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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부에 이공계가 많은 이유(하)

조선일보 국제부 지해범기자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중국 지도부에 이공계 출신이 많은 이유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4. 전문가로 커가는 중국의 엘리트들

철저한 평가와 검증 과정을 거치다보니, 능력도 없는 인물이 갑자기 중용되는 일은 없다. 물론 ‘태자당(太子黨)이라고 불리는 당정 간부들의 자녀들이 인사상의 ‘특혜’를 받는 경우가 있다. 각 부문의 요직을 거치게하여 지도자로 성장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현장 경험을 반드시 쌓아야 하기 때문에, 무능한 사람은 그 과정에서 도태된다.

그래서 중국에서 만나는 어떤 조직의 장(長)도,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가 맡고있는 업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조직 장악력, 대인관계, 연설 능력, 토론능력, 외국어 등 어떤 면에서도 빠지지않는 것을 보면 놀랄 때가 많다. 한국의 어떤 부처 장관이 임명된 지 얼마 안되어 중국을 방문하였다가, 중국측 장관이 한국의 통계수치까지 줄줄 외면서 얘기하는 것을 듣고 탄복한 적이 있다. 또 한국의 공무원들이 전공에 크게 관계없이 여러 보직을 돌게되는 반면, 중국은 전공과 관련된 보직을 계속 맡게함으로써 지식과 경험을 최대한 축적하게 한다.

예를 들어, 중국 외교부의 경우를 한번 보자. 북경대학 외국어학부나, 외교학원을 졸업한 학생들이 공개경쟁시험을 통해 외교부에 입부한다. 한국의 경우 외무고시에 합격하면 곧바로 사무관이 되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먼저 통역원이나 수행원이 되어, 가장 기초적인 일부터 배우게 된다. 북경대 동양어문학과(한국어 전공)를 졸업한 학생은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이나 서울 주재 대사관에 배치되어 현장의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3~4년의 주재기간이 끝나면, 다시 외교부 본부로 돌아가 아비처(亞非處/아시아아프리카과)나 신문국(新聞局)에 배치되어, 정보분석 능력이나 보다 큰 외교의 틀을 익힌다. 그런 다음에는 한단계 승진하여 다시 대사관으로 발령받는다. 이처럼 현장과 본부를 순환하는 과정을 평생 하다보니, 한국 정치를 한국인보다 더 자세히 알고있고 인맥도 훨씬 넓다.

내가 아는 중국 외교부의 한 젊은 처장(處長/과장급)은 외교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윈난(雲南)성의 한 현(縣)의 부현장으로 부임해 약 2년간 현장경험을 쌓는 것을 보았다. 또 한 대학교수는 산뚱(山東)성의 시골로 내려가 6개월간 현장실습을 하기도 했다. 간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밑바닥의 사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중국의 실용주의적 인재양성법이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몇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외교관들 중 일부는 중국을 위험한 ‘오지’로 생각하고(실제 위험수당이 지급됐다), 중국어를 배우지도 않고 2~3년을 보신주의로 일관하며 다른 좋은 임지(선진국)로 가기위한 디딤돌 정도로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인식하에서 중국 전문가가 나오기는 힘들다.

