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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왜 물에 잠겼을까?

평양은 왜 물에 잠겼을까?/조선일보 2007.8.29

지해범 중국전문기자

북한민둥산2.jpg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선전촌 뒤 민둥산.2006년7월 여름인데도 산에 나무가 거의 없다. 이런 곳에 집중폭우가 쏟아지면 흙탕물이 계곡에 넘칠 것이다./뉴시스>

2001년 말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남서부 국경도시 퀘타로 가는 중형 항공기에 올랐다. 퀘타는 전란을 피해온 사람들이 거대한 난민촌을 형성해 있었고, 그곳은 아프간 전황(戰況)을 듣는 기지 역할을 했다. 비행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끝없이 이어지는 발루치스탄 산맥이었다.

놀라운 것은 산의 색깔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늘 보는 ‘푸른색’이 아니라 ‘붉은색’이었다. 마치 달나라에 온 것 같았다. 바람이 불면 붉은 흙먼지가 일었다. 산과 산 사이의 계곡에는 홍수 때 생긴 듯한 물 흐른 자국이 깊게 파여 있었다. 현지인은 “원래 이곳에도 나무가 많았지만 수십 년 동안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는 바람에 민둥산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가 오면 순식간에 흘러내려 홍수가 났다가 비가 그치면 가뭄이 발생한다”고 했다.

비슷한 모습을 본 것은 압록강 하류 북한~중국 국경을 갔을 때다. 압록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변도로를 따라 차를 달리다 보면, 강 이쪽과 저쪽에 펼쳐지는 너무 다른 풍경에 놀라게 된다. 중국 산은 비록 잡목이긴 해도 푸른 나무들이 산의 살갗을 덮었다. 하지만 강 건너편 북한의 산들은 이발기계로 머리카락을 민 듯 나무 몇 그루 없이 맨땅을 드러냈다. 산 여기저기에는 여름 장마 때 무너진 듯한 계단식 밭들이 보수도 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지난 22일 아리랑1호 위성이 촬영한 북한 원산 주변 지역 항공사진이 공개됐다. 사진은 동해로 흘러드는 용흥강이 하류 지역에서 범람하여 흙탕물이 바다로 유입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서는 지난 8월 7~14일 8일 동안 796㎜(하루 평균 99.5㎜)의 폭우가 쏟아져 610명이 사망·실종되고, 5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특히 평양이 물에 잠겨 수백만 채의 주택이 침수피해를 입었다. 비교되는 점은, 이달 초 경기도 포천지역에서도 북한과 비슷한 폭우가 쏟아졌지만 피해는 매우 적었다는 점이다. 포천에서는 일주일간 629㎜(하루 평균 89.9㎜)의 비가 내려 일부 도로와 농지가 유실되었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 차이는 어디서 발생한 것일까.

북한지역 산림복구 운동을 펼치는 ‘겨레의 숲’ 관계자는 “북한 전체 산림 750만㏊ 가운데 약 20%인 160만~200만㏊가 완전히 황폐화된 민둥산이며, 나머지 80%도 금강산과 묘향산 등 명승지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울창하지 않은 산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산림 황폐화의 원인은 70년대 ‘다락밭 개간’과 90년대 소위 ‘고난의 행군’ 시절 땔감 마련을 위한 남벌”이라고 지적했다. 1960~70년대 한국이 나무를 심을 때, 북한이 전 인민을 동원해 벌인 ‘경지면적 넓히기’ 운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여준다.

원인이 이렇다면, 처방도 그에 맞아야 한다. 한국 정부가 해마다 반복되는 북한 수해에 식료품과 수해복구 장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제는 북한의 산림 복구를 유도하는 지원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나무심기를 돕는다든지, 심은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연탄 사용을 유도하는 에너지 정책에 지원하는 방법 등이다. 아울러 국민의 세금으로 북한을 지원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북녘의 산하를 병들게 한 북한 지도부의 정책적 오류이다./hbjee@chosun.com

첨부/기사 중문번역본/ http://chn.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29/20070829000030.html

