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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화려했던 위구르의 역사는 가고 - China Inside
화려했던 위구르의 역사는 가고<下>

화려했던 위구르의 역사는 가고<下>독립기회를 놓친 위구르족

지해범 조선일보 전문기자

위구르전사.jpg

<알카에다와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위구르 톡립전사>

지금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의 하나로 변방에서 초라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위구르족들에게도 화려했던 역사는 있었다. 이 땅은 넓은 사막에 드문드문 오아시스가 있어 오래 전부터 유목민족들이 이동하며 살던 곳이다. 오아시스는 천산(天山)산맥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사막의 땅 속을 흐르다 낮은 지대에서 모래를 비집고 나와 습지대를 형성한 것이다. 천산 자락에는 백두산 천지(天池)와 같은 이름의천지가 있지만,계곡을 막아 만든 호수이다.

이 넓은 지역을 이동하며 살던 위구르족들은 오랫동안 훈족 돌궐족 티벳족의 통치를 번갈아 받았다. 그러던 위구르족이 처음으로 독립국가를 세운 것은 서기 744년이다. 중국에는 당(唐)이 있던 때이다. 몽골 오르콘강 기슭에서 일어난 위구르왕국은 북으로는 바이칼호수에서부터 남으로는 인도, 동으로는 중국 감숙(甘肅)에 이를만큼 그 영역이 광대했다. 고구려 전성기의 영토보다 넓은 땅이다. 위구르왕국은 국력도 강성하여 당이 거란의 공격을 받았을 때 당을 지원해주고 매년 비단 2만필의 조공을 받았다고 한다. 또 당 황제는 위구르의 공주와 결혼을 해야했다.

위구르족들의예배.jpg

<위구르족들의예배모습>

840년 이 거대한 왕국은 3개로 쪼개졌다. 지금의 감숙성을 중심으로 한 ‘감숙위구르 왕국’, 투루판 지역을 근거지로 한 카라코야 왕국(불교국가), 카슈가르를 중심으로 한 카파카니드 왕국(이슬람국가)이 그것이다. 카라코야 왕국과 카파카니드 왕국은 1397년 통합했다. 이 왕국들은 18세기 중반까지 존속했다. 당시 이 왕국은 ‘흉노’ ‘돌궐’ 등으로 불렸다.

1759년 만주족 정권인 청(淸)이 위구르를 침략, 두 왕국을 무너뜨리고 1826년까지 지배했다. 나라를 빼앗긴 위구르족들은 이 시기 무려 42차례나 독립운동을 펼치지만 실패했다. 그러다가 1863년 위구르족의 새로운 지도자 ‘야쿱벡’이 중심이 되어 청나라 군대를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청군이 위구르군에 패퇴한 것은 북경의 청조가 아편전쟁 이후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의 공세에 시달리느라 변방 수비에 신경쓸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야쿱벡의 독립왕국은 당시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던 영국과 러시아, 오토만제국 등에 의해 국가로 인정받았다.

위구르야쿱벡.jpg

<위구르의 지도자 야쿱벡>

그러나 1876년 야쿱벡 군대는 좌종당(左宗棠)이 이끄는 청 군대에 무너졌다. 당시 야쿱벡은 서방으로부터 지원받은 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있어 주변국들은 청나라에 패배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야쿱벡은 협상을 하자는 좌종당의 작전에 말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청군에 패배하고 말았다. 위구르족 입장에서는 독립을 쟁취할절호의 기회를 놓쳐, 천추의 한이 되고 만 것이다. 청은 다시 정복한 이 땅을 ‘새로운 영토’라는 의미로 ‘신강(新疆)’이라고 명명했다. 중국인들 스스로 ‘새로운 영토’라고 이름붙였으니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지배가 그리 길지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좌종당은 이 때 왕지환(王之渙)의 시 ‘양주사(凉州詞)’ 뒷부분을 다음과 같이 바꾸었다.
羌笛無須怨楊流(강족의 피리는 슬픈 절양류곡을 연주하며 원망할 필요 없느니)
春風已度玉門關(봄바람은 이미 옥문관을 넘었도다)

