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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중국의 언론환경(2) - China Inside
중국의 언론환경(2)

중국의 언론환경(2) /이 글은 2003년 4월7일 쓴 글입니다.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제가 중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추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1997년 겨울 제가 北京에 부임하여 머문 곳은 지엔구오먼와이(建國門外)라고 하는 지역의 외교단지였습니다. 이곳은 중국에 주재하는 외교관 가족과 외국 언론기관의 가족들이 살고, 사무실을 두고있는 곳입니다. 외교단지는 이곳 뿐만 아니라, 산리툰(三里屯) 타웬(塔園)등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곳에 살게된 것은 우리 신문사가 선택해서가 아니라, 중국 정부가 그곳 외에는 다른 지역(중국 일반인 거주지역)에서 살지 못하도록 강제했기 때문입니다. 거주지를 제한한 것이지요.
이 외교단지에 한국대사관을 비롯하여 일본 독일 캐나다 북한 등 세계 각국대사관이 모여있고, BBC CNN NHK 뉴욕타임스 AP AFP 로이터 마이니치 파이낸셜타임스 타임 뉴스위크 등 전세계 언론이 사무실을 두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처럼 특정 구역에 외국 공관과 언론기관을 모아둠으로써, 겉으로는 외교관과 언론인의 안전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관리를 쉽게 할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번호의 국번호는 지역이 달라도 6532국으로 통일했습니다.

◆제가 살던 지엔구오먼와이 단지 입구에는 항상 택시 몇대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택시들을 가만히 보면 우연히 지나가다 그곳에 정차한 것이 아니라, 똑같은 택시가 계속 반복하여 그곳에서 대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요즘 한국의 일부 전철역이나 대학가 주변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다람쥐 택시’와도 같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인심이 후한’ 외국인 손님을 많이 태워 수입을 올리려는 택시운전사의 영업전략인 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의 지인들, 외국 특파원들을 통해 그들 중 일부는 중국 사회안전부(한국의 국가정보원과 비슷하지만, 대외정보활동을 전담) 요원이란 얘기를 듣게되었습니다. 이들은 손님을 많이 태워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외국 기자가 어떤 행선지로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안 뒤로부터는 저는 정차해있는 택시 대신 지나가는 택시를 일부러 골라타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글의 서두에서 외교단지의 전화번호가 모두 동일한 국번호(6532)를 사용한다는 얘기를 드렸지요. 몇개의 외교단지가 각기 다른 지역에 흩어져있는데도 국번호가 같은 이유를 저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통화관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도청하기’ 쉽도록 그렇게 해놓았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혹시라도 차이나클럽 회원 중 중국인이 있어, “도청을 했다는 증거라도 있느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다음 사례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어느날 북경에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은 모 특파원 부인이 다른 특파원 부인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두 부인은 어떤 시장을 가기 위해 통화중이었는데, 두 사람 다 북경의 지리에 어둡다보니, 택시를 타고 어디서 내려야하는지에 대해 한참동안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갑자기 제3자가 통화에 끼어들었습니다.
“그 시장에 가려면 어디에서 택시를 내리면 되잖아요.”
거친 조선족 동포 여성의 말소리였습니다. 깜짝 놀란 특파원 부인들은 도대체 이 여성이 누군가 하고 궁금해했지만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여성은 순식간에 전화선에서 사라졌습니다. 혹시 전화선이 합선되어 다른 사람이 통화에 끼어든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도 했지만, 여러상황을 종합해 내린 결론은, 특파원 부인들의 통화를 도청하던 안전부 소속 조선족 요원이, 약속장소를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두 한국 여성의 대화를 엿듣다 답답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끼어들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북경주재 특파원들 사이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이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통화 도중에 전화접속음과 중국인들의 말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으니까요. 또 취재 도중 전화가 끊긴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일부러 엿들으라고 엉터리 정보를 전화상으로 크게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재작년이었던가요? 여시동조선일보 현 북경특파원 가족들이 한밤중에 중국 공안(公安/경찰)의 기습적인 가택수색을 당한 일들을 모두 알고 계시죠. 중국 당국은 가택수색의 이유에 대해 ‘중국인 거주지에 미신고 거주한 것’을 이유로 들었지만, 당시 한중간에 현안이었던 탈북자들의 외교공관 진입문제 때문이었다는 것은 다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 당국이 외국 특파원들의 유선전화와 휴대폰 도청에 얼마나 ‘열심이었는지’는 북경주재 특파원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북경에 주재하는 동안 몇명의 외국 특파원들이 강제출국 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 사람은 한델스블라트라는 독일 경제지의 특파원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일본 요미우리의 특파원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한델스블라트 특파원은 중국의 지하 민주화운동 세력과 접촉한 것이 그 이유였고, 요미우리 특파원은 경제부처의 관리로부터 ‘발표하지 않은 경제정보’를 미리 입수해 보도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한델스블라트 특파원의 경우 중국 외교부는 그에게 ‘추방’이라는 직접적인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중국에 주재하는 외국 특파원들은 6개월에 한번씩 거류증을 갱신하야 하는데, 중국 공안은 그것을 갱신해주지 않은 것입니다. 더이상 중국에 체류할 수 없게 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중국땅을 나가게 한 것입니다. 요미우리 특파원은 ‘중국 관리에게 돈을 주고 정보를 샀다’는 이유를 들어, 72시간내에 중국땅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한 일간지 특파원은 중국 당국의 허가없이 티벳을 여행하고 돌아와 기사를 썼다고 ‘경고’를 받았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이런 일들을 듣고 경험하면서, ‘취재의 제한’이 얼마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보도의 자유’를 아무리 보장한다고 해도, ‘취재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온전한 언론의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언론의 자유란 ‘취재의 자유’와 ‘보도의 자유’를 합친 말이란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첨언하자면, 북한을 취재하러 간 한국과 서방 기자들이 북한 요원들이 안내하는 지역과 사람만 접촉함으로써, 극도의 취재제한을 받게되고, 그리하여 천편일률적인 보도만 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북한으로서는 외국 언론의 ‘보도의 자유’를 막을 수 없으므로, ‘취재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려는 것이겠지요.

