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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동아시아 칼럼] 새로운 ‘개혁·개방'(?) 앞둔 북한
  • 차오위즈(喬禹智) 베이징대 조선경제연구소 주임
  • 입력 : 2009.12.04 02:46

    차오위즈(喬禹智) 베이징대 조선경제연구소 주임

    북한 강경파는 약화됐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정상적 비즈니스 쪽으로 명확해졌다
    북한은 돈도 바닥났다 새로운 수입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최근 국제 정세와 북한의 행보를 보면 북한에서 2002년 7·1 조치 이후 7년 만에 새로운 ‘개혁·개방’ 조치를 취할 듯하다. 개혁·개방이라는 말에 인용부호를 다는 이유는 북한 스스로 개혁·개방이라는 용어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데다, 북한의 개혁·개방이 최고지도자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추진된다기보다는 국내외 정세의 결과물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며칠 전 단행한 화폐 개혁도 장롱 속 돈을 끄집어내 금융시스템을 정상화하고 국가 신용도를 높이려는 뜻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는 첫 번째 이유는 금년 상반기까지 정세를 주도하던 북한 강경파의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상대적으로 보수강경파의 입지가 약화됐다는 점이다. 개혁·개방의 반대 동력이 약화된 셈이다. 당초 올 5월의 2차 핵실험은 북한 입장으로 봐도 과유불급이었다. 대외 안보용이든 대내적인 체제수호용이든 핵실험은 한 번이면 족했다. 국제 정세에 대한 오판, 인내심 부족(혹은 국내 정세의 압박), 과거 정책의 관성 등이 만들어낸 실책이었다. 3개월도 안 돼 곧바로 대외유화정책으로 돌아선 걸 봐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그동안 우왕좌왕하고 모호했던 중국의 대북정책이 명확해졌다. 즉, 안보 부문은 어느 정도 챙길 수 있으나 경제 지원은 별로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방북했을 때 마오쩌둥(毛澤東)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의 묘지 앞에서 "중국은 이제 강대해졌다"고 한 언급이나 량광례(梁光烈) 국방부장 방북 시 일련의 발언에서 중국이 북한의 안보 불안을 불식시키려는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반면, 경제면에서는 2억위안 정도의 원조를 가져갔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관례에 따른 것일 뿐이었다. 수행인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례적으로 중국 해외투자의 결정권자들인 국가발전개혁위(발개위) 주임과 상무부장을 동시에 데려갔다. 일방적인 원조가 아니라 정상적인 비즈니스를 하자는 것이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북한 경제가 너무 어렵다. 더 간단하게 말하면 이제 돈이 바닥이 났다. 연속 2년 동안 한국의 쌀 100만t, 비료 60만t 지원이 끊어졌다. 금강산관광, 개성관광 중단으로 연간 수천만달러의 수입도 달아났다. 금융위기로 인해 주요 수출품목인 광물의 단가도 폭락했다. 외교관인 이근 외무성 미국국장이 미국 샌디에이고회의에서 경제 문제를 이야기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북한 같은 수직명령 체계하에서 자기 영역을 넘어 다른 분야 일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상부기관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재래식 수입원이 끊기고 돈도 없고 변화를 반대하는 세력들의 힘도 약화된 상황에서 조직을 운영하자면 그 방도는 자명하다. 즉, 개방을 통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하고, 개혁을 통해 기존의 고비용 조직 운영체계를 돈이 적게 들도록 바꾸는 것뿐이다. 북한에서 중국이 오래전에 제안했던 신압록강대교 건설을 수락한 것은 아마도 비단섬과 신의주 개방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중국이 지린(吉林)성 차원의 ‘창춘 지린 투먼 개발계획’을 국가계획으로 전격 승격시킨 것도 북한의 나진항 신규 개방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문제는 누가 개혁·개방 정책을 만들어내고 집행하느냐이다. 1990년대 초반 개혁·개방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7·1 조치를 주도했던 이들도 아마도 많이 좌천됐을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 방문 시 동행했던 중국 발개위 주임, 상무부장이면 충분히 몇십억달러짜리 투자를 결정할 수 있음에도 실제 체결된 대북투자협정은 한 건도 없었다. 별로 영양가 없는 관광협정이니 IT협정 체결 사실만 발표됐다. 모르긴 해도 중국과 제대로 된 협상을 할 만한 상대방이 없어서 서로 간에 대화가 안 됐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중국, 동유럽, 베트남, 몽골 등등 과거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개방 경험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후발주자로서 우세가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또 산업구조나 사회구조가 중국과 많이 다르고, 중국 개혁·개방이 실패한 부분의 경험을 보완해 중국과 차별화를 할 수 있기에 충분히 ‘주체적인’ 북한식 사회주의경제발전전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마오쩌둥은 "중국은 좌 5년 우 5년"이라고 했지만, 영토 규모가 작은 북한은 ‘좌 2년 우 2년’이라고 표현하면 맞을 것 같다. 2년마다 정책이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북한을 물 위에 떠있는 빙산에 비유한다면 한꺼번에 너무 녹이면(개혁·개방) 빙산의 형태(체제)를 유지하기 힘들고, 한꺼번에 너무 얼어붙게 하면(대북강경제재) 다음번에 녹일 때 코스트가 너무 커 빙산 밑을 흐르는 물(지방민의 생활)까지 얼어붙게 된다.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태극(太極)의 묘미를 살릴 때가 온 듯하다.

    2 Comments

    1. 황롱치

      2009년 12월 6일 at 4:51 오전

      기자님 글 잘 봣습니다..년초에 13억경제학(한우덕기자님) 모임에서 뵜었는데..안녕하시지요? 북한을 녹이든 얼리든 북한은 중국의 상황과 의지의 종속변수이겠네요..종속변수화가 더욱 더 심해지겠지요?    

    2. 지기자

      2009년 12월 8일 at 2:03 오후

      황사장님, 반갑습니다.
      중국 사업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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