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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中 고위장성 “한반도는 역대로 中에 종종 위협”

1.중문

王洪光:朝鲜半岛历史上就”拖累“中国

来源:人民网 作者:王洪光中将(曾任南京军区副司令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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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历代王朝,对外防御或进攻,分若干个战略方向。为对付北方游牧民族南下,向北一般是战略防御方向;向西新疆(古西域)、中亚方向,历来是中原政权的主要战略方向,强盛时取攻势,衰弱时取守势;向南对岭南诸国,一般取攻势。东亚朝鲜半岛方向,因战略纵深不深,面积不大,人口不多,经济落后,内战不止,对中央政权威胁不大,理应不是主要战略方向。可是在历史上,这个方向往往发展成主要战略攻防方向,常常对中央政权形成威胁,甚至导致灾难性的后果。

隋唐时期就是难啃的骨头

秦汉及前,在朝鲜半岛相继有箕子朝鲜和卫满朝鲜。汉武帝平朝鲜,在半岛和辽东建置乐浪、真番、临屯、玄菟四郡,史称“汉四郡”。其后在辽东和朝鲜半岛北部,高句丽古国发展壮大,公元二、三世纪,半岛南部的百济和新罗也发展起来,史称“三国时代”。

高句丽强盛起来,不断侵占汉、魏、唐地域,半岛三国之间也争战不断。总之,半岛在汉至唐前期都很不平静,对中央政权时时产生威胁,经常干扰和牵制中央政权在主要战略方向上的行动。因此,中央政权只要北部和西部边境相对平静,就会腾出手来,剿抚朝鲜半岛各国,以求得东界的安定。为此,中央政权花费了很大的人力、物力和财力。隋唐两个朝代,前后七十年间,有隋文帝、炀帝、恭帝、唐高祖、太宗、高宗六任皇帝,九次战略性战役行动,始得平定辽东和朝鲜半岛。高句丽古国消亡,遗民大部被迁入关内,少部流散于渤海国、突厥和新罗。

隋朝就是因为四次向朝鲜用兵,并大兴土木(其中大多是军事设施),导致国库空虚,人丁锐减,农军蜂起。当时,山东民军领袖王薄作《无向辽东浪死歌》,大意是“如果在辽东战死,现在被砍头又何妨!”有学者认为,隋朝就是被朝鲜战争拖累,才迅速灭亡的。

“贞观之治”和高宗的永徽时期,是唐走向强盛的战略机遇期。唐平定周边战争中,东北经常成为主要战略方向,前后通过五次大的作战行动,平定了辽东和朝鲜半岛。因为受东线的牵制和拖累,唐在北线对东突厥、薛延陀作战和西线对吐谷浑、吐蕃、西突厥作战都受到很大影响,常常陷入战略被动,兵不敷用。

当时唐中央高层对是否出兵朝鲜也是有不同看法。时任宰相的房玄龄临终前告诫太宗,“陛下威名功德,亦可足矣,拓地开疆,亦可止矣。向使(如果)高丽违失臣节,诛之可也;侵扰百姓,灭之可也;它日能为中国患,除之可也。今无此三条,而坐烦(拖累)中国,内为前代(指隋朝)雪耻,外为新罗报仇,岂非所存者(收益)小,所损者(代价)大乎?”房玄龄不同意对朝用兵,其意让朝鲜半岛各国顺其自然,自生自灭,既对中央政权构不成严重威胁,也不影响唐抓住战略机遇期发展壮大。房玄龄的话从唐朝发展大局来看,是很有道理的。当然,最终唐朝灭了高句丽,一劳永逸地解决了辽东问题,但朝鲜半岛问题并没有解决。

为了稳定对半岛的统治,唐采用羁縻政策,改严密的郡县制为宽松的都护制,设都护府于平壤。后为了迁就半岛当地势力,步步后撤都护府于辽东故城(今辽阳)、新城(今抚顺附近),以至河北卢龙。当倭国进攻新罗时,唐又及时派出援兵,作为主力的唐军经过艰苦作战,最终“灭倭军于白江口(今韩国锦江口)”。经此一战,直至明朝万历年间近千年内,日本不敢再染指半岛。然唐太宗由于亲征高丽鞍马劳顿(“太宗发定州,亲佩弓矢,结雨衣于鞍后”),身体受到很大损害(也有作战受伤一说),英年(52岁)早逝。总之,朝鲜半岛的战事,是唐前期中央政权的一大负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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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清两朝被朝鲜拖垮

