훈"에의하면

여성특히사대부집안의아녀자에게

조선사회가요구하는유교적윤리관에서의덕은

맑고한가하며곧고고요하면서절을지키어정제精製하며

몸을행함에부끄러움에두고움직임이고요하여법도가있어야함이었다.

훈민정음에서내훈의글까지는대략20여년이경과한후의글씨이다.

궁에있는궁녀에게는사대부아녀자에게요구한덕에덧붙여

윗분에대한충성심과자기자신을버리는희생정신,

그리고자신을위한생활의자제를요구했다.

그런시대에쓰던글인궁체는가냘프고여리면서도단정하고아름답고

바른글씨체를새롭게만들어낸것이곧궁체인것이었다.

소혜왕후의내훈에담은글씨는당시의궁녀의글씨였단다.

훈민정음언해본에서소혜왕후때의내훈이20여년경과???의글


궁녀들이궁체를어떻게습득하여갔을까?


궁녀가5.6세에입궐하여하루5.600자의붓글씨를쓰지않으면밥을주지않는

엄격한훈련을통해20여년을연마하게한후에

서사상궁을발탁되어윗전들의봉서등을서사했단다.


오늘날에까지알려진소혜왕후의내훈역시

20여년의붓글씨를쓴궁녀에의해쓰인것이라유추해볼수있다.

소혜왕후의내훈안에는글씨에대한가르침은

"부녀자들의글씨란힘이있고자유분방한남자들의글씨와는달라서

부드럽고단정하여야하고맑고깨끗하고바르게써야하며

우아하고정성스레써야한다."라고말하고있다

이것이궁체의분위기겠지…​


2-60.

소혜왕후의내훈…

예종(9대성종)1468~1469

궁체의발달은세종의훈민정음반포이후

세종때부왕의명을받아불서를번역하고향악의악보를정리하는등

한글에관계되는많은사업을했던수양대군이

세조등극후14년동안여러가지서적을편찬했다.


이런남편의영향을받은7대세조왕비정희왕후가불교에심취하면서

한글에대한조예가깊었던관계로

어린아들8대예종을대신해수렴청정을하면서친히한글공문서로정사를다스렸다.

실지친히쓴것은아니고분부를받은궁녀에의해한글로써서

의정부로보내면돌아오는공문은남자관리들이한글로써서보냈단다.


궁안에서쓰던한글글씨는정희왕후수렴청정시기에(예종1468))에

틀이잡혔던것이소혜왕후를거치면서궁녀들의글씨쓰기가많아진다.

그리하여궁체는엄격한규범을내세우면서

한결더다듬어지고단정하며우아하게되어간다.

때는(1490년대쯤)

3-23.

두시언해…성종

1470~1494

내훈에서두시언해까지의글이변형도눈여겨볼만하다.

이후궁체의쓰임은

소혜왕후(昭惠王后,1437-1504)라는시호보다

인수대비(仁粹大妃)로유명한한씨를거치고

제11대중종15년(1520)부터권력을행사하기시작한문정왕후

명종20년(1565)까지장장40여년을대비의권한으로

섭정으로정치에간여하며많은공문서를국문으로일괄하게주고받는다.


작품을남기지않은문정왕후이지만섭정기간동안

궁녀들로하여금공문서를쓰게하므로

궁녀들로하여금궁체를익히고발전할수있는큰힘을주었단다.


그후

계축일기를썼던광해군때의궁녀들이큰작품을쓸수있는

힘을가지고이어지면서궁체는더욱더발전한다.


이시기의작품으로는농가월령가,서궁일기등이있다.





14대선조10년격몽요결

1577년



이이(李珥)가학문을시작하는이들을가르치기위해편찬한책​

선조어찰…14

조선왕조제15대선조의글씨를두고

궁체로변하려는면모가보인다고하지만반대의견도있다.

왕족들은천것들의것으로궁체를생각했기에

궁체와는거리가있는글씨였다고한다.

그럴까???격조있는글씨로봐야하는지???.ㅋ


17,18,19세기를지나오며많은변환이일고

이과정중정자,반흘림,흘림들의궁중서체가생기면서

궁체는1910년대에이르러현대화되어간다.

4-226.

농가월령가..광해군?선조?

1608~1623

언제어디서창작되었다는것은밝혀지지않았지만가사작품이다

150년후의작품에서의변화

글씨가유연해지던판본체류의글자는더욱부드러워진필사류의글자들로변한다.

5-91.

서궁일기(15대.광해군)

1608~1623



(인목대비와정명공주가유폐되어자유롭지못한생활을기록한글

이때의글은많은분량의글을빠르게써내려가는진흘림으로들어간

글씨체의모양을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