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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주은래 총리 부부의 인연 맺어준 한국인 - China Inside
주은래 총리 부부의 인연 맺어준 한국인

중국인이 보는 안중근

지해범(조선일보 논설위원, 동북아시아연구소장)

周恩来邓颖超.jpg

<젊은 시절周恩来와 邓颖超>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리자 중국인들도 뛸 듯 기뻐했다. 상하이 민우일보(民旴日報)는 사설에 이렇게 썼다. ‘고려의 원수는 우리의 원수다. 한인이 자기 원수를 갚았다고 하지만 역시 우리의 원수를 갚은 것 아닌가.’ 베이징 정종애국보(正宗愛國報)는 ‘조선에 인재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톈진 대공보(大公報)는 ‘조선이란 나라는 망했을지라도 조선의 인심은 죽지 않았다’고 했다. [불법복제-전재금지]

▶청(淸) 말기 정치가 량치차오(梁啓超)는 일본 망명 중에 거사 소식을 듣고 시 ‘추풍에 덩굴 끊기다(秋風斷藤曲)’를 썼다. ‘다섯 발자국 지척에서 피 뿌려 대사를 마쳤으니/ 그 웃음소리 저 산의 달보다 높구나…/ 내가 세상 뜨면 그의 무덤 곁에 묻히리.’ 국부(國父) 쑨원(孫文)은 "안 의사의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친다"고 했다. 혁명가 장타이옌(章太炎)은 "아시아 제일 의협(義俠)"이라고 극찬했다.

▶개혁 소설가 황스중(黃世仲)은 광저우 남월보(南越報)에 ‘조선혈(血)’을 연재해 안 의사를 비롯한 한국 애국지사를 소개했다. 중국인에게 애국심을 불어넣으려는 뜻이었다. 혁명 지도자 천두슈(陳獨秀)는 "중국 청년들이 톨스토이나 타고르가 되기보다 콜럼버스와 안중근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안중근 의거는 20세기 초 중국 항일구국운동을 밝힌 한 줄기 횃불이었다. 작게는 저우언라이(周恩來) 부부의 인연도 맺어줬다. [불법복제-전재금지]

安重根.jpg

<安重根의사>

▶1910년대 톈진 난카이(南開)학교에 다니던 열예닐곱 살 저우와 덩잉차오는 학생 연극 ‘안중근’으로 만났다. 덩은 저우를 찾아가 연출을 부탁했고 자신은 남장(男裝)을 하고 안중근을 연기했다. 저우는 훗날 총리가 돼 "청일전쟁 후 중·한 인민의 항일운동은 안중근 의거로부터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작년 말 한·중이 안 의사 의거 표지석 설치를 협의할 때 일본이 반발하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말했다. "안 의사는 역사 속에서 항일 투사로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중국인은 그를 존경한다."

▶안 의사가 이토를 사살한 하얼빈역에 중국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세워 그제 문을 열었다. 일제가 이토 추모비를 세웠던 자리다. 기념관 정문 위에 걸린 시곗바늘은 오전 9시 30분에 멈춰 있다. 안 의사의 총소리가 울렸던 시각이다. 중국은 표지석 설치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가 기념관으로 화답했다. 일본이 안 의사를 터무니없이 ‘범죄자’로 부르는 역사 인식을 고집하는 한 안 의사가 말한 ‘동양 평화’의 길은 멀 수밖에 없다.[불법복제-전재금지]

<中文飜譯>

[世间万象]中国人眼中的安重根


1909年10月26日,安重根义士击毙伊藤博文后,中国人欢呼雀跃。上海《民吁日报》在社论中写道:“高丽的仇人也是我们的仇人。虽然是韩人报了自己的仇,但也等于是我们报了仇不是吗?”北京《正宗爱国报》指出:“不要再说朝鲜没有人才。”天津《大公报》指出:“即使朝鲜这一国家灭亡,朝鲜的人心没有死去。”

清末政治家梁启超流亡日本期间听到这个消息时作了一首长诗《秋风断藤曲》。诗中写道:“流血五步大事毕,狂笑一声山月高……尘路思承晏子鞭,芳邻拟穴要篱家。”国父孙文题词:“功盖三韩名万国,生无百岁死千秋。”革命家章太炎称安重根为“亚洲第一义侠”。

