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영의 News English] ‘미란다 원칙’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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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demand the President step down) 기습 시위를 벌인(stage a surprise demonstration) 대학생들을 경찰이 연행하다가 ‘미란다 원칙(Miranda Warning)’을 고지하지 않은 사실을 깨닫고 풀어준 일이 있었다. 미란다 원칙이란 피의자(criminal suspect)에게,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have the right to remain silent), 불리한 진술을 거부하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는(have the right to an attorney)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어니스트 미란다는 1941년 미국 애리조나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breathe her last). 8학년 나이에 이미 강도 혐의 전과(criminal conviction for a burglary)를 갖게 됐다. 이후에도 강간 미수·폭행 유죄판결을 받아(be convicted of attempted rape and assault) 소년원 감호 판결을 받았다(be sentenced to reform school).

2년 후 미란다는 무장강도와 성범죄 혐의로 구속됐다. 형기를 마친 뒤(after serving his term in prison) 입대했지만, 탈영을 거듭하며(repeatedly go absent without leave) 영창 생활을 하다가(spend time in the stockade) 불명예 제대했고(be dishonorably discharged),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하는 상습 전과자(jailbird)가 됐다.

1963년 내연의 처(common-law wife)와 딸을 데리고 애리조나로 되돌아간 그는 한동안 착실하게 살려고(go straight) 애쓰는 듯 보였다. 그러던 중 18세 소녀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hold a knife to her throat) 손을 뒤로 묶은 뒤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미란다는 용의자로 지목됐다. 피해자는 “완강히 저항했지만(put up a stiff resistance) 그가 옷을 벗기고(remove my clothes) 성폭행했다”고 했다. 미란다는 그러나 경찰 진술에서 “소녀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고, 소리를 지르거나 달아나려 하지도(call out or attempt to escape)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의 자필 진술서(a written statement)에는 범행을 시인했으며 “어떤 협박이나 강압 없이(with no threats or coercion) 자발적인 자유의지로(voluntarily and of my own free will) 진술서를 작성했다”고 돼 있었다. 그는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쓰고 서명했다고 강변했다. 결국 30년 징역형을 선고받은(be sentenced to 30 years in prison) 그는 “변호사 도움 받을 권리를 말해주지 않은 것도 위헌이다(violate the constitution)”며 상고했고, 마침내 연방대법원에서 재심 판결을 받아냈다.

 이것이 ‘미란다의 원칙’ 고지의 시발이 됐다. 미란다는 재심 과정에서 내연의 처가 범행에 대한 증언을 함으로써 다시 유죄 판결을 받았고,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1976년 술집에서 싸움을 벌이던 중 칼에 찔려 죽었다(be stabbed to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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