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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부에 이공계가 많은 이유(上)

중국 지도부에 이공계(理工系) 출신이 많은 이유(上)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국제부 지해범입니다. 오늘은 중국 지도층에 우리와는 달리 이공계출신이 많은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량이 길어, 두번에 걸쳐 보내드리겠습니다.

1. 역사적 배경

지난 7월초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앞으로 우리도 중국처럼 국가경영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지위에 이공계 출신들을 많이 등용할 생각”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청와대 비서진이 중국의 지도자 양성체계에 대해 공부를 한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국가 지도층에 이공계 출신이 많은 것이 좋은지 적은 것이 좋은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일단 개별 국가의 사정에 따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노 대통령의 지적 이후 미국 등 외국의 사례를 연구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만약 중국의 현상을 참고로 하고싶다면, 다른 나라의 사례들도 참고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중국 지도층에 이공계 출신이 많은 것은 그만한 역사적·사회환경적 배경이 있기 때문인데, 만약 그것을 도외시하고 표면적인 현상만 본다면, 자칫 그릇된 인식과 잘못된 인사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중국은 국가 지도자의 성장·배출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다른데, 노무현 정부가 이 점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2. 중국의 엘리트 배출 시스템(1)/공산당 가입

중국의 지도자 양성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산당’입니다. 2002년말 현재 약6700만명의 당원을 가진 중국 공산당은 정부 기관은 물론 입법 사법부, 국유기업과 금융권, 각종 단체와 협회, 연구기관 등 거의 모든 조직의 책임자에 ‘공산당 당원’을 앉힙니다.

‘앉힌다’는 표현은 어쩌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전국의 무수한 조직에 ‘공산당 지부’가 결성돼 있고, 그 조직내에서 당조서기와 부서기 등 간부를 선출한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즉 중국을 움직이는 거의 모든 조직은 공산당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일부 사영기업이나 외자기업에는 공산당 조직이 없는 곳도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연안도시에서 외자기업에서조차 공산당 지부가 결성되고 있어, 삼성(三星)전자 텐진(天津)공장이라 LG전자 선양(瀋陽) 공장에도 공산당 조직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중국의 거의 모든 조직이 공산당의 관할하에 있게 됐을까요? 1949년 국민당을 대만으로 ?아내고 중국 대륙을 장악한 마오쩌뚱(毛澤東)의 공산당은 국가정부 조직은 물론, 인민해방군과 경찰, 그리고 국민당 정부 하에서나, 혹은 서구열강에 의해 건설된 모든 생산시설을 국유화하면서, 각 단위에 공산당 기층조직을 건설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최고 지도부에까지 이르는 거대한 피라미드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먼저 기초 행정단위의 경우, 농촌지역의 촌(村) 단위나 도시의 리(里) 단위부터 공산당 조직이 결성됐습니다. 전국의 어떤 농촌 마을에도 일정한 당원을 가진 촌당 위원회가 있고, 거기에는 상부의 승인을 얻어 선출된 당서기-부서기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층 조직 바로 위에 향(鄕)이나 진(鎭), 구(區) 당위원회 등 상급 조직이 결성됩니다. 또 그 위에는 시(市)-성(省)-중앙(中央)의 상급 조직이 결성되어 있습니다.

이 점은 모든 생산단위와 인민해방군, 공안(公安/경찰), 학교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의 경우 공산당 인재를 배출하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따라서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으면, 정부 기관이든 기업체든, 군대든, 교육기관이든 ‘출세’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공산당에 입당하여 큰 과오가 없으면 안정된 생활과 승진이 보장됩니다.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너도나도 공산당을 가입하려고 하였고, 가입 절차가 매우 까다로왔습니다.(한때 공산당 가입열이 식었다가, 요즘 중국도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다시 공산당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어느 대학의 한 학생이 공산당 당원이 되고 싶으면 먼저 학생회 조직에 가입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 학생회 간부들의 동의를 얻어 학생회에 가입한 뒤, 그는 특정한 일을 맡아 모범적이고 열성적으로 활동해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이 학생은 3~4학년이 되어 공산당 당원 모집기간에 입당원서를 냅니다. 중국 공산당은 한국의 정당처럼 아무나 입당원서를 낸다고 쉽게 받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수직적 평가와 수평적 평가가 실시됩니다.

