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화문과 반달
<홍화문과 반달>
얼마전서울대병원을 가기 위해 창경궁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아무 생각없이터덜터덜 걷다가 횡단보도 근처에 도착했을 때 우연히 길 건너 창경궁 홍화문(弘化門)을 바라보았다.
순간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둠에 물들어가는 짙은 청색의 하늘을 배경으로늠름하게 서 있는 홍화문의자태.
나는 숨을 멈추고 그 광경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것은 위엄을 갖췄으면서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아름다우면서도 굳이 뽐내지 않는 기품 같은 것이었다.
또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영화롭던역사에 대한 비애 같은 것도 느껴졌다.
홍화문 위에 뜬 반달.
둘은 마치 데이트 하는 연인 같기도 하고, 오랜 친구 같기도 하다.
2층지붕의아름다운 선은 짙은 하늘색으로 인해 더욱선명했다.
나는여기 저기 자리를 옮겨다니며디카를 눌렀다.
우리 조상들은 홍화문과달의 조화를 미리 염두에 두고 이 대문을 지었을까?
홍화문과 반달, 초저녁의 하늘이 빚어낸아름다움은현대식 건물에서 느끼지 못하는아름다움이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은 그냥 드나드는 문이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예술품처럼 느껴졌다.
창경궁 안으로 들어가 셔트를 누르고싶었지만, 홍화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홍화문.그 앞에 신호등이 있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홍화문 앞 도로로버스와승용차가 쉴새없이 지나갔다.
빨간 신호등에멈춰섰던 차들은 다시 출발하면서 매연을뿜어냈다.
홍화문은 그 매연과 먼지를 뒤집어 쓰는 굴욕을오랫동안 아무 말없이 견디고 있다./지해범기자hbjee@chosun.com
douky
2008년 7월 24일 at 6:59 오후
짙은 청색 하늘이 마음에 와 닿네요…
쓰신 글 때문인지…
하늘 빛과 실루엣으로 보이는 홍화문의 어둠 때문인지…
한 때의 영화를 누리다 뒤로 물러난 자의…
쓸쓸함이 무척, 많이… 느껴집니다 ~
본효
2008년 7월 25일 at 11:30 오전
<…아무 말없이 견디고 있었다>
홍화문 뿐이겠습니까?..
한국의 美
2008년 7월 27일 at 5:25 오전
도심에 수많은 옛 궁궐과 함께 하는 서울은 복받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