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려서 실신한(faint with hunger) 한 어린 흑인 소녀. 뼈만 앙상한 그 아이 뒤를 쫓아가며(stalk the emaciated child) 죽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 땅에 쓰러져 굶어 죽어가는 한 소녀의 이 가슴 아픈 장면(the heart-breaking scene of a starving girl collapsed on the ground)은 수단의 내전 참상을 단적으로 보여준(speak volumes about the horrors of Sudanese civil war) 사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be made public). 이 사진을 찍은 기자는 1993년 퓰리처상을 받았으나, “소녀를 먼저 구해야지 사진을 찍고 있었느냐”는 비난을 초래했고(incur a censure), 결국 이듬해 자살을 하고(commit suicide) 말았다.
최근 전쟁의 참화(the calamity of war)를 증언하는 또 다른 사진 2장이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고(strike a chord in the hearts of people all around the world) 있다. 한 장은 시리아에서 찍힌 네 살짜리 어린 소녀 사진〈위〉이다.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자(aim his camera at her) 이 꼬마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throw her hands up in the air) 울음을 터뜨린다(burst into tears). 카메라를 총으로 잘못 알고(mistake the camera for a gun) 공포에 질려(be seized with terror) 살려달라고 애원하며(beg for her life) 두 손을 쳐든(put her hands up) 것이다.
또 다른 한 장은 요르단 난민촌(refugee camp)에 수용된 네 살짜리 시리아 소녀 사진〈아래〉이다. 이 아이는 적십자사 직원이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서자 카메라를 향해 두 팔을 번쩍 치켜든다. 전쟁의 공포로 가득한 짧은 삶에 극도의 정신적 외상을 입어(be extremely traumatized by a short life filled with the horrors of war) 카메라를 총기로 알고 “날 죽이지 말아달라”며 ‘투항’을 한 것이다.
양철 오두막 사이에 맨발로 혼자 있던(be alone and barefoot among the tin-roofed huts) 이 아이는 전란에 휩싸인 나라에서 도망 나올(flee her war-battered country) 때까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던(escape from the throes of death) 것일까. 적십자사 직원은 “아이의 겁에 질린 표정과 뜻밖의 반응에 충격을 받았다(be shocked by her haunted look and unanticipated reaction)”며 “어린 아이의 처참한 현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have tears in my eyes in spite of myself)”고 언론에 밝혔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전쟁이 어떤 때는 필요악(a necessary evil)”이라면서 “그러나 그 필요는 언제나 악일 뿐 선이 될 수 없으며, 상대의 자식들을 죽여가며 평화롭게 사는 법을 배울 수는 없다”고 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눈에는 눈’은 전 세계를 장님으로 만들어 버릴(make the whole world blind) 것”이라고 했고,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인류가 전쟁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면 전쟁이 인류의 존재에 종지부를 찍게(put an end to mankind)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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