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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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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 100주년, 이중적 ‘중화 민족주의’는 부활할까?

한국이 신해혁명 100주년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下)

—신해혁명 100주년, 이중적 ‘중화 민족주의’는 부활할까?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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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신해혁명 박물관>

중국에서는 신해혁명에 관한 출판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중국 1911’ ‘신해기억(記憶)’ 등이 이미 추천도서에 올랐고, ‘신해저명인물전기’ ‘1911’ ‘무창첫기의(首義):신해혁명기실’ ‘신해혁명 목격자의 기록’ ‘서북신해혁명사략’ ‘손중산과 중국혁명’ 등이 나왔다.

한편 무한 광주(廣州) 남경(南京) 등 중국의 몇몇 도시들은 지난해부터 ‘어느 도시가 신해혁명의 중심지’냐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무한이 신해혁명의 첫 발발지였다는 점을 강조한다면, 광주는 손문의 출생지(광주에서 멀지않은 중산)이자 학교를 다닌 연고지임을 내세운다. 또 남경은 손문의 무덤인 중산릉이 있는 곳이다. 이들 도시들이 신해혁명 관련 행사와 건설사업에 투입하려는 예산은 모두 200억 위안(元·약3조4000억원)에 달한다고 지난해 신경보(新京報)가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혁명의 뜻을 되새기는 일에 투입되는 돈은 4억 위안에 불과하고, 196억 위안은 이를 명목으로 내건 각종 도시건설사업에 투입될 것으로 전해졌다. 가령 무한은 올 1월 28일 ‘전체도시문화공작회의’를 열고, 올해 100주년을 계기로 도시 내의 문화재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증설해, 중국 중부지역의 문화중심도시 겸 국제문화교류의 중심으로 우뚝 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를 위해 박물관 부근에 첫기의(首義)기념탑을 세우고, 대대적인 문화광장을 건설하며, 광장 지하에 대규모 쇼핑가와 위락시설 정류장 등을 건설할 계획이다.

즉 이들 도시들은 혁명 본래의 뜻보다 ‘신해혁명의 도시’라는 명칭을 획득함으로써 얻어지는 부가적인 이익, 즉 중앙정부의 지원과 관광수입 등에 더 눈독을 들인다는 것을 알수 있다. ‘신해혁명의 상품화’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신해혁명 100주년을 둘러싸고 중국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 가운데, 정작 한국인이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고 신라대 배경한(裵京漢) 교수는 지적한다. 그것은 ‘중국 중심주의’ ‘중화 민족주의’의 부활이다. 중국인들에게 지난 100년간은 19세기말 서구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당한 치욕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기르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기간이었다. 국공내전과 공산정권의 수립, 그리고 문화혁명의 혼란 등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을 거쳐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게 된 중국은 지난 몇년간 북경올림픽(2008년)과 상해엑스포(2010년)마저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다. 중국은 이제 미국과 함께 G2(세계2대 강국)로 일컬어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맞는 신해혁명 100주년은 ‘강대국 중국으로 다시 굴기(崛起·일어섬)’하는 출발점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100년간 공산당이 이룩한 정치경제적 공적들을 신해혁명과 결부시킴으로써 대만 국민당 정부보다 우월한 중국 공산당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충만한 중국인들의 자신감은 ‘이제 세계의 중심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중국 중심주의’로 치닫는 양상이다. 중국의 인터넷에는 ‘미국시대는 갔고 이제는 중국시대’라는 주장이 바다를 이룰 정도다. 이러한 ‘중국 중심주의’는 전통의 ‘중화주의(中華主義)’와 맞닿아 있고, 중화주의는 손문의 ‘대아시아주의’의 뿌리가 된다. 즉 지금의 ‘중국 중심주의’가 100년전 신해혁명의 아버지인 손문의 사상과 연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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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시절의 손문(가운데)>

손문은 1924년 11월 일본 고베(神戶)에서 ‘대아시아주의’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그의 ‘대아시아주의’는 인의(仁義)의 나라 중국과 강한 일본이 결합해야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이 강연을 지켜보던 한국의 한 기자가 “현재의 조선을 목전(目前)에 보면 귀하의 ‘아시아주의’는 서로 저촉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아시아의 대화합을 주장하는 손문 선생으로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한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손문은 “물론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에 있으면서 조선문제를 철저히 논함을 피하고자 한다”고 대답을 얼버무렸다. 이 같은 손문의 태도와 관련, 작고한 서울대 동양사학과 민두기(閔斗基) 교수는 저서 ‘중국탐색’에서 “중국의 민족주의는 대내·대외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면서 “중국의 자국이익 중심의 민족주의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인의 민족주의가 충돌하는 것이 그런 예”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

