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숫자에 대한 감각은 상대적으로 무뎌지는(lose its touch) 양상이다. 희생자 숫자가 2배로 늘어나면 충격도 2배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예를 들어 막연하게 수백만명을 돕는다고 호소하는 자선단체(charitable organization)보다는 신원이 밝혀진 피해자 중 한 명의 사진을 보여주는(show one of identified victims’ picture) 단체에 사람들은 돈을 기부하고자 하는 생각을 더 갖게 된다고(be more willing to donate money) 한다.
인간은 감성적 판단(affective judgment)을 함에 있어 두 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파악한다(comprehend reality in two fundamentally different ways). 하나는 직관적이고 반사적이며 경험적인 것(an intuitive, automatic and experiential one), 다른 하나는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것(an analytic and rational one)이다.
대부분의 판단은 경험적 사고방식에서 나오는(arising from an experiential mode of thinking) 느낌에 의해 직관적으로 만들어진다(come about intuitively). 그러나 이런 편향적 의사결정(biased decision-making)은 자칫 해로운 결과를 초래해(bring about detrimental results) 집단학살이나 만연한 비극적 사태들(genocide and widespread tragedies)에 대한 보도를 받아들이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성적으로는 모든 생명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수백명이 목숨을 잃은 슬픔은 한 명이 사망한 것의 수백배가 돼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숫자가 늘어날수록 민감성이 줄어드는 양태를 보인다(display diminishing sensitivity).
따라서 대규모 인명 손실은 단순한 통계의 틀에서 끄집어내(extract it from its frames as simple statistics) 좀 더 두드러지게 해줘야(make it more salient) 한다. 가령 에볼라 사망자는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의 전체 인구가 몰살당한 것과 같다는 식으로 전해야 실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