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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북한에서 전투기를 몰고 미국으로 망명한 조종사는 - 윤희영 기자의 뉴스 잉글리시(News English)
북한에서 전투기를 몰고 미국으로 망명한 조종사는

미국인 대부분은 다른 곳에서 이주했거나 그런 조상의 후손(descendants of such ancestors)이다. 적국(敵國)에서 전투기를 몰고 망명한(defect from an enemy nation in a fight plane)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

플로리다에 사는 은퇴한 항공기술자(retired aeronautical engineer) 케네스 로(84)가 그 주인공(the very person)이다. 그는 다른 이름 2개도 갖고 있다. 일본 이름 오카무라 교시, 한국 이름 노금석(盧今錫).

북한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창씨개명을 강요당하던(be forced to change their names to Japanese names) 1943년, 국민학생이었던 그도 오카무라 교시로 불리게 됐다.

윤희영의 News English 일러스트

아버지는 북한 내 일본 기업에 근무해 벌이가 좋았다(make a good living). 자신도 일본인이라고 여겼다. 궁지에 몰린(be driven into a corner) 일본이 자살 임무를 띤 가미카제 조종사들을 파견하는 데 의존하면서(resort to sending its kamikaze pilots on suicide missions) 한국인 지원자 소집 공고를 내자(put out the call for Korean volunteers) 12세 나이로 자원하려 했다. 호된 꾸지람과 함께(along with a tongue-lashing) 2차 대전 전말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일본이 패망하고(be defeated and collapsed) 옛 소련이 김일성을 북한 총책으로 박아버린(install Kim Il Sung at the helm of North Korea) 후에는 공산주의자로 가장했다(disguise himself as a communist).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충성심을 보이는 데 물불 안 가렸다(go through fire and water).

공군으로 들어갔다. 비행 기술을 익혀 남쪽을 향해 중무장 경계지역 위로 휙 날아가기(zoom right over the heavily militarized border) 위해서였다. 한국전쟁 발발 후엔 충성스러운 모습으로 위장한 채 때를 기다렸다. 소련제 미그15 전투기를 몰고 수십 차례 전투 임무로 출격했지만(fly dozens of combat missions) 미 전투기와의 공중전은 자제했다(hold back from dogfights).

휴전협정(a ceasefire agreement)으로 종전이 되고(bring an end to the war) 얼마 후인 1953년 9월 21일 마침내 기회가 왔다. 훈련비행 중 38선을 가로질러(fly across the 38th parallel) 서울 외곽 미군기지에 무사히 착륙했다(touch down unscathed). 마침 그때 미군기지 레이더가 정기점검을 위해 일시 정지된(be shut down temporarily for routine maintenance) 상태였기에 망정이지 넘자마자 격추당할 뻔했다. 그는 미그기에서 내리면서 김일성 사진을 갈가리 찢어(tear up a picture of Kim) 귀순 의사를 밝혔다(tender his submission).

이후 그는 수개월간 심문을 받은 뒤 미국으로 보내졌고, 우여곡절 끝에(after many twists and turns) 델라웨어대학교를 거쳐 항공 엔지니어로 정착해 살아왔다.

북한에선 그의 망명 후 명령 계통에 있던(in his chain of command) 5명이 총살 처형됐다(be executed by firing squad). 그때 구사일생 살아남은(have a narrow escape) 동료 조종사 중 한 명이 오극렬 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다. 한국전쟁 65주년을 앞둔 지금까지 노금석과 오극렬의 엇갈린 운명은 마치 한반도 분단의 잔흔(殘痕)처럼 이렇게 살아있다.

 

http://www.pri.org/stories/2015-03-17/florida-man-escaped-north-korea-mig-15-fighter-jet

http://www.pri.org/stories/2015-03-18/escaping-north-korea-was-just-beginning-american-immigrant

http://en.wikipedia.org/wiki/No_Kum-s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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