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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모택동-김정일의 공통점

정치와 예술의 상관관계
—히틀러와 모택동과 김정일의 공통점

정치의 세계는 냉혹하다. 또 배반을 밥먹듯 한다.
어제까지의 동지가 내일은 적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적이라고 해서 영원히 적이란 법도 없다. 정치판이란 ‘권력’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의 정치판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정치판이 냉혹하다 보니, ‘냉혹하지 않은 정치인’이 종종 인기를 얻는다. 다시말해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에 관심을 보이는 정치인에 대해 사람들은 마음이 끌린다.
예술을 사랑하는 정치인이라면, 왠지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도 이해해줄 것 같고, ‘인간적인 정치’를 펼칠 것만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번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한 후보는 기타를 치는 모습으로 광고에 등장해, 많은 젊은이들과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군대를 사열하는 히틀러>

과연 그럴까? 예술을 사랑하는 정치인은 멋진 정치를 펼칠까?
현대사에서 예술을 무지하게 사랑했던 정치인들 가운데 히틀러와 모택동과 김정일을 빼놓을 수 없다.
히틀러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그의 꿈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정치가로 변신한 이후에도 주변에 정치인보다는 예술가를 비롯해 非정치인을 많이 두었으며, 19세기 예술을 무척 애호하였다고 한다. 히틀러는 돈을 주고 미술품을 사거나 혹은 강제로 압수하는 방법으로 탐욕적으로 예술품을 긁어모았다. 그는 채식주의자였고, 담배와 술도 하지 않았다.

<히틀러가 그린 개 그림> <히틀러의 풍경화>

모택동은 시인이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모택동은 서재에 마르크스 레닌의 서적 대신 중국의 역사서를 가득채웠다. 침실 겸 서재로 사용한 그의 방에서 그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이 역사서를 읽었고, 자신을 전통 왕조시대의 황제에 견주곤 했다. 모택동의 시작(詩作) 실력도 대단한 수준이며, 시의 기풍은 우주를 넘나들고 천하를 주유하는 호방한 기풍으로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의 모택동>

모택동이 국공내전 시기 동지인 팽덕회에게 보냈다는 다음의 시(2000년 9월 월간조선에서 인용)를 보면 그의 이같은 기풍이 드러난다.

팽덕회 동지에게
높은 산, 머나먼 길, 깊은 골짜기/山高路遠坑深
대군은 종횡무진으로 내달리누나/大軍縱橫馳奔
그 누가 말 타고 칼 비껴 들었는고?/誰敢橫刀立馬?
우리의 둘도 없는 팽덕회 장군이어라!/唯我彭大將軍!

장개석 국민당 군에 쫒겨 내륙으로 도망치던 그 시절, 모택동은 자신을 비롯한 홍군의 장군들을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호걸처럼 묘사하고 있다.

모택동은 평소의 말이나 글에서도 간결하고 힘있는 문장으로 유명했다. 가령 중국내에서 인구문제에 대해 비판이 제기됐을 때 그는 ‘인구다(人口多) 역량대(力量大)’란 한마디로 논란을 잠재웠다. 인구가 많으면 국가의 힘도 커진다는 얘기다. 또 유교문화로 인해 오랫동안 천대받던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그는 ‘여인시반변천(女人是半邊天/여인이 하늘의 절반)’이란 짧은 말로 일거에 여성의 지위를 남성과 동등하게 만들었다.

김정일이 영화광이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개인 집무실에는 한국의 영화를 비롯해 세계의 영화 비디오들이 가득찼고, 개인 영화관도 설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02년에는 중국에서 생산된 LG 초대형 벽걸이 PDP TV 한대도 들여가 김정일의 집무실에 설치했다. 요즘 많이 나오는 DVD를 보기 위한 목적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한 당국자들은 LG측에 한국회사 제품임을 알 수 있는 LG상표를 떼고 수출할 것을 요구했으나, LG측은 “그러면 못판다”고 해서 그냥 들여보냈다.

