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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내부 권력투쟁 시작됐다

2012년말차기 공산당 지도부 구성 둘러싸고,

후진타오파와 장쩌민파 파워게임 진행중

지해범 조선일보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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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후진타오(왼쪽)와 원자바오. 감숙성 등내륙오지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급속한 발전 비결로 ‘공산당의 리더십’을 꼽는 정치학자들이 적지않다. 서방으로부터 ‘일당독재’라는 비판을 듣는 중국 공산당이지만 상향식 여론 결집구조와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계획의 수립, 충분한 내부토론을 통한 최적의 결론도출, 결정된 사안에 대한 일사분란한 집행으로 30여년 만에 인구 13억의 빈국을 세계 2위의 경제강국으로 변모시켰다. 그래서 중국식 정치체제가 서구식 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중국 학자들까지 있다.

그러나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안으로부터 곪기 마련이다. 당원수 8000만명의 중국 공산당은 부패와 비효율 파벌주의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또 급변하는 정치경제 환경 속에서 당의 진로에 대한 안팎의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난 3월초 재스민(중국명 茉莉花) 시위의 우려 속에 열린 양회(兩會·정협과 전인대)에서 공산당의 미래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었다. 이 논쟁은 겉으로는 전혀 논쟁의 모습을 띄지 않았지만, 한꺼풀 벗기고 보면 권력투쟁의 일환이었음을 알게 된다.

“중국은 다당제나 지도사상의 다원화, 삼권분립, 양원제, 연방제, 사유화개념 등 서방의 어떤 제도도 모방하지 않을 것임을 엄숙히 선언한다. 우리는 공산당 영도 하에 국가를 이끌어가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법률체제와 국가제도를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이는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3월 11일 전인대 전체회의 보고 때 한 발언이다. 같은 ‘정치개혁’ 문제에 대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3일 뒤인 3월14일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체제 개혁 없이 경제체제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나라의 운명은 민심에 있다. 인민이 정부를 비판하고 감독해야 한다. 인민대중이 촌(村)을 잘 관리하면, 향(鄕)을 잘 관리할 수 있고, 현(縣)도 잘 관리할 수 있다. 정치개혁은 이러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공산당 권력서열 2위(우방궈)와 3위(원자바오)의 두 인물이 3일간의 시차를 두고 정치개혁에 관해 밝힌 의견은 직접 충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본입장을 뜯어보면 큰 차이가 드러난다. 즉 한 사람(우)은 ‘공산당 일당독재와 사회주의 원칙의 고수’를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 사람(원)은 민주선거와 언론자유의 확대 등 서구식 민주주의에 열린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13억 국민이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두 지도자가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결코 개인소신의 피력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당내 파벌구조와 지난 수년간 전개돼온 암투의 연장선에 놓고보면 이는 공산당 지도부에 치열한 권력과 노선투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먼저 당내 세력판도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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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전인대에서 연설하는 우방궈>

공산당 제17기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9인으로 구성돼 있다. 국가주석이자 공산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 주석인 후진타오(胡錦濤)가 서열 1위고, 전인대 상무위원장 우방궈, 국무원 총리 원자바오(), 정협주석 자칭린(賈慶林), 전 광동성 서기 리창춘(李長春), 국가부주석 시진핑(習近平), 전 요녕성 서기 리커창(李克强), 전 중앙조직부 부장 허궈창(賀國强), 전 공안부 부장 조우용캉(周永康) 순이다. 이들 9명은 서열이 정해져있어 공식석상에 나타날 때는 순서대로 입장하지만, 당내 표결 때는 민주적으로 한표씩 행사한다. 따라서 국가중대사는 1인자 후진타오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표를 많이 모은 쪽에 의해 결정된다. 당내 ‘파벌’이 힘을 발휘하는 비밀이 여기 숨어있다.

현재 9인 상무위원회는 크게 3개의 파벌로 분류된다. 하나는 공청단 출신을 일컫는 이른바 ‘퇀파이(團派)’로서, 후진타오 원자바오 리커창 등 3명이 이에 해당한다. 두번째는 상해방(上海幇)으로 우방궈 자칭린 리창춘 등 3명이다. 세번째는 혁명원로들의 후손을 일컫는 태자당(太子黨)으로 시진핑과 허궈창이 이에 해당한다. 두 사람의 발탁 과정에 상해방의 대부인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쩡칭홍(曾慶紅) 전 부주석이 깊숙히 개입했기 때문에 태자당은 상해방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조우용캉은 중국 내 석유인맥의 대부인 리펑(李鵬) 전총리 계열로서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지만 성향으로는 상해방에 우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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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海幇의 대부 장쩌민 캐리커쳐>