6 Comments

  1. 라인강

    2007년 8월 30일 at 4:01 오전

    한 십년전쯤인가 저는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교시로 시작한 다락밭 개간 운동의 결과로 경사도가 비교적 완만한 산에는 나무가 없어지고 그 결과 내리는 비를 지체시키고 담아둘 수단이 없어서 물살이 세지고 그 결과로 토사가 흘러내려 강바닥이 엄청나게 올라와서 조그마한 양의 비에도 물난리가 날 수밖에 없는 체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락밭 개간운동을 중지하고 오히려 산에 나무를 심어야 하건만 이 다락밭 개간운동은 바로 깅일성의 교시이고 김일성의 교시는 무결점 이기에 아무도 그의 이러한 교시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 할 수 없고,

    김일성 또한 자신의 문제점을 고쳐나가기를 꺼려 하기 때문에 앞으로 크게 문제가 될것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십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계속 적으로 북한을 괴롭히고 있는 소식을 듣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북한의 물난리 소식을 최소 수십년은 들어야 할 것 입니다.

    특히 전세계가 이상기후로 인하여 국지성 폭우가 빈발 한다고 하는데
    북한은 조그마한 소나기 조차도 감당을 하기 힘든 강바닥이니

    고쳐 주고자 하여도 무엇을 어떻게 시작을 하여야 할지…. 참 한숨만 나옵니다.

    노무현이가 그동안 국민을 속여가며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퍼부은 돈이 무려 10조가 넘는다고 하는데

    아무리 퍼부어도 이것들이 교조적인 정책에 매달려 근본을 돌아볼 생각을 못하는 것들이니….

    우리가 전기 등 원자재와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만 해결이 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전기를 준들 이것은 전략물자로써 전쟁이라도 난다면 이것을 먼저 끊을 것이고 그리고나면 북한 경제에는 다시는 돌이키기 힘든 치명상을 줄 것인바 ….

    ( 6.25때 북한이 바로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수풍발전소의 전기를 끊어서 우리 경제가 심각한 피해를 본적이 있습니다. )

    저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것 입니다.

    아니 받아들여서 한 두해만에 무슨 기적이라도 뚝딱 만들어 낸다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불가능 하니 김정일 으로써는 고민이 깊을 것 입니다.
       

  2. 최종문

    2007년 8월 30일 at 10:06 오전

    그렇습니다.
    年度는 확실치 않으나 1987년경 태백산을 넘어 울진 방향으로 가는길에 승용차 안에서 김일성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좋지 않음)음성으로 1시간 이상 신년교시를 하는 내용중에

    무슨사업은 조기달성하고 무슨 무슨사업은 120%초과 달성 할것이라는둥 장황하게 읽어 나갈때 "얕은산" 개간하여 "다락밭"만들어 식량생산 초과달성 시키겠다는 등등의 잘나빠진 연두교시가 이러한 결과를 낳았지요

    그러므로 이런 결과는 전적으로 賤出김일성의 위대한 업적으로, 대를이은 김정일이 대를 이어 책임지고 물러나야 된다고 사료됩니다.    

  3. 지기자

    2007년 8월 30일 at 12:22 오후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60~70년대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에 산에 나무를 심게 한 것은 참 멀리 내다본 정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라인강님 말마따나 북한의 산에 나무가 자라려면 수십년이 걸리겠지요.

    90년대 초 일본 학자가 쓴 책에서 다랑밭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던데, 그때 그런 비판에 귀 기울였다면 지금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4. 지기자

    2007년 8월 30일 at 12:25 오후

    최종문님 지적처럼, 북한의 문제점은 국가의 정책이 합리적으로 토론을 거친 뒤 결정되지 않고,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되고, 그것이 ‘무오류’로 신격화되어 교조적으로 추진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정치체제의 문제점이 극복되지 않는 이상, 북한의 변화는 기대난망이라고 봐야겠지요.    

  5. 동포여

    2007년 8월 30일 at 3:34 오후

    모택동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어쩌면 저렇게도 김일성이가 똑같이 따라했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도 세습이 안되고 등소평같은 인물이 나왔다면 지금쯤은 많이 달라 졌을 것입니다. 등소평이 모택동의 시신과 동상 그리고 대형 초상화를 그냥 두게한 것은 그를 추모하기보다는 잘하고 못하고의 심판은 인민들이 판단하겠끔 그냥 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6. 월드.Kim

    2007년 8월 30일 at 5:09 오후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
    재래시장통에서 물건을 파는 어느 아주머니
    "통일되면 국산"이라고 쓴 북한산 물건을 보면서
    언젠가 통일 될 그 날을 기다리는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었인가를 보여 준 귀한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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