<고양이를 안고잇는 김정일>

이상과 같이 3명의 독재자들은 모두 예술을 지독하게 사랑했다. 예술을 좋아하는 정치인은 ‘멋진 정치’를 펼 것으로 생각되는데, 왜 이들은 인류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만큼 독재자가 되었을까.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최근 중국에서 온 한 학자는 필자와 저녁식사 도중 재미있는 해석을 내놓았는데, 상당히 일리가 있어보여 여기에 소개한다. 따라서 이 ‘이론(?)은 필자의 것이 아니고, 그 학자의 지적재산권임을 미리 밝혀둔다. 그 학자의 실명은 여기서 밝힐 수 없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예술은 감성의 행위이고, 그 감성은 ‘이상향’을 지향한다.
그 이상향을 실현하는데 장애물이 나타나면 반드시 그것을 제거하거나 극복해야 한다. 장애물과 타협하는 것은 예술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
‘적당한 타협’을 거부하는 예술의 속성은 예술을 발전시키는 동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술가 자신과 주변에 큰 화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그 학자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예술을 사랑하는 정치인 역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기반 위에서 정책을 펴려하기 보다, 현실을 자신이 바라는 ‘이상향’으로 바꾸기를 꿈꾸고, 그것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가차없이 제거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그들에게 타협이나 협상은 자신의 변질로 간주되기 때문에, ‘타협을 거부하는 아집’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게르만족의 강대국을 꿈꾸었던 히틀러는, 독일인의 경제력을 급격히 잠식하는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였다.
‘공산주의’를 통한 ‘대동(大同)사회’를 꿈꾸었던 모택동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방해가 되었던 둘도 없는 고향친구 유소기(劉少奇)와 피를 나눈 전우 팽덕회를 모두 홍위병들의 손에 맞아죽게 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김정일도 두 독재자와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고 중국학자는 지적했다. 주체사상을 만든 사람도 사실상 김정일이고, 그 주체사상의 지향점 역시 실현 불가능한 ‘이상사회의 건설’이란 것이다. 김정일은 자신이 설정한 ‘이상향’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 속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북한은 중국인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비정상적이라고 한다.

물론 인류 역사에서 예술을 사랑하면서도 멋진 정치를 펼친 정치인들은, 찾아보면 많이 있을 것이다. 이상의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예술에 탐닉하면서 독재의 길을 걸었던 정치인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독재자가 예술에 애착을 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갑자기 예술이란 것이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술 그 자체는 인간의 삶을 풍부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표현행위이다. 하지만 예술을 좋아하는 (일부)정치인들이 ‘현실’이나 ‘이견(異見)’과 타협할줄 모르고 독선적 성향을 보인다면, 도대체 예술이란 인간의 심성을 순화하는 것인지, 거꾸로 더욱 모질게 만드는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러므로 예술과 정치의 상관관계를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결론삼아 하고싶은 얘기는, ‘예술가적 기질’을 보이는 정치인이라고 해서 ‘인간적인 정치’ ‘멋진 정치’를 펼 것으로 착각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독일인들이 속아봤고, 중국인들이 속아봤고, 북녁 동포들도 속았으니, 이제 그런 ‘착각’들일랑 하지말고, 철저하게 그 정치인의 업적과 행동으로 판단을 내리자는것이다./hbjee@chosun.com

15 Comments

  1. 이강은

    2004년 11월 15일 at 8:36 오후

    중국 역사상 최고의 예술인 황제는 송 왕조의 휘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직업 화가가 무색할 정도의 대단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 스스로도 정치에 뛰어나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정치적인 오만이 없었고 독재도 없었고 역사에 큰 상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2. 이강은

    2004년 11월 15일 at 8:48 오후

    팽덕회에 보낸 시는 처음 읽어 보았습니다. 팽덕회를 그렇게 비참하게 숙청을 했으면서…. 그리고 팽덕회 뒤에 임표를 내세웠다가 임표는 쿠테타 시도하고 망명가는 비행기는 추락하고…. 마오쩌둥의 시는 문인의 시가 아니고 정치인의 포장술인 것 같습니다.   

  3. 지민영

    2004년 11월 16일 at 1:34 오전

    예술이 인간을 모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진 인간들이 기대고 싶어 하는게 예술 아닐까요? 거기서 라도 위안을 얻으려는 것으로 봄은 어떨지..대단한 모진 인간들은 웬만한 예술의 순화 기능에도 끄덕 없음을 보여준 것이 히틀러고 모택동이고 김정일 아닐까요?   

  4. Cato

    2004년 11월 16일 at 7:40 오전

    지해범/ 예술과 정치와의 상관관계를 곱씹어 보게 하는 좋은 글이네요. 모택동의 숙청 중 제일 소름끼쳤던 것은 당뇨환자, 대장정 동지 하룡에게 포도당 주사를 놓아 죽인 일이었죠. 다만, 프로 화가, 작가 못지 않던 처칠 같은 이도 있으니 결국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이된다는 옛말이 맞는 게 아닐지요..

    이강은/ 휘종은 결국 정치를 등한시해 금에게 화북을 내 주고 아들 흠종과 함께 적군에 끌려가 비참하게 죽지 않았나요?   

  5. 지해범

    2004년 11월 16일 at 11:04 오전

    지민영님과 카토님의 지적처럼, 결국은 사람이 문제이군요.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몰랐더라면 평범하게 살았을 사람이 ‘그것’을 알고나서 달라졌다면, ‘그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6. 다모(茶母) 사랑

    2004년 11월 16일 at 11:59 오전

    히틀러와 김정일의 또다른 공통점이 있네요. 스피드광이라는 점. 히틀러는 비틀자동차 제작 지시, 아우토반 고속도로 건설. 김정일은 외제차 다수소유 및 도로에서 고속질주를 하다 교통사고 당함. 앞서 지적하신대로 자기를 방해하는것은 가차없이 제거하는 속성이 나타납니다.    