이런 분류법은 사람에 따라,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후진타오로 대표되는 ‘퇀파이’가 ‘상해방 + 태자당’ 연합세력보다 열세라는 점이다. 1980~90년대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지침에 따라 4세대 리더가 된 후진타오는 2002년 최고 권자에 오른 뒤에도 늘 상해방의 영향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2007년 상해 당서기 천량위(陳良宇) 체포사건은 후진타오가 상해방의 파워에 ‘칼’을 대는 일종의 쿠데타였다. 그러나 천량위 제거 뒤 그 후임으로 후는 ‘공청단의 미녀’ 류옌둥(劉延東)을 앉히고 싶었지만, 상해방과 태자당의 연합지지를 받은 시진핑 전 저장성(浙江省) 당서기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시진핑은 공산당 원로로 국무원 부총리까지 지낸 시중쉰(習仲勳)의 아들이다. 시중쉰은 조우언라이(周恩來)의 측근이자 덩샤오핑의 친구였다. 시진핑은 공산당 16기(2002~2007년) 때까지는 당 정치국(24명)에도 끼지 못했으나, 상해 당서기로 영전한 뒤 17기(2007~2012) 때는 무려 2단계를 뛰어넘어 정치국 상무위에 진입했다. 게다가 태자당의 후광을 업고 후진타오가 밀던 ‘퇀파이’의 리커창을 서열에서 누름으로써 5세대 지도부의 1인자 자리를 일치감치 예약했다.

공산당 내에 ‘퇀파이’와 ‘상해방+태자당 연합세력’이 공존하는 현상에 대해 리청(李成)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썬톤차이나센터 연구주임은 ‘하나의 당, 두개의 연합세력(one party, two coalitions)’이라고 표현했다. 리 주임은 이중 전자(퇀파이)를 ‘파퓰리스트 세력(populist coalition)’으로, 후자를 ‘엘리트 연합세력(elitist coalition)’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후진타오로 대표되는 파퓰리스트 세력에는 공청단, 당내 테크노크라트, 신좌파(뉴레프트) 지식인 등이 포함되고, 장쩌민(차기에는 시진핑)이 이끄는 엘리트 세력에는 상해방, 태자당, 기업가및 자본가, 귀국한 유학파 등이 속한다고 지적했다. 전자가 주로 내륙지방과 대학 내 지식층, 중하위 관료층에 많이 분포한다면, 후자는 경제(전자,석유,자동차,철도 등) 및 외교·교육·군부·안전(정보)부문에 포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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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두 파벌은 정책노선도 달리한다. 파퓰리스트쪽은 중서부 균형개발, 사회결속, 환경보호와 녹색성장, 친서민(농민 노동자)을 표방하지만, 엘리트 세력은 GDP성장, 경제효율, 수출, 친중산층, 연안지역 선(先)발전을 중시한다. 말하자면 퇀파이는 한국의 민주당, 상해방은 한국의 한나라당에 이념적으로 가깝다. 현재의 후진타오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삐걱거리는데는 이런 성향차이가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후 주석이 자신의 정치경제이념으로 ‘조화(和諧·화해)사회’를 내걸고, 성장보다 분배, 수출보다 내수를 중시하며, 중서부지역 개발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또 원자바오의 고향인 텐진(天津)에 ‘빈하이(濱海)신구’를 개발하는 것도 상하이의 경제력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얘기가 있다.

그동안 수면 아래서 벌어지던 두 파벌간의 대결은 2010년 원자바오 총리의 ‘정치개혁’ 발언으로 물밖으로 드러났다. 원 총리는 작년 8월20~21일 선전(심천) 경제특구 성립 30주년 기념식에서 “경제체제 개혁뿐 아니라 정치체제 개혁도 추진돼야 한다. 정치체제 개혁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지난 30년의 경제개혁의 성과를 다 잃을 수 있으며 현대화 건설목표도 실현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원 총리는 지난해 10월3일 미국 CNN방송의 대담 프로그램인 ‘파리드 자카리아 GPS’란 프로그램에서도 “민주주의와 정치개혁에 대한 인민들의 희망과 요구는 피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등 40일 사이에 무려 7차례나 ‘정치개혁’을 강조했다. 그의 행동에 대해 성공회대학교 중어중국학과 이남주 교수는 “원 총리의 발언이 곧 서방식 다당제나 직선제를 수용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라는 보편적 가치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고 민주선거와 언론자유에 열린 자세를 보인다는 점에서 보수파와 다르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 이후 중국 내 매체들간에도 찬반논쟁이 붙었다. 공산당 기관지의 하나인 광명일보(光明日)는 ‘두 가지 다른 성질의 민주주의가 뒤섞여서는 안된다(兩種不同的民主不可混淆)’라는 제목의 논설(2010년 9월4일자)에서 “정부권력을 나누는 문제에 대해 어떤 사람들의 생각은 모호하거나 심지어 개념이 뒤섞여 있다”면서 “사회주의 민주와 자본주의 민주를 구분하지 못하고 서방의 관념으로 중국 정치발전의 현실에 모자를 씌운다”고 원 총리를 겨냥했다. 신문은 “자본주의 민주는 소수 자본가의 민주이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사유제의 조건 하에서 소수 자본가만이 돌아가며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평등”이라고 꼬집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인 구시(求是)도 “서구식 민주주의는 ‘달러 민주주의’”라며 보수파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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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4일 기자회견장의 원자바오>