좌종당.jpg<左宗棠>

청의 군대가 옥문관을 넘어 신강이 중국 땅이 되었다는 얘기다.(※‘봄바람이 옥문관을 넘었다’는 마지막 구절은 훗날 청춘남녀가 ‘선’을 넘었음을 상징하는 구절로 애용된다. 가령 부모가 자식의 결혼을 완강히 반대하다가, 자식이 “春風已度玉門關”이라고 얘기하면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이 시에 등장하는 강족은 옛날 감숙성 부근에 살던 중국의 소수민족이다. 인구는 겨우 30여만명에 불과하며, 지금은 사천성 서북쪽 민강(岷江)부근에 집거한다고 한다.

강족아가씨.jpg

<전통의상을 입은 강족 처녀>

청의 지배는 70여년 이어지다가 신해혁명으로 청이 무너진 뒤 변방이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4년, 위구르족들은 일리(중국명 伊犁)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동투르키스탄 임시정부’를 선포했다. 제대로 국가모습도 갖추지 못한 임시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끝까지 싸우자는 주석파와 중국과 타협하여 생존을 도모하자는 부주석파로 양분돼 내분을 겪고 있었다. 1949년 중국땅에 국공내전이 끝나고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자, 임시정부 주석은 해외로 망명하고, 부주석 세력은 중국에 투항하고 말았다.

위구르 자치구의 3대 소수 민족 가운데 카자흐족과 타지크족은 중국 영토 바깥에 각기 ‘카자흐스탄’과 ‘타지키스탄’ 등 독립국가를 세웠으나, 위구르족만은 나라없는 민족이 되고 말았다.위구르인들은 13억 중국인 속에서 ‘약소민족의 설움’을 맛보며 살아가고 있다.

지난 7월5일의 폭동은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핍박의 설움’이 터져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종교(이슬람)생활에 대한 중국정부의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이 지역에 대한 한족의 이주가 급증하면서 경제권마저 빼앗기자 생존의 위기를 느끼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충돌로 많은 한족이 목숨을 잃었고, 경찰의 시위진압 과정에서 적지않은 위구르족들도 총에 맞아 숨졌다. 중국정부가 공식 발표한 사망자는 197명이지만, 세계위구르회의는 최대 800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위구르몽고족등독립단체.jpg

<해외에서 벌어지는 위구르 내몽골 등소수민족들의 독립운동. 플래카드에 "중국은 모든 민족정치범을 석방하라"는 글이 쓰여있다.>

주목할 현상은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순식간에 집결한 시위대가 중국 경찰이 대응할 틈도 주지않고 길거리에서 한족(漢族)을 무차별 공격했다는 점이다. 또 위구르족 독립투쟁 세력의 일부는 아프가니스탄 산악지역에 은거한 알카에다와 연계하여 테러리스트 양성과 무기지원 등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카에다는 이미 중국정부에 대한 ‘보복’을 선언했다. 앞으로 북경 상해 등 대도시에서 알카에다식 자살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앞으로 중국 당국의 ‘비상경계일’이 늘어나게 됐다. 3월14일 티벳사태 발발일(2008년3월14일)과 6월4일 천안문(天安門)사태 기념일(1989년6월4일), 그리고 7월5잃 위구르 사태 발발일(2009년7월5일). 중국 정치가 시험에 드는 날도 많아졌다./조선일보 지해범 전문기자 hbjee@chosun.com

7 Comments

  1. 이정생

    2009년 7월 17일 at 11:21 오후

    위구르와 중국의 사태도 그렇지만 여기에 알카에다까지 가세했으니 정말 중국 주변의 사태가 심상치 않은 듯 보입니다. 중국이 워낙 우리와 가까운 땅이다 보니 괜시리 우리에게까지 피해가 미칠까 그것도 우려됩니다. 워낙 중국에는 우리의 교포, 유학생, 주재원들이 또 많기도 하고 말이죠.