公元十世纪,王氏高丽建国并发展起来,与同时期的后百济、新罗并称“后三国时代”。这时朝鲜半岛各国与中国是藩属国和宗主国的关系,或曰朝贡关系。所谓朝贡,中国“赐予”很是不少,各国“朝贡”倒是不多,甚至几年、十几年一次,无事冷淡中国,有事找中国帮忙,中国还要经常调解半岛各国的争战纠纷,往往还不听劝,中国其实挺累。

到了明朝,朱元璋为笼络藩属国朝鲜,把朝鲜列为十五个“不征之国”之首。至万历年间(1592年),丰臣秀吉基本统一日本,开始大规模向朝鲜用兵,并企图经过半岛侵占我国东北以至内地,引发了明朝抗日援朝(万历壬辰)战争。明、朝联军与日本艰苦作战七年,互有胜负,及待丰臣秀吉病死,日本国内不稳,明军在露梁海战中一举消灭日军主力,才取得战争胜利。但明朝的援朝作战,国力消耗巨大,国库空虚,时文记载:“万历二十四年(1596年),时朝鲜方用兵,国用大匮。是年三月,乾清、坤宁二宫火灾,欲营建二宫,因财乏而不能办。”穷得连皇宫失火都修不起了。

明末水旱蝗灾连绵,民饥人相食,流寇蜂起,进剿无兵,李自成、张献忠等农民起义,轻易推翻了明政权。同时,明朝也无暇顾及其他战略方向的安全,使东北女真族的努尔哈赤所部割据建立后金政权。明军进剿努尔哈赤时,要求朝鲜出兵,朝鲜却不记明“壬辰拯救”之恩,推三阻四,还暗通后金,用“两端外交”两边讨好,敷衍明朝,毫无信义可言。尽管明朝的抗日援朝战争是反侵略性质的、正义的,但从史实来看,这一战争对明朝的拖累是致命的。

清朝发生的中日甲午战争缘起,是朝鲜东学党起义引发内乱,日本借机干涉,登陆半岛,作为朝鲜宗主国的中国不得不加以保护,进而引发战争。中国甲午战争失败,签订了丧权辱国的“马关条约”,不仅赔付大量白银,还割让台湾、辽东半岛(后以钱抵换),使清政府国力大伤。一是严重降低了国际地位和国内执政的合法性,英法俄德借机调停,摄取在中国的权益,加快了中国殖民化进程;二是革命党人彻底丧失了对清廷维新改革的希望,成为孙中山领导国民革命的直接动因。

朝鲜问题至今尚未结束

上世纪50年代初的“朝鲜战争”,是新中国刚刚建立,政权不稳固,台湾未收回,百废待兴的时候,中国不得不为朝鲜打的一场战争。战争的起因是在新兴的社会主义阵营中,金日成背着中国在斯大林同意下,越过二战后确立的分界线“三八线”向美国支持的南韩政权发动进攻,企图一举统一朝鲜。在北朝鲜军队即将达成企图的情况下,美军仁川登陆,美韩联军(后联合国军)发起战略反击,一直攻到中朝边界鸭绿江边,金日成政权眼看就要灭亡。中国在相当不利的态势下不得不出兵朝鲜,付出重大伤亡代价,反攻并把战线稳定在“三八线”附近,签订了停战协定

1950年6月,朝鲜战争爆发,美国一改放弃蒋介石政权的态度,借机把第七舰队开进台湾海峡,阻隔大陆向台湾进军。当时粟裕担任攻台总指挥,率领五十万大军正做攻台准备,预期1951年发起进攻。由于美军挡在台湾海峡,以及中共不得不把主要战略方向转至对朝方向,致使台湾得到喘息,自此分离于大陆,后又发展出台独势力。

尽管美国政府在1950年6月重新支持蒋介石政权有多种考量,但朝鲜战争的爆发,不能不说是一个重要原因。中共高层当时对出兵朝鲜也是有重大分歧的,确为不得已而为之。朝鲜战争已过去60多年,但它对中国的拖累,至今还在影响着国家的统一和发展。

行文至此,“朝鲜半岛在历史上就拖累中国”的判断,应该可以成立。当下朝鲜半岛的稳定和核问题却推到了中国面前。很可能像历史上一样,朝鲜半岛不得不成为影响我国战略机遇期的因素。

2013年3月,朝鲜劳动党提出“核武建设和经济建设并进”党的总路线,我们对朝鲜的拥核决心决不能低估。当前必须明确向朝鲜指出,不论其是否再行核试验,务使核污染不能直接影响我国土。

(王洪光,生于1949年8月,祖籍山东新泰。1968年3月参加中国人民解放军,曾任南京军区副司令员,中将军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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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언론 보도/동아일보 2013.10.10

“한반도, 역대로 中에 종종 위협… 북핵 과소평가 말아야”

"조선반도(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국 중앙 정권에 종종 위협이 됐고 심지어 치명적 결과를 불러왔다.”
런민(人民)망 등 중국 언론은 중국 인민해방군 예비역 장군이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잡지 ‘국가인문역사’ 최신호에 기고한 이런 내용의 글을 9일 전재했다. 글의 제목은 ‘조선반도(한반도), 역사적으로 중국의 부담’이다. 글쓴이는 전 난징(南京)군구 부사령원 왕훙광(王洪光) 예비역 중장(64·사진).

