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버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아웅산 묘소에 헌화하려던(lay a wreath) 날 벌어진 북한 소행의 폭탄 테러(bomb terror committed by North Korea). 대통령은 죽음을 모면했지만(cheat death), 17명의 수행원이 순직했다(die on the job).
당시 테러를 저지른 북한의 극악한 비밀요원(deadliest secret agent)은 강민철 등 3명이었다. 라종일 전 국정원 차장(former deputy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이 최근 출간한 책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에 따르면 그는 북한이 테러와 아무 연관도 없다고 부인하면서(deny any connection with the terror) 잊힌(be consigned to oblivion) 존재가 됐다.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던 25년 동안 단 한 명도 ‘조국’에서 온 방문객을 맞은(receive not a single visitor from his ‘homeland’) 적이 없었다.
멀리서 폭탄 폭발을 지켜본(watch the blast from a distance) 강민철·김진수·신기철은 양곤강(江)으로 내달렸다. 북한 화물선으로 데려다 줄(take them to a North Korean freighter) 쾌속정이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없었다. 각각 흩어져(split up) 필사적으로 찾아다녔다. 화물선은 있을 줄 알았다. 없었다.
신기철은 총격전 중 사살됐고(be killed in a gunfight), 강민철과 김진수는 수류탄이 손에서 터져(explode in their hands) 중상을 입은 채 체포됐다(be arrested with severe wounds). 안전핀을 뽑는(pull the pin off a hand grenade) 순간 터져버려 죽게끔 그들도 모르게 북한에서 조작해놓았던 것이다.
팔과 눈 하나씩을 잃은 김진수는 끝내 진술을 거부하다가(reject statement) 처형됐고(be executed), 역시 팔 하나를 잃은 강민철은 테러를 시인하고 집행유예 사형 판결을 받았다(receive a suspended death sentence). 수감된 강민철은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누이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한참 후 그는 기독교에 귀의했고(convert to Christianity) 마태라는 세례명을 받았다(be baptized Matthew).
한국 외교관들이 먹을거리를 들고 찾아간 적은 있었다. 이후 그는 풀려나면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2004년 그의 석방 협상이 건의됐으나 당시 햇볕정책에 집착해 있던(be preoccupied with the Sunshine Policy)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를 그르칠 어떠한 행위도 주저했다(hesitate to do anything).
이후 그는 실의에 빠져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live out his last days in despondence). 북한과 미얀마 외교 관계가 복원된 2007년부터는 불안감에 전전긍긍했다(tremble from fear). 북한이 감옥 음식에 독극물을 넣어 독살할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강민철은 2008년 5월 18일 간암으로 죽을(die of liver cancer) 때까지 "나는 풀려나도 갈 곳이 없다"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이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53세였다.
korock
2013년 11월 28일 at 4:06 오전
박창선에게 물어보라 조작사건이라고 말할 것이다.
김정자
2013년 11월 28일 at 6:59 오전
피가 꺼꾸러솟눈다 한국이 챙피하고 위정자 위선의 극치 언제까지 봐야되나 진실을 외면하는 눈에는 애국의 눈물 흘릴수없다 가치없고 식민지 같은 배부른 되지무리들 꿀꿀 모습에 현기증난다.
김용범
2013년 11월 28일 at 9:43 오전
아…이런..욕나온다…박창선이? 이정희 이석기등에게 진술하게 해봐라. 도대체 그 대1가리 속엔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기가 이를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