중국에서 지도자 배출이 철저한 검증을 통해 이루어지는 전통은, 비단 공산당 정권에 들어와서 세워진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어쩌면 오랜 옛날 황하(黃河)와 장강(長江)의 대홍수를 다스리는 지도자의 역할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요순의 뒤를 이은 우(禹)는 치수(治水)에 성공함으로써, 순의 아들 대신 왕위를 선양받아 하(夏)를 건설할 수 있었다. 원자바오 현 총리가 부총리 시절인 1999년 장강에 대홍수가 났다. 당시 원자바오는 비를 줄줄 맞으며, 장강 제방보강공사의 현장에서 군관민을 동원, 홍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그것이 총리로 발탁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5. 중국 공산당의 경쟁력과 지도자의 경쟁력
중국의 정치체제, 즉 공산당 일당독재는, 서구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낙후한 정치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 형식적인 다당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모두 공산당의 위성조직에 지나지 않는다. 당정군(黨政軍)이란 용어가 보여주듯이, 정부(國務院)와 군대(人民解放軍)도 모두 당에 종속돼 있다. 입법부(全人大)와 사법부(법원과 검찰)도 공산당이 통제하고 있으니, 3권분립도 안 되어있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는, 과거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나 싱가포르의 이광요 전 총리 때와 같은 ‘개발독재형 정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유한한 자원을 어떤 분야에 집중할 것이냐는 ‘독재정권’만이 결정할 수 있다. 현재 한국처럼 ‘민의(民意)’를 수렴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베이징은 요즘 온통 ‘공사중’인데, 사람들이 살던 주택을 하루아침에 불도저로 밀어버릴 수 있는 것도 이런 ‘독재정권’과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나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정치도 현 단계에서는 일정한 경쟁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겪었듯이, 개발의 뒷편에서는 인권과 언론의 자유, 국민의 정부에 대한 견제, 시의적절한 입법행위, 공정한 사법부의 심판이 상당 부분 희생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89년의 천안문(天安門)사태는 바로 이러한 모순들에 대한 대학생과 민중의 저항이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경제·사회발전이 가속화됨에 따라, 공산당 일당독재도 언젠가는 수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중국의 정치는 선진국에 비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중국 지도자들의 경쟁력도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중국의 엘리트층이 어떻게 선발되고 길러지는지는 앞에서 대략 살펴보았다. 철저한 현장경험과 지도경험, 교육을 통해 평가와 검증을 거쳐 공산당 최상부로 진입하기 때문에, 엉터리 지도자가 나올 가능성이 적다는 점을 지적했다. 역사상 가장 넓은 국토면적을 통치하는 공산당 정부는 현재 역사상 가장 많은 인구(13억)를 배불리 먹이고 있다. 또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이 1997~1998년 경제위기를 경험한 것과 달리 중국은 7~8%의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전세계의 투자자금들이 중국으로 끝없이 밀려들고 있으며, 한국의 공장들도 중국으로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단지 시장이 넓다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거대한 인구를 가진 인도나 넓은 국토를 가진 브라질을 보면 그것을 알수 있다. 바로 중국 지도부의 적절한 경제정책과 일선 지방정부 관리들의 개방적인 마인드, 적극적인 투자유치에 의해 눈부신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중국에 투자차 다녀온 수많은 한국 기업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중국의 공무원들이 이미 한국 공무원들을 앞섰다”는 것이다. 중앙은 물론 성(省)과 시(市)의 지도자들은 자기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한 열정으로 넘치고, 일선 공무원들은 투자유치를 위해 행정규제를 없애고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려는 서비스 마인드로 무장돼 있다는 것이 한결같은 지적이다.

물론 중국에도 부패하고 무능한 관리들이 많다. 사회주의 정치체제의 한계도 노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보의 비밀주의, 폐쇄적 의사결정 과정, 관료주의, 공산당의 언론통제 등은 개혁할 여지가 많다. 올초 사스가 그토록 창궐한 것은 이러한 통제가 한 몫을 했다. 또 거의 모든 인재가 공산당을 통해서 성장되는 만큼 다양한 인재의 양성이 어려운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공산당 이념에 관심이 없는 젊은 과학자나 IT인재들이 국가 지도자로 커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해외유학을 떠난 인재의 약 절반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해 지역의 지방 지도자들과 공무원들은 이미 사고방식에서 ‘국제화’되고 있으며, 그들의 ‘열린 행정’으로 인해 중국은 이미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당리당략에만 매달려 바깥세상일과 국가대계를 소홀히 하고, 공무원 조직이 지금과 같은 비효율적인 시스템과 규제마인드를 유지하는 한, 한국은 미래에 대한 목표의식 없이 중국의 추월을 눈 버젓이 뜨고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이공계 출신을 많이 등용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실사구시형 인물을 중용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며, 이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한국과 중국의 엘리트 배출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른 만큼, 이공계 출신 장관의 숫자만 늘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공계 출신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제 역할을 찾고 올바른 평가를 받아 계속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공법일 것이다.

현 중국 공산당 정치국 중앙상무위원 9명 전원이 이공계란 점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인지도 모른다. 그 빙산의 일각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실사구시형 인재배출 시스템’이 그들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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