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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 중국 실직 농민과 200만 미국 실직자

2000만 실직 농민공이 중국의 시한폭탄이라고?/조선일보 위클리비즈 2009년2월14일자 보도

지해범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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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천성 성도에서 실직자들이 자신의 기술을 적은 종이를 땅바닥에 펼쳐놓고취업을기다리고 있다./사진=로이터연합>

작년 9월부터 귀향민이 증가하더니, 연말이 되자 급증하더군요.

중국 호남(湖南)성 상덕(常德)시 도원(桃源)현 우차하(牛車河)향의 고참 향장(鄕長·한국의 면장에 해당)인 쩡궈청(鄭國成)씨는 작년 하반기 연해지역에서 돌아온 농민공은 고향을 떠난 전체 농민공의 약 40%에 달한다고 말했다.

올해 46세인 쉬동양(徐東陽)씨도 귀향 농민공 중 한 명이다. 1992년 쉬씨는 돈을 벌기 위해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광동(廣東)성 혜주(惠州)에 정착했다. 쉬씨는 전자회사에, 아내는 큰 식당에서 일했다. 학교를 졸업한 아들도 전자업체에 취직해 돈을 벌었다. 작년 11월 쉬씨가 16년 일하던 전자회사는 갑자기 문을 닫았다. 세계금융위기 여파로 주문이 끊어진 것이 원인이었다. 쉬씨는 100여명의 다른 직원과 함께 실직자가 되었다. 쉬씨는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아들과 아내를 혜주에 남겨두고 혼자서 고향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호남성은 중국 공산혁명의 대부 마오쩌뚱(毛澤東)의 고향. 이 성은 경제발전이 더뎌 농촌 노동력 3200만명 중 2120만명이 유휴노동력이다. 쉬씨처럼 이들 대부분이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막노동을 하는 농민공(農民工)이 되었다. 공산혁명의 본거지가 개혁개방 30년 만에 대량의 농민공을 만들어 내는 낙후 지역이 된 것이다.

실직 농민공 문제는 호남성 뿐만 아니라 하남(河南), 사천(四川), 호북(湖北), 하북(河北), 안휘(安徽), 운남(雲南), 광서(廣西), 강서(江西) 등 중서부 지역 모두에 해당한다. 지난 2월2일 중국 국무원 농촌업무담당관실 천시원(陳錫文) 주임은 중국 전체적으로 1억3000만 농민공 가운데 금융위기 여파로 실직해 귀향한 농민공이 15.3%인 2000만명 가량이다고 발표했다. 표본조사를 통해 나온 이 숫자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는 별도문제로 치더라도, 기존에 알려진 숫자(1000만명)의 2배란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일자리를 잃은 중국 농민공의 귀향을 보는 세계 언론의 시각은 비슷하다. 이들이 중국 사회의 불안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정부가 이들의 생계대책 마련에 소홀할 경우, 7억 농민의 불만과 결합해 폭발할 수 있다는 성급한 진단도 나왔다.

농민공들이 고향에 송금하는 돈은 농민 총수입의 약 40%를 차지한다. 따라서 농민공의 대량실직은 농촌경제에 타격을 주고, 7억 농민 전체의 불만으로 확산될 수 있다. 또 이는 가전하향(家電下鄕·농민이 가전제품을 구입할 경우 가격의 13%를 정부가 보조) 처럼 농촌지역의 내수진작을 통해 경기를 살려보려는 정부 정책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실직 농민공 문제는 중국 사회의 잠재적 불안 요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실직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과 중국 정부의 대응을 들여다보면, 외부의 우려와는 거리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농민공은 어떤 사람들인가

쉬동양과 같은 고향의 양관빙(楊關炳)은 5년 전 도시로 나가기 전 2000㎡(약600평)의 땅에 농사를 지었다. 이 토지에서 매년 쌀 3모작(생산량 총1200㎏)을 하고 모시를 생산(약300㎏)했지만, 농약·비료대금과 전기료를 내고 나면 1900위안(元·약38만원) 정도만 손에 떨어졌다. 딸의 1년 학비 1만4000위안(약284만원)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양씨는 2004년 상덕시의 한 주방설비 회사에 취직했다. 아내는 고향에 남아 농사를 지으며, 농한기에는 하북성으로 가 중국식 호떡을 만들어 팔았다. 두 사람의 연수입은 2만 위안이 되어, 농사 지을 때보다 10배나 뛰어올랐다. 농상(農商)겸업의 결과다.

양씨 가족처럼 중국의 농민공은 대부분 고향에 토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 토지는 고향에 남은 가족 중 일부나 친척이 경작한다. 도시로 나간 가족이 최악의 경우 모두 실직을 해도 고향에 돌아오면 굶지는 않는다. 그들은 돌아갈 곳이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실직 농민공은 지난 90년대 국유기업 개혁으로 일자리를 잃은 도시의 대규모 실직 노동자군(下崗群体)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농민공들은 실직의 원인에 대해 세계금융위기외국의 주문 감소공장폐업의 구도로 이해하며 피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인다. 수출품 제조 일선에서 하루가 다르게 주문량이 감소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대만인이 투자한 광동성 동완(東莞)의 한 신발공장에서 일하던 조우샤오리(周曉麗)는 매월 30만쌍에 달하던 신발 주문량이 연말이 되자 3만쌍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농민공들이 기업이나 정부를 원망하는 일이 적은 까닭이다. 실직 농민공 중 일부가 부도난 회사 앞에서 시위를 벌인 적은 있지만, 체불임금만 해결해주면 시위는 종결되고 모두 귀가한다.