이와 반대로 개혁개방 1번지인 광동성의 당기관지인 남방일보(南方日報)와 중앙당교 기관지인 학습시보(學習時報)는 원자바오의 발언을 지지했다. 남방일보는 ‘심천은 마땅히 정치체제개혁에서도 선도적 공헌을 해야 한다(深圳應對政治體制改革做引領式貢獻)’란 제목의 사설(9월6일자)에서 “모든 개혁 가운데 정치개혁이 가장 중요하다. 조국은 정치개혁 추진에 성공해야만 밝은 미래를 갖게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후진타오 주석이 작년 9월7일 심천에서 이른바 ‘4개의 민주론’을 들고나왔다. 후 주석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정치발전 노선을 견지해야 한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전제로 깐 뒤 “법에 따라 민주선거, 민주결정, 민주관리, 민주감독 체제를 구축하고, 국민의 알권리, 참여권, 표현권, 감독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4개 민주론’을 제기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 발언이 원 총리와 입장차이를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과 국가을 대표하는 후주석으로서 특정파벌을 편드는 듯한 표현은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원 총리를 지지한 것이란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지난 3월11일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연설은 이같은 개혁파의 ‘정치개혁’ 주장을 반격하는 성격이 짙었다. 그는 연설에서 “만약 국가의 근본적인 대원칙이 흔들린다면 이미 이룩한 발전의 성과도 잃게 되고 심지어 국가가 내란의 심연(深淵)에 빠려들 위험도 있다”면서 “서로 다른 국가는 서로 다른 법률적 체제를 가지고 있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우 위원장의 연설은 때마침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중국명 茉莉花革命)이 중국으로 전파될지 여부가 관심사로 대두하던 시점이어서 설득력을 얻었다.

두 세력이 이처럼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는 것은 내년 말로 예정된 18차 공산당 당대회와 깊은 연관이 있다. 내년 당대회는 후진타오의 시대가 가고 시진핑의 시대가 시작되는 역사적 분수령이다. 문제는 이 대회를 계기로 9명의 상무위원 중 시진핑·리커창을 제외한 7명이 퇴진하게 된다는 점이다. 내년에 자칭린은 72세, 우방궈는 71세, 후진타오·원자바오·리창춘·조우용캉은 70세, 허궈창은 69세가 되어, 정치국 상무위원의 연령제한(67세 이상은 퇴진)에 걸린다. 따라서 7명의 자리에 누구를 앉히느냐를 놓고 두 파벌이 이미 오래전부터 불꽃튀는 암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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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이 1992년 중국 공산당 14차 대회에서 류화칭과 악수하고 있다>

중국의 정치인들은 경쟁자를 직접 공격하기보다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정치적 식견과 이론을 설명하고 지지 여론을 이끌어낸 뒤 영향력을 확대하는 정치문화를 가지고 있다. 또 자기들끼리 아무리 치열하게 논쟁 하더라도 일단 결론이 나면 반대파도 그것을 따르는 것이 공산당의 규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8년 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이 ‘실천은 진리검증의 유일한 표준(實踐是檢驗眞理的唯一標準)’이란 명연설로 마오쩌둥의 후계자인 화궈펑(華國鋒)을 이론적으로 압도한 사건이다. 이 연설 이후 덩은 주도권을 쥐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우방궈와 원자바오가 3일 간격으로 중국 정치개혁의 방향을 놓고 국민들에게 설명한 것도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자신들의 생각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을 때 정치국 상무위에 더욱 많은 자파 인물을 진입시키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열세에 놓인 개혁파로서는 이같은 ‘여론정치’에 더 기댈수 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금년 4월 15일자 인민일보에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를 추모하는 원 총리의 글(再回興義憶耀邦·흥의에 돌아와 후야오방을 추억함)이 실린 것은 의미심장하다. 농촌벽지를 찾아다니며 가난한 농민들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준 후야오방은 중국 인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중의 한명이다. 1989년 그가 사망했을 때 천안문 광장을 가득 메운 추모인파는 공산당의 부패와 물가폭등에 항의하는 ‘민주화 시위대’로 돌변, 천안문 사태가 시작됐다. 원 총리가 추모문의 형식을 빌어 후야오방을 복권(復權)시킨 것은 2내년말 18차 당대회를 앞두고 여론을 등에 업고 개혁파의 논리를 확산시켜 보수파를 견제하려는 정치적 카드일 수 있다.

