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철저히 통제된 공산국가여서 뇌물도 아주 제한적인 경우에 극히 드물게(once in a blue moon) 오갈 것으로 생각됐다. 1980년대 후반까지는 그랬다.
당 간부나 관리들이 뇌물을 거의 받지 않았다(rarely accept bribes). 정해진 할당량과 표준에 따라(according to predetermined quotas and norms) 특별 배급을 받았고(be put on special rations), 시장이 없어 돈이 쓸모가 없었기(be of little use) 때문이다.
일반 인민들은 구할 수 없는(be not available to the common people) 맥주를 마시고, 필터 담배를 피우고, 한 달에 몇 차례 돼지고기를 먹을(feast on pork a few times a month) 수 있었다. 규정 위반을 눈감아주는 대가로(as a reward for overlooking some violations of rules) 돈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있어 봐야 소용이 없는데 붙잡힐 위험을 무릅쓰고(run a risk of being caught) 화를 자초할(bring calamity upon themselves) 필요가 없었다.
1990년대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배급경제가 거의 붕괴됐다(collapse all but completely). 그 와중에 기근(飢饉)에 큰 타격을 입은(be hit very hard by the famine) 것은 하급 관리들(minor officials)이었다. 배급은 끊어졌는데 불법적인 시장 활동에 참여하지(involve themselves in illegal market activities) 않고 버티다가 가장 먼저 굶어 죽었다(starve to death).
동료들은 그들의 죽음에서 체득했다. 먹고 살기 위해(in order to gain the livelihood) 무슨 일에든 뇌물을 받기(take bribes for anything) 시작했다. 기차 보안요원은 중국산 밀수품 자루를 압수하지(confiscate the sacks of smuggled Chinese products) 않았다. 500원을 주면 자루 옆에 서서 지켜주기(stand guard next to them)까지 했다. 1~2달러만 찔러주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어떤 서류도 요구하지 않고 여행허가증이 즉각 발급됐다(be issued immediately with no questions asked and no papers required).
주민들은 소득의 약 75%를 개인적인 농사나 소규모 가내생산(small-scale household production) 등 사적인 경제활동에서 얻고 있다. 북한정권이 통제경제를 되살리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중하급 관료들의 ‘기득권’ 때문이었다(due to ‘the vested interests’). 자신들의 주수입원을 없앨 이유가 없다고(see no reason to eradicate their major source of income), 그랬다가는 굶어 죽는다고 판단한 이들이 암암리에 방해행위를 한(carry out a covert sabotage) 것이다.
몸에 밴 뇌물 습관(the ingrained habit of bribery)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지(disappear overnight) 않는다. 문제는 이렇게 뿌리 깊어진 북한의 뇌물문화가 장차 통일한국에도 심각한 부담으로 남을(become a serious burden to a reunified Korea in the future)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문복록
2012년 7월 19일 at 1:30 오후
부페 순위가 높을수록 정권붕괴율이높다 바라건데 개속부정부페로 북조선이 진행되도록 공작을 하라..