    오랜 만에 와서 중국과 연관된 소식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2. 이예수

    2009년 7월 18일 at 1:00 오후

    할렐루야
    중국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행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핍박하며 대적하는 나라의 내일을 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끼리 싸워서 스스로 망하게 하시지요
    중국은 결국 분열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많은 민족으로 나누어 놓은 뜻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떠난 사람들은 항상 전쟁속에서 안식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모든 열방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삶이 되는 날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립니다
       

  3. 박광신

    2009년 7월 21일 at 1:05 오전

    좌종당 청의 지략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한게 한이되겠군요.
    야쿱벡은 꼭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군요.
    김일성이나 김정일에게 놀아난게 고려연방제에 속아 돈주고 비료주고막 퍼주다
    미사일, 핵 개발 정신없는 지경이….
    북에서 오판 할까봐 그게 거정이고요
    6.25 처럼 남침할까봐 ~
    그러면 아수라장이~
    그때도 내분이 연변파(중공 모택동 지지자)소련파(스탈린지지자들)내분과
    극도로 불안한 정국 돌파로
    김일성이가 적화통일 시키려 벌인 전쟁에 연합군 수만명 !
    수백만의 피해자와 이산가족이
    탄생되어 아직까지 평화통일을 보지못하고 흡수통일도 못시키고
    남한만이라도 먹고 살기가 수월치 않고
    국가채무 갚는 이자만 20조가 필요한 이때
    이모든것이 IMF 때 단기부채를 장기로 전환하고
    막 자기돈쓰듯이 한이유와 계속 누적된 국채에 국민들 혈세만
    늘어가니 무슨 흡수통일 ?
    꿈같은얘기죠 ! 독일이 참 부러워요 !

    하여간 두지도자가 북한에 이용당한만큼 요지경이 되었죠 ?
    ㅋㅋㅋㅋ 햇볕정책 쓰면 통일될것 같은 허상만 심어줘서
    사기 당한 기분이 왜 드는지…..
    이만 불평은 그만 !
    앞으로나 남북 정국이나 잘풀려서
    평화통일이나 됐으면 해요.
    아직도 우리는 해방되지못한 반쪽만의…
    김구선생이 많이 납니다 !
    아무튼 대화는 계속 !
    통미봉남은 민족에게 죄짓는거요 !
    김영남이가 6자 회담 물건너 갔다고 하는거 보니까
    수세에 몰린것은 아는가본데
    쥐도 막다른 길에서는 고양이에게 달려드는격이랄까…
    아무튼 잘되기나 기도 해야 할듯 합니다 !
    샬롬 !   

  4. 박광신

    2009년 7월 21일 at 1:11 오전

    우리가 도와준 돈으로
    중국서 식량과 물자를 가지고 연명하던 북한이
    막 미사일 ! 핵폭탄 터뜨려 실험하고 하니
    먹고 사는일보다
    피흘리기를 좋아하는 종자들이 많은것 같아 걱정이요 ~
    김정운이는 군사학교와 베를린서 잠깐 공부해서
    경제는 문외한이니
    장성택 김정일 국방위원장 매제
    장성택이가 정권을 잡았으면 좋겠소 !
    경제에도 해박하고
    북한권력과 통치에도 일가견이 있고
    경제에도 도움이되는
    개방의길을 알고 있으니….
    등소평처럼 중국을 먹게 살게하는
    큰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뿐입니다 !
    북한의 등소평 !
    과연 누가 될까요?
    기대 하시라 !

       

  5. 지해범

    2009년 7월 21일 at 4:18 오후

    이정생님, 반갑습니다.
    캐나다는 알카에다의 테러 위협이 없겠지요?   

  6. 지해범

    2009년 7월 21일 at 4:18 오후

    이예수님, 반갑습니다.   

  7. 지해범

    2009년 7월 21일 at 4:19 오후

    박광신님, 긴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민족통일문제에 관심이 매우 많으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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