改革派小说家黄世仲在广州《南越报》上连载《朝鲜血》,介绍了安重根等韩国爱国志士。这是为了唤起中国人的爱国心。革命领导人陈独秀说:“吾愿青年之为托尔斯泰与达噶尔,不若其为哥伦布与安重根。”安重根义举可谓是点亮20世纪初中国抗日救国运动的一根火把。从小的方面说,安重根义举还成就了周恩来夫妇的姻缘。

20世纪10年代,十六七岁的周恩来和邓颖超在天津南开读书时因为学生话剧《安重根》相识。邓颖超找到周恩来让他进行指导,她自己女扮男装饰演安重根。周恩来后来成为总理时说:“中日甲午战争后,中朝人民反对日本帝国主义侵略的斗争,是在20世纪初,安重根在哈尔滨刺杀伊藤博文开始的。”韩中两国去年年底决定竖立安重根纪念碑时,遭到日方抗议。中国外交部发言人当时表示:“安重根是历史上著名的抗日义士,在中国也受到尊敬。”

中国在安重根击毙伊藤博文的哈尔滨火车站设立“安重根义士纪念馆”并于前天开馆。日本帝国主义侵略者曾在这里树立了伊藤博文纪念碑。纪念馆正门上方的挂钟定格在上午9时30分。这是安重根扣动扳机的时刻。中国没有竖立纪念碑,而是设立了更高一级的纪念馆。如果日本继续坚持自己错误的历史认识,称安重根为“罪犯”,那么安重根倡导的“东洋和平”之路必然会非常漫长。

6 Comments

  1. 데레사

    2014년 1월 23일 at 8:32 오전

    하얼빈에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가서 안의사님 기념관을 가보고 싶어지는게 모든 한국사람들의
    마음일 겁니다.

    일본, 그들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부끄럽지 않게 사과할건 하고
    잘못을 인정할건 해야하는데 답답하고 미워요.
    독일처럼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기들이 범죄자라고 우긴다고 해서 범죄자가 되는건 아니지요.
       

  2. 벤조

    2014년 1월 23일 at 1:35 오후

    중국 학생들은 ‘안중근’이라는 연극도 했었군요.
    한국 학생들도 이런 연극 했었나 모르겠네요?
    이러다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대 나온 의사인줄 알까 겁납니다.ㅎㅎ
       

  3. 대천사

    2014년 1월 23일 at 1:42 오후

    1909년은 신해혁명 2년 전입니다. 그때의 중국사람들은 아직 일본제국의 야심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비록 일본은 1894년 갑오년에 청일전쟁에서 청나라를 격패하여 대만을 할양받았고 청나라 정부와 일부분의 사람이 일본의 야심을 느끼겠지만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은 일본의 무서운 야망을 모릅니다. 그래서 강유위, 양계초와 같은 有志之士가 변법운동을 일으겼습니다. 아쉽지만 실패했지요.
    그 후, 1914년에 중일 21항조약 사건도 있었지요. 중국사람들이 점차 일본의 야망을 알겠지만 일본에 대항할 방법과 수단을 알게 된 계기는 아마도 안중근의가사 이도를 암살한 후에야 알았을 것입니다.
    윤봉길의사의 의거도 그렇고 대만 대중시에서의 의거도 그렇고 군사력이 막강한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일본고관과 왕족을 암살하여 우리의 저항심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지요.
    일본정부, 일본인민은 이러한 의거를 테러라고 폭언하니 그들이 아직 침약야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4. 지해범

    2014년 1월 24일 at 11:03 오전

    데레사님,
    중국인들의 역사 기록과 보존은 우리가 배워야할 점이 있습니다.
    이번에 문을 연 안중근 의사 기념관도 그 내용이 충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한국의 안중근 기념관보다 나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하얼빈 가보고 싶어지네요.   

  5. 지해범

    2014년 1월 24일 at 11:07 오전

    벤조님,
    안중근 의사를 醫師로 아는 청소년도 꽤 있대니, 기성세대가 후손들에게 역사교육을 제대로 못시키고 있다는 반증이지요.
    요즘 나라 전체가 가벼워지고 뿌리가 뽑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많이 배우고, 권력있고, 돈많은 사람들부터 제것만 챙기려는 풍조가 만연하여 나라의 중심이 흔들리는 듯합니다.   

  6. 지해범

    2014년 1월 24일 at 11:10 오전

    대천사님,
    동감입니다.
    아베 정부가 안중근 의사를 살인자로 규정하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이토 히로부미의 조선-중국침략 행위를 정당하게 본다는 전제가 깔려있지요.
    이런 역사부정의 관점이 앞으로 아시아와 세계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걱정입니다.
    한국도 대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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