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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중국에선 시위도 외교다

중국에선 시위도 외교다

지해범· 국제부 차장대우 hbjee@chosun.com
입력 : 2005.04.15 18:20 41′


외교를 ‘잘 하는’ 나라 중의 하나가 중국이다. ‘잘 한다’는 말은 도덕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올바른 외교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사안에 부딪혔을 때 원칙과 실리, 강공과 협상을 적절히 구사해 국익을 극대화하는 데 능하다는 얘기다.

지난 2000년 4월 초,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 상공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용기가 충돌했을 때 이런 면모가 잘 드러났다. 당시 미국은 부시 행정부가 막 출범해 기세가 등등하던 때였다.

중국 국내에서는 반미(反美) 열기가 비등했다. 한 해 전 유고 주재 중국 대사관이 미군 전폭기에 폭격당해 외교관들이 목숨을 잃은 뒤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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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부는 세 가지 어려운 요구에 직면했다. 우선 국내의 강렬한 반미(反美) 기운을 어떻게든 해소시켜야 했다. 다음으로 미국에 책임을 묻고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서의 체면을 세워야 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대미관계를 원만히 풀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이 때 중국 외교부 주방자오(朱邦造) 대변인은 기자회견장에서 4가지 원칙을 내놓았다.

“사고 지점은 중국 영공이다. 사고는 미군 정찰기가 급선회하여 일어났다. 중국은 사건을 조사할 권리가 있다. 미국은 사죄해야 한다.”

그로부터 약 석달간 양국의 힘겨루기가 계속되는 동안 중국은 이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길어지는 협상에 국내외 여론이 지쳐갈 때쯤, 미국 부시 대통령의 사과 발언이 나왔다.

미군 정찰기는 분해되어 실려갔다. 결과만 놓고 보면 중국의 강공책이 통한 것 같았지만, 실은 중국측의 양보가 돌파구를 열었다.

“사과(apology) 아니면 안 된다”고 버티던 중국 지도부가 ‘사과’ 대신 ‘깊은 유감(very sorry)’을 담은 미국 대사의 서한을 접수함으로써 사태를 재빨리 종결지었다. 그 뒤 중국은 미국의 협조로 2008년 올림픽을 따낼 수 있었다.

지난 9일과 10일 베이징(北京) 광저우(廣州) 등 대도시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일(反日)시위를 보노라면, 중국에선 ‘시위도 외교’라는 생각이 든다. 국익을 위해 시위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다양한 외교적 카드를 확보하는 노련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수십명의 옥외 집회도 신고해야 하는 나라다. 1989년 천안문(天安門) 민주화시위와 1999년 파룬궁(法輪功) 시위로 혼이 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의 자연스런 대일 분노가 시위의 촉발제였지만, 수천~수만명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일본 대사관에 돌멩이를 던졌다는 것은 당국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위 자체가 ‘국가 정책의 일부분’이란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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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반일시위를 통해 몇 가지를 얻었다. 일단 민중의 힘을 빌려 일본을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언론들은 중국 내 반일 열풍에 매우 놀라는 분위기다. 또 하나는 국제사회에 일본의 부도덕성을 널리 알렸다.

서방언론들은 이번 반일시위가 일본의 역사왜곡으로 야기됐다는 점을 지적, ‘시위 외교’의 효과는 충분히 거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순수한 시민운동과는 거리가 있다. 이것이 중국 외교의 특징이고, 한국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중·일 간의 갈등은 당초 역사문제에서 다시 영토·자원분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중국이 이번 주말 ‘시위 외교’의 카드를 어떻게 구사할지가 중·일 관계의 흐름을 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4 Comments

  1. 迎春

    2005년 4월 18일 at 1:05 오전

    저도 기자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유고대사관 사건이후의 시위를 직접 목격도해서 그때와 오버랩이 되더군요..
       

  2. 지해범

    2005년 4월 18일 at 11:49 오전

    북경오리씨, 반가워요. 99년도 유고 중국대사관 사건때 시위가 대단했었지요. 하지만 그 시위대 주변에 일렬로 길게 서있던 대학교 버스들…’백문불여일견’이지요.    

  3. 정유진

    2005년 4월 22일 at 9:51 오전

    매번 글 잘 읽고 갑니다. 중국정부가 이번 시위를 관망하는 태도에 대해 외교적 의미가 담겨 있겠지 했는데 이 글을 읽고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중국을 바라보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4. 지피지기

    2005년 4월 22일 at 3:58 오후

    유진씨, 반가워요. 논문은 잘 끝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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