그는 중국 역사에서 한반도 문제에 휘말려 중국 중앙정권이 흔들렸던 사례를 간추려 중국 중앙정권이 한반도 문제에 갖는 부담을 설명했다. 나아가 북한 핵문제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한(漢)나라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한반도의 관계를 집중 조명했다.

한나라에서 당(唐)나라 때까지 조선반도는 매우 불안정해 대륙 중앙정권에 위협이 됐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수(隋)나라와 당나라의 황제 6명이 9차례에 걸쳐 요동(고구려)과 조선반도를 정벌하러 나섰지만 백성이 급감했고 농민군이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산둥(山東)의 농민군 우두머리는 ‘무향료동랑사가(無向遼東浪死歌)’라는 글을 지었는데 “요동에 가면 전쟁으로 죽는데 지금 머리가 잘리면 어떠냐”란 뜻이다. 당나라 황제들은 5차례 출정했으나 전쟁에서 큰 압박을 받았다. 직접 정벌에 당 태종(太宗)이 나섰다가 52세에 죽는 등 조선반도의 전쟁은 큰 부담이었다.

명(明)나라와 청(淸)나라도 조선반도 문제에 휘말려 무너졌다.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했다가 국력이 크게 소모되고 국고가 비었다. 조선에 군대를 보낸 황제인 만력제(萬曆帝)는 국고가 비어 황궁의 건물 2채가 화재로 불탔는데도 이를 수리할 자금도 없었다는 것. 임진왜란 파병은 명나라에 치명적 결과를 불러왔다. 청나라 때도 조선 동학농민군의 반란에 군대를 보냈다가 패해 국력이 크게 쇠락하고 중국의 식민지화가 더욱 빨라졌다.

현대에 들어서도 1950년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6·25전쟁)’은 갓 건국한 중국에 엄중한 대가를 불러왔다. 이 전쟁에 어쩔 수 없이 말려들면서 대만 통일 기회를 놓쳤다. 종전 60년이 지났지만 중국의 한국전 개입은 현재까지 중국의 국가통일과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조선반도가 이처럼 역사상 중국에 누를 끼쳤고 현재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현재 조선(북한)의 핵 보유 결심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4 Comments

  1. 데레사

    2013년 10월 11일 at 9:48 오전

    마음에 드는 글입니다.
    중국인들 중에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니 희망이 보이는것
    같아요.
    자기들을 위해서, 자기들의 국가안전을 위해서도 북핵저지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보이는것이 유리하다는 글이네요.

    시진핑이 박대통령에게 절대 안된다고 얘기하는 뉴스를 보긴 했지만
    사실은 믿어지지가 않아서….

    고맙습니다.   

  2. 지해범

    2013년 10월 11일 at 11:09 오전

    양면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이 북한핵을 위협으로 보는 것은 한국에게는 협력의 여지를 주는 것이지만, 한반도 전체를 위협으로 보는 것은 장기적으론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중국 군부에 북핵을 위협으로 보는 간부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향후 중국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미칠 걸로 생각됩니다.
    의견 고맙습니다.   

  3. 대천사

    2013년 10월 12일 at 3:48 오후

    무식하고 어리석은 군인입니다.
    이 놈은 독일의 히틀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네요. 유태인이나 주변 국가들이 모두 골치덩어리이니까 征服해버리면 그만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 놈이 군사위원회 주석이 되면 천하대란됩니다.
    이놈의 머리속에는 아마 "대만해협에서의 통일전쟁이 바로 시작해야 대륙이 위협을 피할 수 있다. 아니면 대만은 다시 反功大陸하겠다. 아이구 골치아프다. 무력으로 없애버리자"라는 생각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놈은 틀림없이 뇌물로 승승장구하여 별을 땄을 것입니다. 이렇게 황당한 논리로 한반도문제를 보고 있으니 정말 한심합니다.
    다행히 현역이 아니라서 영향력이 별 없지만 하루속히 벙신병원에 보내야 그의 마지막 영향력을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아니면 또 무슨 뚱단지 같은 글이 나올지 걱정됩니다.

       

  4. 지해범

    2013년 10월 13일 at 2:47 오후

    대천사님,
    의견 감사합니다.
    이 군인은 아마도 모든 것을 ‘나에게 위협적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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