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고향을 그리워하는 욕구는 죽은 후에야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니만큼, 이 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한다. 이 욕구가 다른 욕구에 짓눌리거나 밀려나지 않게 해야 한다. 나 자신이 그 나라를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일을 내 삶의 주된 목표로 삼아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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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에서 피랍됐다가 15일 시신으로 발견된 한국인 여성 엄영선(34)씨는 지난해 11월 23일 네이버 블로그에 남긴 글에 자신이 읽었던 책 ‘루이스 VS 프로이트 (The Question of God)’의 한 구절을 이렇게 인용해 놓았다.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엄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I am a PILGRIM, a traveling soul!’(나는 순례자, 돌아다니는 영혼!)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녀는 “자기가 선택한 가치관에 의해 삶의 목적과 태도가 결정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목적을 점검하였고, 그 목적에 따라 선택한 일들을 후회하지 않음에 그 분께 감사 드린다”고 했다. 그랬던 그녀가 끝내 자신이 선택했던 길을 따라갔다.
엄씨는 납치 위험성을 걱정하며 하느님의 보호를 간구해왔던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23일 블로그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서 “한 달에 1~2차례씩 여러 차례 외국인들 납치 사건이 일어났다”며, “(예멘) 수도인 사나로 자주 이동을 해야 하는데 하느님께서 지켜주시기를 늘 빌곤 한다”고 써놓았다.
엄씨는 또 오는 8월말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올 연말쯤엔 터키로 갈 계획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여동생이 모두 건강하다고 기뻐하며 “아버지께서 구세주 그리스도를 아시게 되면 좋겠다”는 바램도 적었다.
이 글에서 엄씨는 지난해 8월 예멘에 도착한 이후 아이들을 가르치며 병원에서 일하는 한국인, 네덜란드인, 독일인 동료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면서, 현지 예멘인들과의 의사 소통을 위해 아랍어를 배우고 있다고도 했다.
지난 2007년 7월26일엔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한국인 집단 납치 사건을 걱정하며 납치된 이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글을 블로그에 띄우기도 했다. 당시 상황과 한국 정부의 석방 노력을 다룬 BBC 기사도 스크랩해 붙여 놓았다.
엄씨는 블로그를 통해 조국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해 8월15일 올린 글 맨 앞에 태극기를 띄워놓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인용해놓았다.
“모두의 마음에 대한민국이 펄럭입니다.
우리가 나눈 태극기가 모이고, 또 모이면
63년 전에 만난 태극물결의 감동이
다시 한 번 찾아오지 않겠어요?
나라가 빛을 되찾은
광복(光復) 예순 세 번째 해에
당신의 대한민국을 다시 만나세요.”
엄씨는 피랍 4일째인 15일 밤에 살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녀가 2007년 9월17일 블로그에 띄워놓은 시인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이렇게 끝난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일흠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 할게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