◆중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2000만 실직 농민공이 중국 사회의 화약고가 될 것이냐 여부는 중국 정부의 위기 관리능력에도 크게 좌우된다. 각 지방정부가 실직자 직업훈련 및 취업알선을 통해 위기를 잘 관리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이들의 요구를 외면하거나 작은 반발에 과잉대응하는 등 불씨를 키운다면 문제는 커질 수 있다.

중국농민공[1].jpg<사진=블룸버그>

원자바오(溫家宝) 총리는 지난 1월 4조 위안(약820조원)의 경기부양 패키지를 발표했다. 철도 공사 등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교육·위생·노인복지 등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을 계획이다. 가전제품과 1.3ℓ 이하 자동차에 대한 정부보조도 시작됐다.

지방정부도 중앙정부의 방침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호남성의 경우, 18개 신설 고속도로와 27개 토목건설 프로젝트에서 약 10만명의 일자리를 만드는 안을 마련했다. 또 본인이 원하면 무료로 기술학교에서 교육을 시켜주고 연간 1500위안의 학비도 지원하기로 했다.

지방정부는 현지 기업의 실직 농민공 채용을 독려하고 있다. 강서성 숭인현의 경우 현내 공단 19개 입주기업들이 1949명의 직원을 신규 채용하기로 했다. 현 당서기 리샤오하오(李曉浩)는 많은 경험을 가진 농민공들이 고향에 남아 경제발전에 기여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연해지역에서 고임금과 환경오염규제를 견디지 못한 노동집약 업종들이 내륙으로 공장을 이전함에 따라, 광동성 상해 등지에서 일하던 농민공들이 중경(重慶) 성도(成都) 우루무치 등으로 이동하는 현상도 포착되고 있다.

실직 농민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충하는 추세다. 호남성 장사(長沙)-주주(株洲)-상담(湘潭) 등 3개시는 귀향 농민공을 양로보험에 가입시키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해당지역 농민공의 약 40%가 혜택을 받게 됐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대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 문제에 중국 정부가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젊은 농민공 세대의 창업열기

절강(浙江)성의 한 방직공장에서 일한 탕웬메이(唐元梅·19세)는 작년 10월 고향인 호남성 영주(永州)에 돌아와 아동복점을 개업했다. 그의 동창생 장리쥔(蔣黎軍·19세)은 염색공장에서 돈을 모아 고향에서 물고기 양식장을 열 계획이다. 이들은 고향에 일거리가 있다면 멀고 먼 타향에서 헤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제일재경일보(第一財經日報)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실직 농민공 중에서도 70후(後·70년 이후 출생자)80후 등 20~30대 젊은 세대들의 창업의지가 강하다. 가족 부양의 부담이 적은 이들은 2~3년 돈 벌어 고향에서 내 가게(회사)를 열 것이라고 곧잘 말한다. 반면 이미 도시의 소비생활에 젖어 농촌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나가겠다는 젊은 세대도 적지 않다.

중국 국무원이 작년말 호남성의 귀향 농민공을 대상으로 향후 계획을 조사한 결과, 당분간 관망하겠다67%로 가장 많았고 고향에서 취업하겠다20%로 나타났지만, 고향에서 창업하겠다 13%나 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창업희망자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광서성의 경우 창업 농민들에게 5만 위안(약1000만원)의 담보대출을 해주고, 2년간 기업소득세와 영업세 등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중국의 한 경제평론가는 실직 농민공들은 소규모지만 축적된 자금과 숙련된 기술, 시장경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창업을 하거나 신농촌(새마을)건설에 앞장서게 되면 낙후한 농촌지역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수백만명이 256만개 자연촌에서 안거창업(安居創業·고향에 편히 살며 회사를 일으킴)하게 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농촌주택 건설과 농업의 기계화 등에서 투자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2000만 실직 농민공 문제는 당분간 중국 지도부에 큰 압력요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 문제에 적극적이고 전면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55만 대졸자의 취업대책조차 마련하지 못한 한국정부보다 기민하게 대응하는 측면도 있다.

10년 전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IMF 구제금융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시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는 내수진작책으로 파도를 넘었고, 그 이후 중국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이번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에서도 중국은 내수경제로 다시 방향을 틀고 있다. 내수진작의 초점은 중서부 농촌지역이다. 따라서 2000만 실직자라는 현상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중국의 낙후한 중서부 농촌지역이 어떻게 바뀌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미국 양쪽에체류경험이 있는 국내의 한 기업인은 2000만 중국 실직 농민공이 200만 미국 실직 흑인보다 덜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언론에서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의 사회문제에 대해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진단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무책임한 진단은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중국의 다음 행보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정밀하게 분석해 세계 최대 시장을 선점하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hbjee@chosun.com

1 Comment

  1. 풀잎사랑

    2009년 2월 16일 at 10:33 오전

    몇년전에 장가계 여행을 하면서 들렸던 호남성.
    장사에서 비행기가 내려 호남성에서 쉬었다 갔었는데요.
    전부다 산이 아니면 밭이더라구요.
    그런데 집들이 하나같이 똑 같은 이층건물,
    그것도 특징은 한결같이 허름한…
    그래도 남쪽이라 따땃해서 잘 사는 편이라고 가이드가 말했었는데…
    외지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농민공들이 실직을 하면
    그들의 생활수준이 얼마나 더 험할지는 안 봐도 알것 같습니다.
    비단 호남성만 그러지는 않을건데…

    하긴 남의 나라 얘기도 아니네요.
    울 나라도 너무 걱정스러워요.
    당장은 우리 집부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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