수직적 평가는 그가 소속된 조직(학과와 학생회 등)의 상급자들이 그에 대해 하는 평가입니다. 수평적 평가는 그 학생의 친구들, 학과 동료들, 학생회 동료들, 기숙사의 같은 방 친구들이 그에 대해 하는 평가입니다. 이런 평가에서 중요한 문제점이 드러나면 그는 공산당에 입당할 수가 없습니다. 공식 조직에서 아무리 잘해도, 사생활에 문제가 있다면 역시 공산당원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다면평가를 통과했다고 해서 곧바로 당원이 되는 것이 아니고, 1~2년간의 예비당원 생활을 거쳐야 합니다. 일종의 관찰기관입니다. 이 기간에 결정적인 하자가 생기면, 입당은 물거품이 됩니다. 이 관찰기관을 무사히 넘기면, 비로소 당원증이 나옵니다. 당원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머나먼 ‘시험과정’의 출발선에 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 중국의 엘리트 배출 시스템(2)/엘리트의 성장과정-평가와 검증

학교 재학 당시 공산당원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직장에 들어간 뒤에 당원이 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평당원이 되면 가장 먼저 보내지는 곳은, 행정조직의 경우 벽지의 말단 부서, 기업의 경우 생산현장입니다. 자신의 전공과목에 따라 현장에 배치되면, 거기서부터 철저하게 능력과 업적을 평가받게 됩니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1년에 약 200만명의 새로운 공산당원들이 중국 전역의 말단 조직으로 배치됩니다. 그들은 약 2~3년 동안 현장에서 일하면서 상급자나 동료들로부터 평가를 받게되며, 거기서 일정 숫자가 걸러져서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개인에 대한 평가는 비밀 파일인 개인 당안( 案)에 일일이 기록됩니다. 어떤 사람이 문제를 저지르면 상급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이 당안입니다. 거기에는 출생기록과 가족·친척관계, 학력, 경력, 과거의 행적, 전임직장에서의 평가, 상벌 등이 모두 기록돼 있습니다. 이 당안은 공산당 당원 뿐만 아니라, 어떤 단위(單位)에 소속된 중국인에게도 모두 존재합니다. 상급자가 자신에 대해 기록한 당안 내용은 본인은 볼 수 없습니다.

평가 과정에서 전문적인 지식이나 업무처리능력 대인관계 등이 부족한 사람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다시말해 현장 근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전문 지식을 비롯한 다양한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데, 그런 면에서 이공계 출신들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 기술부문에서 전문지식이 부족한 인문·사회계열 출신들은 주로 행정이나 관리계통에서 일하기 때문에 최고 책임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현장(現場)과 지방(地方)공작’ 경력을 중시하는 중국에서는 이공계 출신들이 각 조직의 책임자로 승진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중국 최고지도자인 후진타오(胡錦濤)는 칭화(淸華)대 수리공정계를 졸업하고, 26세때 깐수(甘肅)성 건설위원회로 배치되어 그곳에서 약 10년간 ‘지방공작(地方工作)’을 하면서 두각을 나타내, 중앙으로 발탁됐습니다. 총리인 원자바오(溫家寶)는 베이징(北京)지질학원에서 지질구조계를 졸업하고, 역시 깐수성 지질국에서 일하다, 당시 지질광산부장인 순따광(孫大光)이 시찰을 왔을 때, 비전문가 출신인 국장을 대신하여 풍부한 지식과 논리정연한 브리핑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역시 중앙으로 발탁되는 계기를 얻었습니다.

올 3월 국가주석직과 당총서기직에서 물러난 장쩌민(江澤民)의 경우, 상하이(上海) 교통대학 전기과를 졸업하고, 1950년 상하이의 비누제조창에서 일을 했습니다. 이어 1955년 소련 유학을 다녀온 뒤 창춘(長春) 제1자동차 제조창에서 공정사(기사)로 일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해서 장쩌민은 1983년 전자공업부장을 역임했습니다. 장쩌민의 라이벌이었던 리펑(李鵬) 전 총리의 경우, 모스크바 ‘파워 인스티튜트(Power Institute)’ 전력학과를 졸업하고, 돌아와서 중국 최대의 수력발전소인 지린(吉林) 펑만(豊滿)발전소에서 근무했으며, 1981년 장쩌민 보다 먼저 장관직(전력공업부장)에 올랐습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현장경험을 풍부하게 쌓은 사람이 끝없는 평가와 검증을 거치면서, 승진하여, 장관과 최고지도자 직위에까지 오릅니다. 한국에서처럼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고 해서, 혹은 대학교수로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국가조직의 책임자로 앉는 법은 없습니다. 한국에서 기술고시 선발인원이 행정고시 인원보다 훨씬 적은 것은, 전문지식을 갖춘 인재들이 현장으로 가는 통로를 좁게 막아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현장에서 일정기간 ‘시험’을 거친 말단 공산당원들은 그 평가성적에 따라 다음 직장이 결정됩니다. 맨처음 200만명이 스타트하여, 이런 식으로 갈수록 유능한 인재를 걸러내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최일선 현장근무 교육 상급기관 배치 현장 책임자로 임명 다시 교육 상급기관 책임자로 임명 등의 순서를 거칩니다. 그리고 교육은 주로 성(省) 당교(黨校)나 중앙당교에서 이루어집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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