  7. 이호선

    2004년 11월 16일 at 12:34 오후

    예술 좋아한 또라이 정치인 또있죠. 네로라고… 불타는 것을 보고 싶어서 로마를 태우고 그것을 기독교들에게 뒤집어씌운 작자지요. 정치는 하나부터 백까지 모두 이성적인 판단의 머리에서 나와야 하는데, 예술 좋아하는 인간들은 감정적인 것이 많이 작용하니 제대로 된 정치가 나올수가 없는 겁니다.   

  8. 지민영

    2004년 11월 16일 at 2:23 오후

    문제는 그럼 ‘그것’과 무관한 그들의 처신을 알아내는 거군요.
    어떤 사안에서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1%라고 들었습니다. 그 1%는 그 일이 아니라도 문제를 만든다고..’그것’을 몰랐다고 평범하게 살았을까, 정말 ‘그것’을 알고 난 후에 달라졌을까에 의문이 드네요.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본드를 접착에만 쓰면 유용하지만 아파트 옥상에서 들이마시면 죄가 되는 것처럼 사람의 문제가 아니올지..본드 문제는 아니죠.   

  9. 지해범

    2004년 11월 16일 at 4:21 오후

    한 서양 영화가 생각나네요. 어느 시골마을에 도시 청년이 지나가다 시골처녀와 사랑에 빠지죠. 장마(?) 때문인지 남자는 떠나지 못하고, 두 남녀는 건초더미 속에서 사랑을 나누고 급기야 여자는 임신을 하지요. 남자는 그 마을을 떠나며 돌아오겠다고 하지만, 친구 여동생을 소개받고는 그쪽으로 마음이 쏠리지요. 여자는 아이를 낳은 뒤 자살하고, 훗날 남자는 그 마을에 와서 자신의 아들을 발견하죠. 그 남자가 아니었더라면    

  10. 지해범

    2004년 11월 16일 at 4:24 오후

    여자는 평범하게 시골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지 않았을까요? 사람의 인생에는 종종 일생을 결정하는 계기가 있는데, 종교라든가 예술 같은 게 그런 거 같애요. 물론 종교나 예술을 만나기전의 인생이 그 만남의 성격과 농도를 결정하는데 기여하겠지만, ‘만나지 않았더라면…’하는 가정을 자꾸만 하게되네요. 그 제목 모르는 영화에서 처럼.   

  11. 지민영

    2004년 11월 16일 at 5:08 오후

    본드도 남자도 둘 다 적절한 비유는 아닌듯 싶네요^^
    모로는 사람들이 보면 오누이가 고집이 여간 아니다 그러겠습니다..ㅋㅋ
    30대 후반 종씨 올림.   

  12. 스프링

    2004년 11월 16일 at 6:12 오후

    재미있는 현상을 비교하셨군요.
    예술가적 이상향을 가진 독재자도 있지만,
    피튀기는 권력다툼에서 자기정서에 목말라하는 독재자도 있겠지요.
    김정일과 모택동은 그렇지 않을까…

    하여간 최고통치자가 예술적 이상주의로 흐르는건 위험하겠지요.
    예술가의 고집도 보통이 아니니까요..
    고맙게 잘 읽엇습니다.   

  13. 처복

    2004년 11월 16일 at 6:33 오후

    여백의 미 까지 염두에 두는 동양의 미술과 찰나의 감성을 붙들어 놓으려는 서양의 미술에 비유하면 어떨까요? (서양미술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ㅎㅎ)
    예술에 대한 집착과 독재자의 대비가 재미있기는 한데, 역시 사람됨이 문제라는 말씀에 1표! 드립니다. ^—^   

  14. 유닉스

    2004년 11월 16일 at 6:59 오후

    중국 학자의 날카로운 지적 잘 읽었습니다.
    결국 사람됨이 문제라면 예술가적 기질이 있는 정치인을 택하고 싶군요.
    두 분다 존경하고 싶지는 않지만 휘호로 ‘大道無門’ 밖에 쓸 줄 몰랐다는 YS 보다는 받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휘호를 달리 써 주었다는 DJ 쪽이 더 매력적이지 않은가요? 물론 정치적인 업적과는 결부시키지 말고 말이죠. 추천합니다. 拜   

  15. 남주리

    2004년 11월 19일 at 11:54 오전

    독재자는 모두 예술가다. 예술가는 모두 독재자다. 이 두 명제중 어떤게 맞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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