원 총리는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도 내외신 기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우리는 이미 현(縣)과 소규모 시(市)급에서 인민대표 직접선거를 실시하고 있다. 또 시급 이상 중앙 단위까지는 간접선거를, 중앙위원회의 선거에서는 차액(差額)선거(법정인원보다 많은 후보를 추천해 득표율이 낮은 후보를 떨어드리는 방식)를 실시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믿어야 한다. 인민이 촌(村)을 잘 관리하면, 향(鄕)을 잘 관리할 수 있고, 다음에 현(縣)을 잘 관리할 수 있으며, 이는(정치개혁은) 하나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의 대답은 여기서 끝났지만, 많은 기자들의 뇌리에는 오히려 그가 하지 않은 말이 맴돌았다.

‘마지막에는 (인민이) 국가도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올해부터 내년말 당대회까지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치열한 권력암투가 벌어질 전망이다. 바야흐로 중국에도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hbjee@chosun.com

[이 글은 주간조선 2149호<2011년 3월28일 발행>에 실린 글입니다. 전문은 주간조선 참조]

8 Comments

  1. 흰독수리

    2011년 3월 28일 at 1:11 오후

    중국의 권력층을 자세히 해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도 국민을 위한…….리더들이……나오기를기대하면서
    성원합니다!   

  2. Hansa

    2011년 3월 28일 at 3:18 오후

    공산당 일당독재가 언제까지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중국인민들이 일당독재를 거부하는 때가 곧 오겠지요..

       

  3. 김규용

    2011년 3월 28일 at 7:44 오후

    한사님 !! 너무 기대가 큰것아닙닊 ??? 김일성이 죽엇을 때 대한민국의 모든 전문가 그룹들이 빠르면 2~3 년 길어도 5 년이라고 하엿지요 부칸이 망할것이라고 !!!!!!!!!!!! 저도 기대합니다만 중국을 너무 모르시는것 같읍니다 !! 앞으로 현재 의 정치 체제로 최소한 20 년정도는 지속하리라고 봅니다 저들은 후셍니 보다도 더억랄한 놈 들이여 !!   

  4. 풀잎사랑

    2011년 3월 28일 at 8:55 오후

    젊은이들이야 자스민향으로 바위에 계란치기(?)를 하지만 아무래도…
    중국 공산당이 너무 방대한데다 권력의 핵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원자바오보다는 우방궈의 파워가 더 쎈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막판엔 태자당이 만쉐이를 부를것 같네요?
       

  5. Hansa

    2011년 3월 28일 at 9:45 오후

    김규용님.

    이미 중국인민들의 눈과 귀가 세계를 향하여 열려있고,
    배급경제에서 벗어나 자력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경제적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중국인민들이 타고난 굴종하는 노예들이 아니라면
    조만간 "밥만으론 살 수 없다. 자유를 달라"할 것입니다.

    20세기에 그토록 강고하던 동유럽의 공산독재국가들의 민주화 물결을 목격한 바 있지요..
    중국의 민주화는 필연이며, 단지 시간의 문제일뿐입니다.

       

  6. Hansa

    2011년 3월 28일 at 9:49 오후

    개인적으로 중국의 민주화의 정점에 한국의 통일도 가시화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7. 김규용

    2011년 3월 29일 at 6:57 오후

    한사님 !! 기대해보지요 !! 감사합니다 !! 그들은 군부를 이용해서라도 틀어막아버리겟지요 !!   

  8. 그냥

    2011년 4월 6일 at 12:43 오전

    권력투쟁은 언제나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지만
    발전된 국가에서는 보통선거라는 제도를 통하여 공개적으로 합니다.
    탈도 많고 손실도 많지만 건강한 것이지요.

    지금 중국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권력투쟁을 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하면 한개의 중국이 아니라 여러 개의 나라로 쪼개지기 때문입니다. 공산당 내부의 치열한 권력투쟁이 외부로 들어나기만 해도 중국은 여러개의 나라로 분산 될 수 밖에 없는 취약한 생리 입니다.
    언제까지 한개의 중국일런지????

    중국이 여러개의 나라로 쪼개지는 날,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한번쯤 꼭 정리해 두어야 할 사항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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