손문의 ‘대아시아주의’가 이중적이었듯이, 2011년 현재 중국의 ‘민족주의’ 역시 이중적 면모를 보여준다. 냉전시기 미소(美蘇)에 대항해 약소국의 연합을 강조하며 ‘제3세계 외교’를 펼쳤던 중국이 최근 미국과 대등한 강대국으로 부상하자 이웃한 한국이나 일본에 ‘힘의 외교’를 펼치는 것이 그런 예다. ‘중국 중심주의’ 혹은 ‘중화 민족주의’가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중국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활동이 중국에 팽배한 ‘중화민족주의’에 어떤 작용을 할지 우리가 주시해야할 이유다. /끝

[이 글은 한국논단 2011년 3월호에 실린 글의 일부이므로, 복사전재는 불법입니다.]

7 Comments

  1. 벤조

    2011년 2월 28일 at 2:51 오후

    요즘들어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동북아가 어떻게 변해갈지 그게 보고싶은거죠.
       

  2. 그냥

    2011년 2월 28일 at 3:52 오후

    중화민족?????
    그런 민족이 언제부터 이 세상에 살았습니까?

    아직 중국에서도 서툴지만 5년 전 쯤 부터 중화민족이라는 신조어가 중국에서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민족이 56개나 되니, 민족주의로 중국을 한개로 묶어나가고 싶은 공산당이 상징조작의 잔꾀를 부린 것이 아닙니까? 민족주의 국가주의 같은 것은 약한 집단이 생존을 위해 구사하던 꽉 닫히고 편협된 사상작전이 아닙니까?

    중국은 큰 나라 입니다. 그러나 이 조그만 [지구촌]보다 작은 인간집단 아닙니까? 중국사람들의 의식 저변에는 "중국이 바로 세계"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인류] [지구촌]이란 개념이나 단어는 그리 많이 쓰이지 않고,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기까지 합니다. 많은 중국기업들은 "중국 1등이면 됐지 무엇하러 생소한 바다 넘어로 나가느냐!"는 의식도 강합니다.

    세상을 지구촌으로 보고 지구촌 1등이 아니면 죽는다는 우리 기업들의 의식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기본 의식의 차이는 한 세대, 30년, 정도가 흐르면 거스를 수 없는 격차로 구축될 수도 있겠지요. 지금은 양(量)의 경쟁시대가 아니라 질(質)의 경쟁시대 이니까요.

       

  3. 지기자

    2011년 2월 28일 at 4:01 오후

    벤조님 지적대로,
    중국의 부상으로 동북아가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집니다.   

  4. 지기자

    2011년 2월 28일 at 4:04 오후

    그냥님,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중국이 90년대 후반부터 ‘중화민족’이란 단어를 만들어 냈지요.
    그 시기는 대체로 ‘동북공정’ 시작과 비슷합니다.
    55개 소수민족을 한족에 동화시키려는 전략이며, 그것이 일부 지역에서는 효과를 내고 있지요.    

  5. 화창

    2011년 2월 28일 at 7:35 오후

    중화사상이라는게 세상의 중심이 자기네에게 있고 따라서 유럽과 미국은 오랑캐족속이라는 세계관에서 출발한 용어라던데 맞나요?   

  6. 지기자

    2011년 3월 1일 at 5:03 오후

    화창님, 지적대로 중화사상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고방식이지요.
    여기에 ‘민족주의’가 보태지면, ‘중화 민족주의’가 되는데, 최근 국력의 증강에 힘입어 그런 조짐을 보이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7. 대한민국

    2011년 3월 2일 at 4:44 오전

    손문에게 질문을 던진 조선의 기자.
    참 기백이 있네요.
    당시같으면 목숨을 내놔야할지도 모르는데.
    손문의 가소로운 궤변을 일거에 허물어 버리는 장쾌한 거사입니다.
    그런데 누구신지? 알 수 있으면 더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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