평양에서 특파원을 지냈던 한 중국기자는 “우리가 어떤 지방을 취재하려고 해도 북한은 요원을 따라붙여 철저히 감시하고 취재를 제한했다”며 “평양에 있는 동안 한번도 자유롭게 취재한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른바 혈맹이라고 하는 북한과 중국 사이에도 이럴진대, 서방기자들이 평양에서 어떤 취재제한을 당할지는 뻔해보입니다.

<첨부>

현 정부의 언론정책과 관련하여, 첨언하겠습니다. 정부가 감추고 싶어하는 비리나 부정, 정책실패 등의 문제일수록, 공무원들은 입을 다물게 마련이며, 그 만큼 사실 확인이 어렵습니다. 어떤 ‘부정이나 비리’를 확인하는 작업은 마치 모자이크를 짜맞추는 일과 같아서, 많은 취재원들과 접촉하여 작은 ‘사실의 조각들’을 모으고, 그것으로 큰 그림의 윤곽을 그리면서, 모자라는 ‘팩트(fact)’를 추가해, 최종적으로 핵심 당사자에게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럴 경우 가장 필요한 것은 ‘익명의 취재원’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처의 잘못이나 실수를 “여기 있습니다”하고 한꺼번에 모두 털어놓을 공무원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때 기자는 다른 부서나 연관되는 단체, 연구소, 업계, 학자 등을 두루 접촉하며, 사실의 조각들을 모아나가는 것입니다. 만약 이창동 장관이 발표한 新취재지침에 따라 기자가 공보관에 취재신청을 하고, 취재당한 공무원이 사후에 상부에 보고하도록 한다면, 기자가 누구를 만났는지가 모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몇번 쌓이면 어떤 신문의 어떤 기자의 취재원이 누구인지는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의심에서 내부의 비리나 부정을 고발할 공무원이 누가 있겠으며, 정부정책의 문제점을 과감히 제기할 정부산하 연구원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 공무원(혹은 연구원)은 아마도 ‘공무중에 습득한 정보’를 유출했다고 해서 처벌받을 지도 모릅니다.
‘취재의 자유’는 ‘취재원 접촉의 자유’입니다. 기자가 어떤 취재원을 접촉했는지를 정보당국이나 해당 부처의 장관이 모두 알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취재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며,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될 것입니다. (정부는 이후에도 청와대를 출입하는 국민일보 정치부이 여기자 휴내전화 통화내역을 불법으로 조사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을 하야하게 했던 ‘워터게이터 사건’은 백악관 내부의 비리를 고발한 ‘디프 쓰로트(Deep Throat)’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국 민주화운동에 큰 획을 그었던 박종철군 고문치사-은폐조작 사건은 ‘타살흔적이 있다’고 말한 부검의와 축소조작 사실을 털어놓은 경찰관의 용기있는 고해성사가 도화선이 되었으며, 그것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취재경쟁을 벌인 신문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그 때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그런 일이 없다"고 얼마나 발뺌을 했었는지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방송들은 정부의 나팔수 역할을 하기에 바빴고, 신문이 보도하면 마지못해 따라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방송들이 ‘그때 일은 미안하게 됐다’고 한마디 사과하고는 요즘 또다시 정부입장에 서서 신문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는 속성이 있으므로 여론의 감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만약 정부와 그 산하기관의 모든 조직원을 ‘취재신청’을 통해 만나야 한다면, 대한민국의 부정과 비리, 정책의 실패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감시받고 견제받을지 의문입니다. (참고로, 이같은 취재신청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부부처를 담당하는 기자들은 휴대폰을 최소한 2개씩 가지고 다닙니다. 하나는 본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사람의 명의로 된 휴대전화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정부기관내의 정의감 있는 취재원과 접촉함으로써, 정부의 ‘취재신청’ 지침을 피하고 있는 것이지요.)

중국 주재 당시, 취재원과의 접촉을 막고 감시하려는 중국 당국의 시도를 목격한 저로서는, 한국의 언론 상황이 과거로 후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지기자의 중국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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